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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5 조회수2,35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4월 5일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제1독서 사도 3,11-26

그 무렵

치유받은 불구자가

11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온 백성이 크게 경탄하며

‘솔로몬 주랑’

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12 베드로는 백성을

보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6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20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21 물론 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예로부터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합니다.

22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야 한다.

23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24 그리고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 말씀을 전한

모든 예언자도 지금의 이때를

 예고하였습니다.

25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고,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희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어 주신 계약의 자손입니다.

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복음 루카 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

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예전의 제 모습을

아는 분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하나같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직도 탁구 치냐?”
저의 예전 모습을 기억하는

분은 지금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신부에게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그 신부님하고는

  절대로 탁구 치지 마라.”
저에 대한 기억은 모두

 ‘탁구’로 통하나 봅니다.

왜 탁구 이야기만 할까요?

집에 탁구대가 있어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탁구를 쳤었습니다.

그리고 탁구 선수가 되려고

노력했고 대회에 출전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혀 탁구를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

저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왜 제 모습 중에서

탁구 잘 친 것만

기억하고 있을까요?

 부끄럽지만 바로 저의

승부근성 때문입니다.
실력이 저보다 떨어져도

봐주는 것 없이 21:0

이라는 스코어

(지금은 11점 승부지만

당시에는 21점 승부였습니다)

로 이길 때도 많았습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탁구라켓을

 만들어서 상대방이 비참함을

느낄 정도로 상대도 안 되게

이기기도 했습니다.

그냥 탁구를 치면서 함께

즐긴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이기는 것에

집착했을까요?

잘하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했더라면 이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저에 대한 예전 기억은

모두 ‘탁구’가 된 것이지요.
사실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래서 이겨야 재미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 자체가 아니라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금을

즐기는 삶입니다.

즐기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상 죽음을 통해

제자들은 큰 절망을 체험합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었지요.

하느님의 아드님이 분명했고

그래서 무엇이든 다 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 이후

그들은 모든 것이 끝장났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락방에 숨어서

떨고 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첫 마디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진 것처럼

생각되는 절망의 상황이

부활을 통해 진정한 승리였음을

믿게 되는 순간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발을

보고 부활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온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직접 잡수시면서 진짜로

부활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이 말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을 믿고 따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힘과 권력을 누리는

 세상에서의 승자 모습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평화를 가지고 오신

주님과 함께 하면서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진정한 승자입니다.

반짝이는 것은

순간을 위해 태어나지만,

참된 것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

(괴테)


우리 모두는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 희망이 있습니다."

영국의 윌리엄 애디스는

1770년에 런던에서 폭동을

일으켜 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수감 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특별히

구강 위생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되었지요.

하긴 당시 치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그냥 이 아픈 것을 꾹 참으면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수감 중에 있는 동안 많은

시간이 있었던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 시간 동안 치아 상태를

좋게 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궁리한 것입니다.

이 생각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계 최초로 칫솔을 발명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수감 생활 덕분에

오히려 윌리엄이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세운 위즈덤 칫솔은

지금까지도 영국에서만 매년

7,000만 개의 칫솔을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고통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분명히

희망의 끈은 있습니다.

윌리엄 애디스와 그가 발명한 칫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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