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명나무와 선악과(창세2:4 -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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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8-04-27 | 조회수4,50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공동번역성서 사용
생명나무와 선악과
4 하늘과 땅을 지어 내신 순서는 위와 같았다. 야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였다.
5 땅에는 아직 아무 나무도 없었고, 풀도 돋아나지 않았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직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던 것이다.
6 마침 땅에서 물이 솟아 온 땅을 적시자 7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8 야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당신께서 빚어 만드신 사람을 그리로 데려다가 살게 하셨다.
9 야훼 하느님께서는 보기 좋고 맛있는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그 땅에서 돋아나게 하셨다. 또 그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돋아나게 하셨다.
10 에덴에서 강 하나가 흘러 나와 그 동산을 적신 다음 네 줄기로 갈라 졌다. 11 첫째 강줄기의 이름은 비손이라 하는데, 은과 금이 나는 하윌라 땅을 돌아 흐르고 있었다.
12 그 땅은 좋은 금뿐 아니라 브돌라라는 향료와 홍옥수 같은 보석이 나는 곳이었다.
13 둘째 강줄기의 이름은 기혼이라 하는데, 구스 온 땅을 돌아 흐르고 있었다. 14 셋째 강줄기의 이름은 티그리스라 하는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고, 넷째 강줄기의 이름은 유프라테스라 하였다.
15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하시며
16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야훼
하느님’ 히브리어로는 ‘엘로힘 야훼’입니다. 2장 3절까지 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이 그냥 ‘엘로힘‘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의미는 ’능력의 하느님‘’전지전능한 하느님‘입니다.그런데 오늘 본문부터는 하느님의 이름이 거의 ‘엘로힘 야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엘로힘 야훼’라는 단어가 무려 6,800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이 ‘엘로힘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 단어인지 아시겠지요? 어떻게 보면 성경 전체의 주제가 바로 그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 안에 모두 내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이름의 의미는 중요한 것입니다.
‘야훼’라는 이름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 출애굽기로 가보겠습니다. (출애3:14‐15)
14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 라고 하시는 그분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15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시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 대대로 이 이름을 불러 나를 기리게 되리라.
2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야훼다. 3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전능의 신으로 나를 드러낸 일은 있지만 야훼라는 이름으로 나를 알린 일은 없었다. 4 또 나는 그들이 유랑민으로 몸붙여 살던 가나안 땅을 주기로 그들과 계약을 세웠다. 5 나는 에집트인들에게 혹사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듣고 내가 세운 계약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의 창조에 대해 반복 설명이 시작되는 2장 4절에서 ‘야훼 하느님’ 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바로 그 ‘인간’과 계약을 맺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2장 4절 이하는 창세기 여섯째 날의 창조를 ‘사람’이라는 존재에 더욱 초점을 두어 부연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시면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모세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하느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강조하는 단어와 문투(文套)를 사용해서 2장 4절 이하를 기록하는 것입니다.5절을 잘 보시면 그 문장의 강세(强勢)는 ‘들에 초목이 나지 않았고 밭에 채소가 없었다는 것’에 있지 않고 ‘경작할 사람이 없었다’에 있습니다. (창세2:5)
5 땅에는 아직 아무 나무도 없었고, 풀도 돋아나지 않았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직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던 것이다.
’땅‘에 나무와 풀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경작하고 다스릴 땅에 초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 문장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천지 만물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직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스리고 경작해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경작지(밭과 들)에 초목과 채소가 존재치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19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는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아담이 동물 하나하나에게 붙여 준 것이 그대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3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무엇이든지 이유가 닿기만 하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창조주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과 5 또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 고 하신 말씀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 하고 대답하셨다.
계속해서 7절을 보시면 하느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흙’이라고 번역이 된 ‘아파르 민 하아다마’ 는 ‘땅의 티끌’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티끌로 지어졌다는 것을 밝힘으로 해서 사람은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력이 끊기고 하느님과 관계가 없는 자가 될 때 그저 티끌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티끌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를 가리킬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2 '나는 잿더미에서 딩굴던 너를 뽑아 높이 세우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영도자로 삼았다. 그런데 너는 여로보암과 같은 길을 걸어 같은 죄를 짓고 내 백성을 죄의 길로 이끌어 나의 분노를 사는구나. 3 보아라, 내가 바아사와 그의 가문을 모조리 쓸어 버리리니, 네 가문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과 같은 운명에 떨어지리라. 4 바아사 가문의 사람이 성 안에서 죽으면 그 시체를 개가 뜯어 먹겠고 들에서 죽으면 새가 쪼아 먹으리라.'
하느님께서 바아사를 티끌에서 들어서 세웠는데 그 바아사가 하느님의 목적에 맞지 않게 되자 다시 티끌로 돌려보내십니다. 그와 그에게 속한자의 시체를 개와 새들이 먹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묵시록의 언어가 등장하지요? 저주요 심판입니다. 마치 창세기 3장 19
절의 저주가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 같지요? 아담이 죄를 짓자 하느님은 ‘네가 흙이니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티끌인 인간이 하느님과 의로운 관계에 있을 때는 살아있지만 하느님의 생명력이 떠나버린 인간은 그저 티끌인 것입니다. 피조물에게서 하느님이 떠나시는 것 그 자체가 저주요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불신자들은 이미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서는 ‘믿지 않
는 자들은 벌써 심판을 받았다’라고 명기를 해 놓은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지옥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6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옷을 찢고 머리에 먼지를 쓴 채 저물 때까지 야훼의 궤 앞에 엎드려 있었다.
아이城에서 패배한 여호수아의 모습입니다. 티끌이지요? 이렇게 성경에서 ‘티끌‘’아파르‘는 저주요 심판이요 패배요 보잘것없음의 상징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富를 쌓고 명예와 인기를 누린다 해도 하느님과 관계없는 자가 될 때 그 사람은 저주와 심판과 패배의 보잘것없는 티끌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부러운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절대 교만할 수도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 확인했듯이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만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그 외양이 화려해도 죽은사람, 티끌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 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 그
가 가진 재산이나 외모나 재력 같은 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올림픽이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다 별
걸 다 만들어놓고 모든 인간들을 경쟁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래서 티끌들은 그 경쟁의 재미 속에서 자신들의 실제 모습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저주인 것입니다.
하늘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은 절대 경쟁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기기 위해 남을 밟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티끌에 불과한 사람들이었는데 하느님께서 이렇게 생명 있는 자로 만들어 주셨다는 그 복음이 너무나 감사해서 사소한 것들로 경쟁하지 않고 세상이 추구하는 그 ‘힘’이 없다고 풀 죽어 하지도 않습니다. (야고1:9‐11)
9 가난한 형제는 하느님께서 높여 주시는 것을 기뻐하고 10 부요한 형제는 하느님께서 낮추어 주시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아무리 부요한 사람이라도 들에 핀 꽃처럼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11 해가 떠서 뜨겁게 내려 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져서 그 아름다움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사업에 골몰하는 동안에 죽어 버리고 맙니다.
(야고2:1‐4)
1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신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우하지 마십시오.
2 가령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왔다고 합시다.
3 그 때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 '여기 윗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밑바닥에 앉든지 하시오' 하고 말한다면
4 여러분은 불순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여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떠나서는 티끌에 불과한 사람임’을 아는 사람들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서도 안 되고 그들을 경쟁상대로 보아서도 안 됩니다. (이사2:22) 22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라. 코에 숨이 붙어 있을 뿐, 아무 보잘 것 없느니.
하느님과 관계없는 인간들은 코에서 숨이 멎는 순간 순식간에 허망한 티끌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엄청난 부를 쌓고 어마
어마한 명성과 인기를 누렸어도 그 코에서 숨만 멎으면 그 사람은 며칠 안가서 티끌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지요. 그래서 욥기4장에 보면 인간을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도 눌려 죽을 자’라고 묘사를 하는 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자기부인)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구하며 겸손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관계없는 우리는 그저 티끌이니까.
하느님은 자기희생,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의 백성 안에 영원히 내주 하시는 방법으로 그 백성들을 생명의 기운 정도가 아닌 ‘생명’으로 만들어내실 것임을 성경 전체에서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8절부터는 에덴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 따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인간을 그 곳에 두셨습니다. ‘에덴’은 ‘garden of joy' '기쁨의 동산’ 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서 ‘동산’이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간’은 ‘울
타리를 치다’라는 의미의 단어인 ‘가난’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은 울타리가 있는, 다른 말로 외부와 차단된 그 런 곳이었습니다. 그 에덴동산은 하느님의 백성들만 들어갈 수 있는 울타리가 있는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선악과나무는 하느님의 계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나무의 열매인 선악과는 단순히 먹어서는 안 되는 금 단의 열매가 아닌 것입니다. 만일 그런 것이었다면 동산 중앙이 아니라 동산 구석에 심어 놓으셨겠지요?) 그리고 생명나무는 말 그대로 생명의 발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최초의 하느님의 백성에게 하느님의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창2:17)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하느님께서 최초의 인간에게 계명을 주시고 그 계명을 어길시 는 죽이시겠다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에서만 살아있는 존재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살아계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하느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면서 살아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분께 자신의 전부를 의탁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계명을 상징하고 있는 선악과나무를 통과하지 않고는 생명나무로 나아갈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묵시2:7) 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나는 승리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
여기 분명 생명나무의 열매(果實)를 먹을 수 있는 자는 ‘승리하는는 자’ 라고 나오지요? 그러니까 생명나무의 열매는 선악과나무의 시험을 이긴 자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48 흙의 인간들은 흙으로 된 그 사람과 같고 하늘의 인간들은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습니다. 49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로마4:7‐8) 7 '하느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두신 사람들은 행복하다. 8 주께서 죄없다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도 행복하다.'
이렇게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이 두 그루의 관계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죽음 속에 숨겨진 생명’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창조주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를 살해하는 피조물을 보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
과 하와에게 하느님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그들은 자기들에게 명령을 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살해했을 것입니다. 아니라고
요? 실제로 이 땅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느님은 그 주제넘은 티끌들에게 살해를 당하심으로 자신을 살해한 티끌들에게 생명을 부어주시는 그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인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시고 통치하실 것이라는 것이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 엄청난 선물 앞에서 이 땅에서 잠깐 주어지는 우리의 처지나 상황으로 절망하며 낙담하겠습니까?
신앙인은 자신의 처지를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는게 아니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복음 안에서
그 처지를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내 소원이 들어지지 않아서 울고불고 하는자들이 아니라 왜 그 놀라운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있는데도 이처럼 작은 고난에도 일엽편주처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가를 고민하시면서 우셔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했던 자료입니다. 참고하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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