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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4 조회수3,148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4월 4일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제1독서 사도 3,1-10

그 무렵

1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3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
4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5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는데,

6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7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8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

9 온 백성은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10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

복음 루카 24,13-35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예전에 운전 할 때에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교통지도였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게 되면 지도를 먼저 살펴보고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먼저

살펴보고서 운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도중에 그 길을 찾을 수

없을 때에는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놓고서 지도를 보고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곤 했습니다.

따라서 초보운전자에게 운전은

너무나 힘든 것이었지요.

운전하는 것도 힘든데 지도까지

머릿속에 넣어놓고

운전을 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에는 초보운전자도

쉽게 운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비게이션이 있습니다.

출발 전에 목적지를 설정하고서

운전을 하면 알아서 목적지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줍니다.

제가 다른 길로 가게 되면

 왜 다른 길로 갔느냐고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그저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다시 안내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다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줍니다.
이 편한 내비게이션 때문에 한 번은

고생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충실하면서

운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하겠습니다.”라는

 말과 달리 제가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닌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출발 전에 목적지 설정을

잘못 했던 것입니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다른 곳을 선택했던 것이지요.
목적지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면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의 목표가 없거나

잘못 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시동을 켜고

움직이긴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성과를 내기가 힘듭니다. 어

쩌면 내게 다가오는

하나의 재앙과 같습니다.
어떤 책에서 ‘디제스터

(disaster, 재앙)’라는

영어 단어를 풀이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을 보면

 ‘사라지다’라는 뜻의

 ‘dis’와 ‘별’이라는 뜻의

 ‘aster’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별이 사라지는 것이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나침반이 없었던 시절에는

항해할 때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잡았지요.

 그런데 이 북극성이 구름이나

폭풍우로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목표가 없음은

 곧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왜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까?

바로 그들이 믿고 따랐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침통한 표정을 가지고 고향인

엠마오로 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절망 속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걸어가도 또 함께 대화를

나누어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순간

희망의 주님도 알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님을

알아본 순간은 언제입니까?

바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였습니다.

 빵을 통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희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순간은

희망이 담긴 목표를 가졌을

 때였음을 기억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의 목표를 다시금

분명히 세워야 하겠습니다.

목표는 별과 같아서

늘 그 자리에 있다.

역경은 구름과 같아서

잠시 머물다 곧 흘러간다.

(에이브러햄 매슬로)

엠마오 가는 길.

 

"내 이웃을 바라볼 수 있는 눈"

사람에게는

생체 시계가 있습니다.

이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사춘기 때에는 밤 11시쯤부터

분비되기 시작해서 아침 9시가

지나도록 남아 있습니다.

그에 반해서 나이가 들수록

분비 시간이 빨라지고

이른 아침이면 분비가 끝납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뭐가 힘드냐면서 이렇게 게으르면

 어떻게 하냐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만약 아침에 잘 일어나는

청소년이라면 생체리듬에

이상이 있는 것일 수 있으므로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합니다.
어른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결론 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아닌 이상 분명히

나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넓은 마음,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바라보십니다. 

 

엠마오라고 추정되는 라투룸이라는 곳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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