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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내 십자가를 지고 희망차게 부활합시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6 조회수3,342 추천수0 반대(0) 신고

 

"내 십자가를 지고 희망차게 부활합시다."

+찬미예수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옛날 오래된 교우 분들은

부활성야 미사를 몇 시에

드렸던 것으로

기억하십니까?

아주 예전에는 밤

12시에 드렸었죠.

충청북도는 내륙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통행금지가 없었었죠?

제가 살던 인천에서는

미사를 드린 후 신부님이

꼭 도장을 찍어서 줬어요.

가다가 순경한테

걸리면 성당에서

미사를 봤다는 표였어요.

그걸 잃어버리면 파출소에

가서 날밤을 새기도 했죠.

, 복사아이들. 쭉 앉아있지만

12시에 미사 시작되면 꼬박꼬박

조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뒤에서 복사 선배들이

뒤통수에 꿀밤을 한 대 때리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입고 있는 제의는

서품제의입니다.

35년 전에 서품 받을 때

입었던 제의고,

보좌신부님 제의도 4년 전

서품 제의입니다.

이 서품제의는 1년에 몇 번,

서품기념일이랑 대축일에

저는 꼭 입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의가 딱 맞죠?

제가 얼마나 몸매 관리에

신경을 썼는지 아시겠죠?

저보고 살쪘다고 이런 얘기를

아예 하지 마십시오.

이 서품제의는 제가 죽을 때

제 관속에 수의가 되는 겁니다.

저는 이사 갈 때가 되면

그곳 수녀님께 서품제의를

꼭 챙겨서 보내라고

얘기를 합니다.

서품제의를 입으면

마음이 늘 새로워져요.

35년 전에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사제가 되었던

그때를 떠올리게 됩니다.

여러분들, 기쁘십니까?

왜 기쁘신 것에요?

부활했다고요?

여러분들이 부활해서

기쁜 것에요?

예수님이 부활해서

기쁜 것에요?

성삼일이 빨리 끝나서

기쁘신 겁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재현하는 겁니까,

기념하는 겁니까?

재현이 아니라 기념입니다.

기념하는 것에요.

우리가 예수님을

부활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죠.

결국 부활은 우리 각자

각자의 부활이에요.

죄와 교만으로부터의

부활이에요.

기쁘냐는 질문에 사순동안

죄와 교만을 죽여서 정말

본인이 부활한 사람을

기쁘다 하겠지만,

죄와 죽음으로부터

조금 벗어나지 못한 사람

입에서 기쁘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넌센스죠.

부활이 기쁘십니까?’

할 때는 본인 각자

각자가 다를 것에요.

부활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가

들어올 때 우리 한국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전에는 우리나라에

부활이라는 단어가 없었어요.

비슷한 말은 있었어요.

소생한다,

재생한다, 회생한다,

우리 선조들은 사람이

하늘에서 왔다가 하늘로

돌아간다는 내세관을

분명히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얘기하는 부활과

조금은 다르더라도 어렴풋하게

내세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200년 전에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그것이 부활이라는

말로 바뀌며

비로소 명확해집니다.

부활절은 1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때에 돌아가시죠.

꽃과 씨가 전혀 다르듯이

죽은 예수와 부활한

예수는 전혀 다릅니다.

성서에는 인간

예수를 사람의 아들,

야훼의 종이라고 하지만,

부활한 예수는

주님이라 합니다.

명칭이 달라져요.

우리 한국인들의 무덤은

전통적으로 봉분을 합니다.

마치 둥근 알과 같이

봉분을 만듭니다.

이것은 재생의 표현입니다.

알은 주로 새가 낳지요?

새는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영물이에요.

죽으면 알로 돌아가 재생을

기다린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옛날부터 무덤을

알처럼 만듭니다.

그 안에서 새가 부리로 깨고

하늘로 마음대로 날아간다는

의미에서 봉분이

알처럼 생긴 거죠.

부활 때 교회에서는

달걀을 나눠먹습니다.

바로 주님을 상징합니다.

한국인의 무덤이나

부활 달걀이나 모두 부활을

상징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와 있듯이,

복음서에는 아주 대조적인

두 가지 무덤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떠나가신

빈 무덤과 마태복음

2327절에 나오는

회칠한 무덤이 있어요.

빈 무덤과 회칠한 무덤이

성서에 나옵니다.

빈 무덤은 회개와 겸손으로

자기를 죽이는 무덤입니다.

포기의 영성을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입니다.

회개한 자의 무덤이요,

겸손한 자의 무덤이요,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자의 무덤입니다.

입을 절제한 사람들의

무덤입니다.

그러나 성서에 나오는

회칠한 자의 무덤은

위선자들의 무덤입니다.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으로만 살려고 하는

자들의 무덤이요.

하느님께 순명보다는

자기를 내세우는 불순명의

삶을 사는 자들의 무덤이요.

입을 다스리지 못하여

다른 이들에게 늘 상처를

주는 자들의 무덤이요.

자기 자신한테는 철저하게

관심을 갖지만 이웃에게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자들의 무덤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지,

정말 부활했는지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주님부활의 징표는

분명히 곳곳에 있습니다.

3일 만에 부활하였듯이,

초대교회는 박해를 당하면서

땅굴을 파고 땅속에서

300년을 살았죠.

그것을 우리는 까따꼼브

(Catacomb)

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천주교 신자들이 파놓은

지하굴이 수십 킬로미터에요.

관광객이 갈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저는 굉장히 깊이까지

들어가 본 적이 있어요.

군데군데 해골이 너무 많은데,

대부분은 우리 교우의 뼈지만은

로마 군인들의 뼈도 많았어요.

잡으러 들어왔다가

나가는 데를 못 찾고

굶어 죽은 것이지요.

로마군의, 창과 방패, ,

갑옷 같은 것들이 아직 썩지 않고

지하 굴속에 그대로 있었어요.

300년 동안 살다가

교회가 나왔습니다.

부활한 겁니다.

주님의 사도,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지만, 죽어서 묻혔던

그 자리에 베드로 대성당이

거대하고 화려하게 서 있습니다.

이게 부활의 징표입니다.

한국에는 부활의 징표가 없을까요?

왜 없겠어요?

다른 교구말고 우리 청주교구에도

옛날부터 동양의 까따꼼브라고

불리는 성지가 있죠?

배티! 배티성지를 옛날부터

동양의 까따꼼브라고 불렀죠,

굴속이 아니라

산에 모였던 거죠.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천주교신자들은 일반

사람들과 같이 살 수가 없었어요.

재산뿐 아니라 목숨도

모질게 뺏기에 천주교

신자들은 더 깊은 산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배티성지까지

아스팔트 길도 나있고

차타면 쉽게 가지만 옛날에는

깊은 산으로 모였죠.

배티는 소백산맥의

맨 아래쪽입니다.

처음에는 모여가지고

교우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나물, 약초 캐러 온 사람,

심마니 등을 행세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고

움막을 짓고 살았대요.

그런데 어느 날 빙 둘러

앉아있을 때 한사람이

자기 앞에 작대기로

십자가를 그어 봤대요.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먼 산을 쳐다보고서

자기 앞에다가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긋더래요.

그때에야 교우인줄 알고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인사했습니다.

평택에서 공소 회장하던

아무개 올시다.

천안에서 신자 생활하던

아무개 올시다.

이렇게 해서 천주교

교우촌이 만들어져

배티를 중심으로 무려

15교우촌이 만들어져요.

그리고 65년 동안을 들키지 않고

거기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 와중에 최양업 신부님이

한국의 첫 번째 본당신부님으로

그곳에 오시게 되죠.

기해박해와 병오박해는

무사히 넘어가는데

1866년 병인박해 그때는

피할 길이 없었어요.

장사꾼이 드나들면서

소백산 밑에 이상한

집단들이 떼로 몰려 산다고

소문을 내기 시작했죠.

포졸들이 염탐을 해보니

감쪽같이 사라졌던

그 천주학쟁이들이 깊은

산에 모여 사는 거였죠.

나라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군대가 동원이 되어 하룻밤

사이에 습격을 합니다.

한 사람도 도망가지 못하게

길을 전부 차단하고 군대가

15교우촌을 급습을 합니다.

살아남은 자가 없었어요.

아이들부터,

잠자는 이불 위에

창을 꽂고 머리를 잘라내고

도리깨로 쳐 죽이고.

살육이 끝나고 난 다음에

시신을 수습할 사람이 없었대요.

산에 있는 짐승들이

피 냄새를 맡고 내려와서

실컷 뜯어먹어대요.

배 터지게 뜯어먹고 배부르면

올라갔다가 배 꺼지면 또 내려와

남아있는 시체 또 뜯어먹고.

그 뼈는 나뭇잎에 미치고

바람에 날리는 흙에 묻혀서

땅속으로, 땅속으로 묻혀졌죠.

수많은 무명순교자들이

있는 곳이 배티성지 에요.

300년 동안 땅속에 숨어

있다가 초대교회 신자들이

세상으로 나왔듯이,

베드로 사도의 목이 잘렸던

그 자리에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져 있듯이,

동양의 까따꼼브를 이뤘던

그 자리에 지금은 최양업

신부님 기념대성당이

웅장하게 서있습니다.

이게 바로 부활의 징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못 봤어요.

증명하라고 하면 수학공식처럼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징표와 부활의 증거는

2000년 동안

수없이 많이 있었죠.

한국교회는 박해와

희생의 역사를

딛고 성장하고 있는 교회요,

순교자들의 피를 마시면서

거름이 되어 꽃이

피고 있는 교회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주님의 표징들입니다.

주님 부활의 징표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도 무덤도

그 자체는 패망과 죽음과 절망을

상징하는 흉물 덩어리입니다.

절망의 극치인 그 십자가에서

주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인간의 모든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기쁜 겁니다.

우리도 이 시대의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우리 가정의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희망차게 부활합시다.

회칠한 무덤이 아니라

희망의 상징인 빈 무덤의

주인공이 되도록 합시다. 아멘.

2018년 부활 성야(3/31)

서운동성당

-김웅렬(느티나무)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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