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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0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7 조회수2,39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4월 7일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제1독서 사도 4,13-21

그 무렵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13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 그러나 병이 나은 사람이

사도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최고 의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저희끼리 의논하며

16 말하였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17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18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다.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0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백성 때문에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 풀어 주었다.

그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 마르 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어떤 신부님과 함께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모임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모임 장소에서 만난 신부님과

함께 차 한 잔 하러

카페에 간 것입니다.

창가에 앉았고 제가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서

카페카운터로 갔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함께 있었던

신부님께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쎄 테이블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테이블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흔들렸나 봅니다.

저는 테이블에 이상이 있으면

다른 곳에 앉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답합니다.
“이렇게 하면 다음 사람도

이곳에 앉을 수 있잖아요.”
작은 감동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내 것도 아닌데 자신에게

불편을 주는 것을 고치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기 돈 내고 이용하는 곳에서

그 불편함을 스스로 고칠 만큼

정성을 들이는 사람을 보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신부님께서는

자기 가방에 있는 도구를

이용해서 나사못을

죄어 놓았습니다.

이 신부님께는 내 것과

 남의 것이라는 구분도,

내 일과 남의 일이라는

 구분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구분이 없다보니

모든 것이 자기 것이고

자기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을 가리켜서 어떤

사람들은 ‘참 오지랖도 넓다.’

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오지랖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많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내 것과 남의 것이라는 구분,

내 일과 남의 일이라는 구분이

사라지는 이런 관심과 사랑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을

 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이제 자신의 안위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의 부활 역시

 남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관심과 사랑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해

부활 소식을 들어도 믿지 않았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소식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시지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

행동을 보여주신 사랑을 남의 일,

남의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세상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떠할까요?

관심과 사랑을 세상에 표현하기

보다는 내 것 내 일만을 주장하면서

이기심과 욕심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 세상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 더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원하셨던

새 하늘 새 땅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폭넓은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관심을 그는 사물이나

사람에게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러셀)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

"아이가 가르쳐준 사랑"

(‘좋은 글’ 중에서)

늦게 얻은 딸을 너무

사랑했던 아빠가 있었습니다.

아빠의 취미는 인형을 좋아하는

딸에게 선물하기 위해 인형을

고르는 것입니다

. 덕분에 딸의 방에는

예쁜 인형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새로운 인형을

사 들고 돌아온 아빠가

어린 딸에게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우리 예쁜 딸은 많은 인형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

어떤 인형이 가장 좋아요?”
그런데 잠시 망설이던 딸이

가장 좋아하는 인형이라고

내미는 것을 보고 아빠는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인형은 오래전 딸에게

사준 인형이라 지금은 매우

낡고 볼품이 없었습니다.

아빠가 왜 그 인형이

가장 좋은지 묻자

딸이 대답했습니다.
“이제는 이 낡은 인형을

좋아하거나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으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해 주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헌 것보다는 새것을 좋아하고

 이왕이면 화려하고

멋진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약하고, 부족하고,

불쌍한 것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우리들입니다.

이득이 없어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이

되라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라는 사랑을 짊어지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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