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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12..강론"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12 조회수3,908 추천수3 반대(0) 신고

 

 

요한 3,31-36(부활 2 )

 

 신앙생활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느냐, 어떤 것을 했느냐?”, “잘 했느냐, 못 했느냐?” 하며, 따지고 평가하길 자주 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갈망하고 어떤 열망을 품느냐?”,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삶의 질이 달려 있습니다. 곧 돈에 열망을 품은 사람은 탐욕스러워 지고 돈의 노예가 될 것이고, 사랑하기를 열망한 사람은 사랑스런 사람이 되어 갈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면 생명이 충만해지고, 하느님을 열망하면 하느님이 되어 갈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3,36)

 

  왜 그럴까? 왜 그분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분의 신원과 그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곧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졌다고 누구나 내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주시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신원을 위에서 오시는 분”, “하늘에서 오신 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반복해서 증언합니다. 곧 아드님(예수님)은 위에서 오신, 보내진 사랑입니다.

 여기서, 혹은 하늘이란 단순히 하늘과 땅, 위와 아래라는 상대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태어난 이오신 분라는 차이, 곧 본질적으로 다른 절대적인 차이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는 태어난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태어난 이가 아닌, 우리와는 전적으로 다른 오신 분, 곧 태어나지 않은 영원한 생명이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분, 곧 우리를 넘어서 계시는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분을 받아들이는 데는 이해를 넘어선 믿음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믿음은 단지 자신을 열고 그분을 받아들이는 내면적인 응답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자신을 그분께 바치는 행위를 동반합니다. 곧 응답을 통하여 자신을 건네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CREDO"라는 단어 역시, 'CRO'라는 가슴, 심장, 생명이라는 말과 ‘DAER'라는 주다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곧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심장, 생명, 곧 자기 자신을 건너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인격적인 결속을 의미합니다. 곧 실제로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인 것이다. 그래서 믿는 이에게서는 이미 신적인 삶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오신 분이 이미 와 계신 분이 됩니다. 이미 신적인 삶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여, 믿는 이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곧 현재가 됩니다. 구원이 현재가 됩니다. 현세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살고 하늘나라를 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필리 3,20) 입니다. 땅에서 부활의 기쁨을 사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골로 3,1-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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