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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8 조회수3,32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8년 4월 8일

부활 제2주일

제1독서 사도 4,32-35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제2독서 1요한 5,1-6

사랑하는 여러분,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복음 요한 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잘 아는 신부가 전화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가 너무나
이상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통화라서 귀담아
듣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전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고,
이 여성과 10분 넘게
통화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글쎄 “그래, 나도 사랑해.”
라고 말했거든요.
순간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여자 친구가
생긴 것일까?
혹시 사제직을 그만두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젊은 여성과 10분
이상을 통화하고,
 여기에 사랑한다고 말하니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한참을 망설인 저는 어렵게
이 신부에게 말했습니다.
“너 혹시 고민 있니?”
그러자 “아니 없는데?”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혹시 여자 생겼니?”
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무슨 말이야?
그런 소문이 있어?
영광인데?
이 얼굴에도 무슨 스캔들이 났나봐?”
라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합니다.
 저는 심각한 모습을
지으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방금
네 전화 통화를 들었거든.
그런데 어떤 젊은 여성과
오랫동안 통화하고 있더라.
 그런데 전화를 마치면서
‘사랑해.’라고도 했잖아.”
이 말을 들은 신부는
박장대소를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동생이야.
그런데 동생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 돼?”
솔직히 저도 그렇지만,
제 주위에서 보면 가족끼리
사랑을 자주 말하고
전화 통화도 이렇게 오래하는
경우를 보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신부의 전화 받는
모습이 생소했고 이로 인해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사실 좋아하는 이성을 대하듯이
가족에게 다정다감한 말과
사랑의 표현을 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지요?
주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 앞에 부활하시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 20,19)였습니다.
세상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도
 부족한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지금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라면서
화를 내셔야 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큰 사랑으로 오히려
 평화를 빌어주십니다.
더군다나 믿지 못하는
 토마스를 위해서는 당신의
 손을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서 믿으라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요한 20,27 참조)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신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사랑과 자비로 제자들은
진심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초대교회의
모습을 제1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으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 4,32)
진정한 변화는 바로 사랑과
자비를 통해서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 사랑과 자비를
특별한 경우에만 행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가까운 내 가족,
내 이웃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힘이 되어주는 행동 하나 없이
그저 ‘내 사랑을 알겠지.’하면서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랑을 어색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사랑하고,
당연히 이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당연히 주님을
향해 내 사랑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하십니다.
(1요한 5,4 참조)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사랑을 통해서 세상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요?
나로부터 시작하면서 점차
세상 밖으로 펼쳐나가야 합니다.
그때 한마음 한뜻으로
사랑하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질 것입니다.
사랑에는 많은 질문이
필요하지 않아.
사랑은 묻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거야.
(파울로 코엘료)
오늘의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인터빅스"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구덩이 속같이 어둡다
어떤 신에게도 정복되지 않는
영혼을 내게 주심에
 나는 감사하리라
가혹한 상황의 손아귀에서도
나는 움츠러들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으리
운명의 막대기가 날 내려쳐
내 머리가 피투성이가 되어도
나는 굽히지 않으리
분노와 비탄 너머에 어둠의
공포만이 거대하고 절박한
세월이 흘러가지만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으리
지나가야 할 문이 얼마나
좁은지 얼마나 가혹한 벌이
기다릴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는
열일곱 살의 나이에 골관절
 결핵으로 다리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커다란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가 그를
진정한 운명의 주인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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