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몸에 새겨진 부활의 증거
작성자김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7 조회수2,087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부활 제2주일(하느님 자비 주일)


<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복음: 요한 20,19-31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다.


 (1400)

 

 

예수님의 부활은 왜 기쁠까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아닙니다. 그분은 부활하시고 우리는 지옥가면 그분 부활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모든 이가 기뻐해야 할 것이겠지만 당시 유다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을 매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기쁜 게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때문에 기쁠 준비가 된 사람들만 기쁜 것입니다.

당시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가장 기쁠 준비가 되어있었던 사람은 그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먼저 당신 부활을 알리십니다. 왜냐하면 제일 기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모두 도망을 쳤기 때문에 예수님 부활이 어느 정도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시간을 두고 준비시킬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 빈 무덤이 부활의 증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빈 무덤은 그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 부활의 가장 큰 증거는 그 빈 무덤을 지킬 줄 알았던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당시 여자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그것도 행실이 좋지 못하고 일곱 마귀에 들렸던 여자가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공공연하게 선포하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예수님이 진짜 부활하지 않고서는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부활로 우리가 변화되어 우리 몸에 당신 부활의 증거를 새기고 다니며 당신 부활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레나 마리아는 두 팔이 없고 한 다리는 30cm밖에 안 되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물론 장애인 올림픽에서 많은 금메달을 따고 음악과 그림 등에 소질이 있으며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레나 마리아의 어머니는 마리아를 장애인으로 여기지 않아 일반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침울하게 돌아왔을 때 엄마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엄마, 난 친구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친구가 없어. 예수님이 네 안에 계시잖아!”

 

참 말이 안 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믿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세상엔 나 혼자구나!’라는 고독감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하도 힘들어서 외롭다, 외롭다!”를 나도 모르게 하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신교 다니던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천주교 신자잖아. 왜 외로워? 예수님이 함께 계시잖아!”

저는 속으로 그걸 누가 모르냐, 임마?’라고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하며 그 친구의 말을 계속 되뇌었습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예수님이 계신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그때 느꼈던 고독감을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외롭지 않으니 주위에 친구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참 희한한 경험을 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오늘은 더 이상 수업을 할 수가 없겠다. 노래는 마음에서 나오는데, 너는 너무 슬퍼. 그런데 어떻게 기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니?”라고 말하고 가버렸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엎어져 엄청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레나는 유일하게 전화기를 잡을 수 있는 다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레나 마리아시죠?”

...”

,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전화를 하라고 하셨어요. 레나 마리아를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음을 알려주라고 하셨어요!”

레나 마리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그분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증명하라고 하자면, 나는 나약한 저의 육신과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는 제 입술을 당당히 보여주겠습니다.”

[참조: 유기성 목사,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유투브]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거는 변한 내 자신이 되어야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렇게 살 수 없겠만 지금은 완전히 변해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몸이 곧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거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

예수님은 네 명이 들고 온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사람의 아들에게 죄의 용서의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에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생각을 굳힙니다.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집단이 전체로 자신들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다고 선포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문화에서 당장 돌을 집어 던져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부활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직접 그런 권한을 받지 않았다면 단체로 머리가 이상하게 되어 그렇게 다니기는 쉽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시고 그 권한으로 이천년 동안이나 계속 교회 안에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교회가 예수 부활의 증거를 몸으로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비록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일어나야 할 기적들입니다. 고정원 씨는 자신의 가족을 몰살한 유영철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이태석 신부님은 의사였음에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다가 대장암 말기가 되도록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마더 데레사나 수많은 성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해 낼 수 있었겠습니까? 만남은 이렇게 기적을 일으키고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은 자기 자신도 놀랄 기적을 자신 안에 품게 만듭니다.

 

아기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2,000번 정도를 넘어진다고 합니다. 만약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늑대에게서 자랐다면 그 아기는 한 번도 일어서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걷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아기가 부모를 만났다면 그 아기는 부모처럼 되기 위해 2,000번을 넘어져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 부모가 자신의 부모가 맞는다면 자신도 그 부모처럼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늑대에게 키워진 아이가 본다면 그 아이가 그렇게 노력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어서는 모습이 그가 사람이란 부모를 만났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우자나 이웃을 2,000번 정도 용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증거입니다. 십일조를 내도 아깝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도 역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증거입니다. 이런 변화를 입은 사람만이 부활의 확신을 갖고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전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확연한 내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분은 아직 기쁠 준비가 덜 돼 있으면서도 그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만으로 기쁜 척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기뻤던 이들은 정말 그분을 만나서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가졌던 사람들뿐입니다. 우리 몸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거를 품고 있나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