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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10 조회수3,037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4월 10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4,32-47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

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복음 요한 3,7ㄱ.8-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먼저 공지사항

한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갑곶성지에

있지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 되냐고요?

그건 아니고요... 사실 오늘부터

4월 22일까지

유럽 성지순례를 갑니다.

솔직히 가기가 싫습니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이번에 가는 성지순례 코스도

 세 번째이기 때문에 처음에

가졌던 설렘도 전혀 없고,

오랜 시간을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참으로 신기한 것은

막상 순례가 시작되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얻게 된다는 것이지요.

다시 돌아올 것을 생각하면

또 끔찍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오늘부터 자리를 비웁니다.

 새벽 묵상 글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곳의 인터넷 사정이 많이

좋아졌으면 묵상 글을

올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22일까지

 조금만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묵상 글을 올립니다.
버섯을 성분 조사하면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물 90%, 단백질 3%, 탄수화물

5%, 지방 1%, 미네랄 1%.
문득 그러면 독버섯과

식용버섯의 구성 상 차이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거의 모든 구성 성분 안에

독이 들어 있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틀렸습니다.

글쎄 1%의 미네랄 안에

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독버섯과 식용버섯으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의외였습니다.

겨우 1%에 해당하는 부분에

의해서 사람의 생사가

결정된다는 것이 말이지요.
버섯 전체 구성 성분의 1%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문득 사람의 말도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말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죽을 만큼의 아픔과

 시련을 주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지요.

런데 그 죽이는 말이 사람이

쓰고 있는 말의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아마도 1%? 어쩌면

 0.1%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얼마 안 되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독으로 다가가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나의 말이 독이 되는

 말이 아닌 생명이 되는 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떠올려 보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니코데모에게

하시는 말씀 역시 바로

생명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믿는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 역시 생명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죽이는 말을 쓰면서

결코 주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있는 말은

 과연 어떤 말이었을까요?

 남을 쉽게 판단하고 단죄한다면,

조금 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서 말하지 않는다면,

 부정적으로만 말한다면

결코 주님을 믿는 사람의

말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이 강한

독성을 가진 죽이는 말이 아닌,

생명을 가진 살리는 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특히 주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대화의 기술은

알맞은 곳에서 알맞은 말을

하는 것뿐 아니라,

안 맞는 곳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불쑥 해 버리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도로시 네빌)

독버섯이 예쁘긴 합니다.

"어느 부자의 대화."

아버지가 직장 없이

빈둥빈둥 집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씀하십니다.
“에디슨은 너 나이 때

전기를 발명했다.

너는 지금껏 뭐했냐?”
아들은 이 아버지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그런 소리 마세요.

링컨은 아버지

나이에 대통령 했어요.”
비교하는 말은 절대로

힘이 되는 말이 아닙니다.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이

바로 살리는 말이 아닐까요?

니코데모와 대화하시는 예수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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