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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14 조회수1,89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4월 14일

부활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 6,1-7

1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4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콜라오스를 뽑아,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

복음 요한 6,16-21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16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18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19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제가 있는 갑곶성지로

저의 강의를 들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적게는 1시간,

많게는 2시간 30분 이상의

강의를 들으러 자신의

집에서 멀다고 할 수 있는

강화의 갑곶성지까지 오십니다.

한 번은 이분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강화에 살고 있습니다.

강화하면 무엇이 유명합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진달래 축제, 화문석, 인삼,

장어, 복어, 벤뎅이, 숭어....

그러면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제가 지금 강화에 살고 있습니다.

강화하면 무엇이 유명합니까?”
그러면 눈치 빠른 분들이 답변합니다.

뭐라고 답변할까요? 맞습니다.

 “빠다킹 신부여.”
그리고 저는 “제 강의를 들으러

이 강화까지 왔으니 당연히

저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것을 찾으면 안 됩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지요.

사실 이 강의의 도입은

제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어느 유명 강사가 사용하던

방법을 제가 살짝 바꿔서

사용해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전체가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삶의 목표를 분명히 알고

살아야 그 안에서 집중을 하면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엉뚱한 곳에 목표를 두고 있다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저의 강의를 듣고서 삶의

도움을 얻고자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강의에 집중할 수 있지,

만약 강의 후에 사람들과

함께 먹을 장어만 떠올리고 있다면,

강화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볼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강의를 통해

가졌던 원래의 목표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정 안에서, 사회 안에서,

신앙 안에서 그리고 삶 전체 안에서

얻고자 했던 내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목표를 분명히 알고 집중할 때

분명히 의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뀐다고 말이지요.

지금을 바라보는 내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는

제자들은 귀신이라고 생각했기에

깜짝 놀라면서 두려워하지요.

주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들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면

진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두려움과 불안의 굴레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잘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계속해서

힘주어 말씀해주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제자들이 주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했을 뿐인데,

그 배가 어느새 가려던 목적지에

닿았다고 복음은 전해줍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내 안에 모시려고

노력해보십시오.

분명히 내 자신의 목표에

가까이 가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한 것이 아니다.

잘되지 않는 방법

1만 가지를 발견한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

어제 문 닫기 직전에 간신히

입장을 할 수 있엇던 세비아 대성당.

"생각의 전환"

혹시 발 닦은 물로

세수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아마 이렇게 세수를 하고 있다면

더럽다면서 야유를 보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볼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제 순례를 마치고 호텔 방으로

들어온 저는 뜨거운 물이 가득 담은

 욕조에 들어갔습니다.

따끈한 물이 저의 피곤함을

말끔히 씻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반신욕을 하면서 저는

몸의 구석구석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 많은 물을 반신욕만 하고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정신을 차리려고

욕조 안의 물을 제 얼굴에

뿌리면서 세수를 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습은

발 닦은 물로 세수하는 것인데?’
욕조 안의 물로 세수하고

있다고 해서 더럽다고 야유를

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이웃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워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세상 안에서 행복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행복을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생각의 전환이 나를 더욱 더

풍요로운 삶으로 이끌어줍니다.

알람브라 내의 왕실 경당에서의 미사를 마치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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