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4월 28일(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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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4-28 | 조회수3,46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4월 28일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했는데 배척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선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는 필립보에게, 당신을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라시며, 당신 이름으로 청하면 다 이루어 주겠다고 하신다. ◎제1독서◎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말씀입니다. 13,44-52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거의 다 모여들었다.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돌아섭니다.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화답송◎ 시편 98(97),1.2-3ㄱㄴ.3ㄷㄹ-4 (◎ 3ㄷㄹ)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복음환호송◎ 요한 8,31-32 참조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달으리라. ◎복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복음입니다. 14,7-14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보아서라도 믿어라. 너희에게 말한다.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하게 될 것이다. 가기 때문이다.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오늘의묵상◎ 하느님을 직접 본 사람은 없습니다. 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은 볼 수 없는 분이시니, 그분을 믿는다는 것이 때로는 허상이거나 자기기만 또는 자신의 바람을 투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특히 필립보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예수님을 통해서라도 하느님을 뵐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진 모양입니다. 그런 필립보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우리의 세상에서 보고 듣고 만져 볼 수 있는 역사의 현실로 체험했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하느님의 얼굴이시고,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시며,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십니다. 육화는 그리스도교의 존재 이유입니다. 모든 종교는 저마다 한계를 지닌 인성과 대조되는 초월적 신성에 대하여 다양하게 가르치지만, 그리스도교는 그들과는 달리 초월적 신성의 하느님께서 한계를 지닌 인성 안에 머무르시며 인간을 영원한 신적 생명에 초대해 주고 계시며, 인간이 하느님께 다가가는 절대적 기준이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한 인격과의 만남에 있다고 확신하며 가르칩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그 희망이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믿는 이에게 더 이상 세상의 한계들은 영원한 희망을 가두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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