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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13 조회수3,224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4월 13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 5,34-42

그 무렵

34 최고 의회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났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로서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사이였다.

그는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 뒤,

35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생각하십시오.

 36 얼마 전에 테우다스가 나서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을 때에 사백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해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끝장이 났습니다.

37 그 뒤 호적 등록을 할 때에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나서서

백성을 선동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38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39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40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42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

복음 요한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이제 막 더하기 빼기를

 배우는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사과가 열다섯 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다섯 개를 먹었습니다.

이제 몇 개가 남았을까요?”
그러자 한 아이가 자신 있게

 “다섯 개요!”

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열다섯 개 중에서

다섯 개를 먹었어.

그렇다면 먹지 않아서

남은 사과가 몇 개일까?”

라고 다시

설명하면서 물었지요.

그래도 이 아이는 자신 있게

 “다섯 개요!”

라고 답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 아빠가 먹는 게

남는 것이라고 했어요.”
이 대답도 틀린 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빠의 논리와 선생님의

논리는 분명히 다릅니다.

선생님께서는 수학적인 개념을

알려 주는 것이고,

아빠는 생존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 둘 중에서 어느 것만 맞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스포츠 경기를 좋아해서

보다보면, 종종 비디오

판독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심판의 위치에 따라서 내린

판결이 틀릴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판결을 위해 비디오를

되돌려서 정심인지,

오심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심판만을 평생 했다고 해서

단 한 번도 오심을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심판의 보는 위치에 따라서

오심도 분명히

나올 수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 사람에 대한 판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틀렸다고 판단하거나

단죄하는 것이 잘못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상의

관점이 아닌 사랑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던 것 같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하는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관점으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이 많은 군중을 보신 주님께서는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필립보는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해서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지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1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이라고 하지요.

2018년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7,580원이니까 8시간

노동으로 생각했을 때,

1데나리온은 6만원이

조금 넘는 액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 우리나라 시새로

 1,2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먹을 것도 얻어먹는

처지에 이렇게 큰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의 관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린아이가 가져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습니다.

주님의 관점으로는 가능한 일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도

많고 틀린 것도 많지만,

주님의 관점인 사랑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 자신에 대해서,

내 이웃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가능한 일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주님의 관점인

사랑밖에 없습니다.

지혜란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여행을 한 후,

스스로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이번 성지순례에

저와 함께 하시는 분들입니다.

"지혜가 필요한 때"

코카콜라 사장이었던

브라이언 다이슨은 인생을 5

개의 공을 가지고 노는

저글링에 비유했습니다.

그 다섯 가지는 일,

가족, 건강, 친구,

정신의 공입니다.

이 5개의 공이 모두

똑같은 공은 아닙니다.

하나는 고무공이고

 나머지는 유리공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일’만 고무공이고,

나머지는 유리공입니다.

그래서 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 번 깨지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만큼 조심스럽고 세심한

지혜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사실 이러한 지혜가

부족한 우리입니다.

나머지 역시 고무공이라고

생각할까요?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일만을

강조하고 다른 것들은

소홀히 여깁니다.

그래서 가족이 깨지고,

 친구가 없고, 건강을 잃고,

정신이 망가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라나다 대성전에서 나오는 길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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