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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6 조회수2,856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 4월 6일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제1독서 사도 3,11-26

그 무렵 불구자가

치유받은 뒤,

1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다.

2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

 3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5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6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8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복음 요한 21,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브라질의 한 여성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글쎄 하늘에서 고슴도치가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입니다.

200여개의 고슴도치

가시가 머리에 박혔고

급하게 병원에 실려 갔고

족집게로 일일이 가시를

제거하는 아주 드문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고슴도치는 하늘을 나는

새가 아닙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고슴도치가

떨어지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뉴스를 접한

뒤에 이 여성이 얼마나 불운한

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불운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 여성은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늘에서 떨어진 고슴도치가

안전한 지에 대해 먼저 물었고,

자신이 아닌 노인이나

어린에게 떨어졌다면

어쩔 뻔 했냐는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사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왜 자신에게는 행운이

오지 않느냐고,

왜 자신에게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느냐고 탓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에 반해서 감사하는 경우를

보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에서도

누구는 불평불만의 마음을

또 반대로 누구는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인터넷에서 본 어떤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손수레에서 호떡을 팔고 계신

 한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길을 가던 한 신사는 이 모습이

안타까워서

돈 천 원을 건네주고는

호떡은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면서 돌아갔지요.

그리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서는 똑같은

행동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 날 역시 돈을

건네고 돌아가려는데,

이 자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저씨, 호떡 값이 올랐어요.

천이백 원입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의는 감사해야 하는 것이지

내가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닙니다.

내 삶 전체에 주님의 사랑

가득한 호의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보지 못하다보니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고기를 잡으러 간 제자들이

밤새 허탕만 쳤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요.

사실 제자들 중에는

어부 출신들이 많습니다.

즉, 자기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고기를 낚는 일이기에,

불쾌한 심정으로

 “저희가 더 잘 압니다.”라면서

호의를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그대로 따르지요.

그 결과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겸손한 마음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오며,

이로써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미 코끝에 와 닿아 있다.

때문에 우리는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미 발밑에 있다.

때문에 우린 단단하게

딛고 서 있는 것이다.

(차진배)

머리에 박힌 고슴도치의 가시들.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한 감사"

(‘따뜻한 하루’ 중에서)

어느 마을에 양을 치는

 목동이 있었습니다.

저녁때가 되면 양을 몰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특정한 장소에 이르면

양들이 가벼운

상처를 입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자 목동은 그곳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유심히 관찰해보니 그곳에는

작은 가시나무가 있었습니다.

 '음...이 가시나무가

 양들을 찌른 것이었군.'
목동은 다음 날,

가시나무를 베어내려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목동은 그 가시나무를

자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시나무에 걸려 있는

양털을 새들이 물고 날아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양들의 상처로 얻은 털이

새들의 포근한 둥지가 되는구나!"
목동은 가시나무를

베지 못한 채 돌아섰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행복을 누리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알고 보면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생겨난 '행복'입니다.

그러니 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감사하십시오.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부활 장소인 티베리아스 호숫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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