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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1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15 조회수2,057 추천수3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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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4월 15일

부활 제3주일

제1독서 사도 3,13-15.17-19

그 무렵 베드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제2독서 1요한 2,1-5ㄱ

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복음 루카 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제가 아는 부부는 오랫동안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기도를 해서

 그런지 드디어 원하던

아기를 갖게 되었지요.

이 부부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컸습니다.

이 부부가 제게

이런 말을 해주더군요.
“신부님, 이 세상에 생명이

태어난 것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어요.”
처음에는 결혼과 동시에 쉽게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기울이고

 또 많은 마음고생을 하고 나니

자기들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아기가 아님을,

커다란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기적의

손길을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식으로 주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기적 아닌 것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순간에서도

포기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일 문장이 “두려워 마라.”

라고 하더군요.

이 문장을 누가 직접

세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책에서 보니 자그마치

 365회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매일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손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려움은

나의 것이 되며 쉽게 포기와

절망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 후

 제자들은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자신들도 주님과 같은 끔찍한

 죽음을 당할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바로 이제는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나온

그들의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들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이러한 두려움과 절망 속에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하신 첫 마디는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평화가 너희와 함께!”

(루카 24,36)였습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심으로 인해,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대신 부활이라는 커다란

희망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평화를

가지고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세상에 선포해야

함을 명령하십니다.

(루카 24,47 참조).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신

(1요한 2,2 참조)

주님께서 평화를 가지고

우리 곁에 계시기에

우리는 분명히 용기를 갖고

두려움 없이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삶 안에

 주님을 초대하지 않을까요?

아니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보려고 하지 않을까요?
장 지오노의 소설로 너무나도

유명한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이 거둔

 ‘성공’을 보여 줍니다.

이는 누구나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농부인 자기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도 고결하고

거룩한 생각을 품고 굽힘없이

목표를 추구해 나가면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것이지요.
바로 이 모습을 주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심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 가득한 마음을

품고서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스스로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에게서 또 하나의

기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정으로 기적을 원한다면 먼저

주님을 내 안에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베드로 사도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사도 3,19)
바로 그때 진정한 평화 안에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앤드류 매투스)

어제 일정의 시작은 스페인 광장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은 누구?"

실연당한 여인이

길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지혜롭다는 평이

자자한 한 철학자가

이 여인에게 우는 이유를

묻고는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잃은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잃은 것이지요.

따라서 누가 더 손해입니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 한 명을

잃은 사람이 더 괴로워하고

힘들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습니까?

실연의 아픔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어떤 경우에도 작아지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포르투갈의 파티마 성지에 도착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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