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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2 조회수3,05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 4월 2일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제1독서 사도 2,14.22-33

오순절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22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27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복음 마태 28,8-15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지금은 보기가 힘들지만

예전에는 동네로 찾아오는

약장수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약을 팔지 않습니다.

먼저 그들이 훈련시킨 동물들이

재주를 넘기도 하고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그 뒤에는 건장한 아저씨가

나와서 차력 쇼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볼거리가 많다보니

동네의 꼬마들이 모여와

앞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면 약장수 일행들은

꼬마들을 향해서 “얘들은 가라!”

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을

쫓아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쫓아내어도

아이들은 집에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쫓겨나지 않으려고 했고,

뒤로 물러섰다가도 어느 사이에

앞자리에 앉아서 박수를 치면서

좋아합니다.

어쩌면 가라는 말에 청개구리

심보처럼 더욱 더 가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동네

꼬마들이 가장 큰 홍보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약장수가 왔다고 아이들이

소문을 내면서 사람들을

모으지요.

그리고 그 구경을 하면서

큰 목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면서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

역시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 때문에 사람들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사실 동네 꼬마들에게 오히려

선물을 줘야 할 것 같은데

반대로 쫓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약장수들은 어린이가

이해하기 힘들거나 봐서는

안 될 장면이 있어서

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약을 살 수 있는 돈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필요 없는

 손님들로 여긴 것이지요.

즉, 물질적인 이득을 주지

못하니 쫓았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기억하면서

오늘 복음을 봅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은

 무덤을 지키고 있었던 군사를

 불러서 돈으로 매수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시체를 훔쳐 갔다고

말하라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 거짓말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권력자의 지시로 무덤이

봉인되어 있었던 것,

무덤 주위에 많은 경비병들과

군사들이 있었다는 사실,

무덤을 막고 있던 거대한 돌을

 옮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사람 몰래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 등등 거짓말이

전혀 통하지 않을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복음에 나와 있듯이 이 말이

유다인들 사이에

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원수들의 거짓말을

통해서 오히려 주님의

부활이 명확해졌습니다.
앞서 필요없어 보이는 아이들이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적대자들을 통해서도 기쁜 소식이

선포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을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 질 수 있도록

목요일 밤에 붙잡아서 금요일 낮에

 십자가 죽음을 당하도록 했던

 일사천리로 예수님을 제거했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번에도 돈으로 매수하면서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으나 반대로 더욱 더 주님의

부활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 자신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에

소홀했던 것이 아닐까요?

진정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여인들에게 부활하여 나타나신 예수님.

"하느님나라."

어느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갔을 때 세 가지

사실 때문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마침내

천국에 있게 되었다는 꿈같은

 사실 때문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둘째, 천국에 올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셋째, 틀림없이 천국에

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천국에 없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분명히 우리가

가야할 곳입니다.

그런데 그 결정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지요.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말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내 뜻을 내세우면서

사는 삶이 아닌,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겠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곳에서의 미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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