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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21 조회수2,46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4월 21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 9,31-42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복음 요한 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제 성지순례를 모두 끝내고

다시 한국으로 오늘 돌아갑니다.

아마 주일 아침에 도착하겠군요.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성지순례를 끝낼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면서 이제 한국에서

새벽을 열며 묵상 글로

다시 만날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세계적인 예술가 피카소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화가들로,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피카소의

의견을 구했지요. 그때마다

피카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참 잘 그렸습니다. 멋진 그림입니다.”
항상 이렇게 칭찬의 말을 하는

 피카소에게 한 기자가 정말로

그 그림들이 좋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사실 저는 그들의

그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 생각은 온통 제가 그릴

다음 그림에 가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굳이 그들의 그림에 대해

험담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피카소의 이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실 남에 대한 평가를 하다보면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들은 자기 자신보다

남의 것에 더 많은

집중을 하고 있을까요?

특히 남들의 부정적인

모습만을 바라보다보니

정작 자신의 본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들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주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다가서기

힘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모든 사람들 안에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은 주님께 대한

부정적인 마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

말씀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지요.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죄 많은 자기 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아무 죄도 없는 주님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도

이렇지는 않았을까요?
이제는 내 모습을 먼저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베드로 사도처럼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내 자신은 주님의

사랑에 대해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었는지를

묵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거지.

(윌리엄 셰익스피어)

바로셀로나의 사크라 파밀리아 대성당.

"거쳐야 할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보세요."

어느 책에서 이러한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부부싸움 후 냉전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괴롭다는

내담자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지금부터 상상력을 동원해보십시오.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밤사이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부부문제가

완벽하게 다 해결된 것입니다.

잠에서 깼을 때 ‘어떻게 된 거지?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때 두 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아내가 따뜻한 눈길과 환한

 미소로 저에게 얼른 일어나서

 함께 커피를 마시자고 한다면

그런 생각이 들겠죠.”
“네, 그렇게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거쳐야 할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봅시다.

그러면 지금부터 시도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늘 곰곰히 생각하셨던 성모님을 떠올려 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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