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4.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28 조회수2,286 추천수6 반대(0) 신고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2018년 4월 28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 13,44-52

44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45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46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47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

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50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51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복음 요한 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대부분 돈을 많이 벌었거나,

어떤 특별한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었을 때,

아니면 사람들이 오를 수 없는

높은 자리를 차지한 것을 가지고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이 기준에 맞춰서 저를 비교해봅니다.
제 통장에는 그리 많은 돈이 없습니다.

매스컴을 통해서 억대의 말이 나오면

정말로 다른 나라 말처럼 들립니다.

돈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저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일인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최고의 신부라고 말할 수 없는

 저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그렇게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기준에서도 저는 실패자입니다.

사람들이 오를 수 없는 높은 명예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제게 과분한

 사랑을 주시지만 이 역시

세상 속의 큰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제로

 살고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이 분야에서도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자입니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기준으로 삼는 행복은

세상 안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묵상을 하고, 미사를 봉헌하고,

글과 강의를 하는 것 등등 모두가

부족하기만 하지만 그대로 이 안에서

만족을 하고 있으며, 매일 아침

어떤 좋은 사람과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행복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 말에 큰 공감을 합니다.

솔직히 많은 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행복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러나 그보다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필립보가 예수님께 하느님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는 청을 드립니다.

 이 부탁이 이루어진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는 의미로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를

뵐 수 있도록 하셨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라고 하십니다.

행복은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할 때

생긴다는 말씀처럼, 행복은 하느님을

 뵙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기쁨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요?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의 뜻을 기쁘게 실천하는

가운데에서 행복이 있습니다.

이 행복을 찾는 오늘이

되어보면 어떨까요?

커다란 기대와 희망이

생기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라파데르)


이렇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행복입니다.

"혼자 있을 때의 행복을 찾으세요."

어렸을 때, 혼자 있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집이 답답하기만 했고 그래서

 어떻게든 집을 떠나서

친구들과 놀고만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간다고 해서 특별히

놀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쓸데없는 일을 한 것만 같고,

그래서 집에 들어올 때에는

‘또 쓸데없는 일을 했구나.’라는

후회를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신부가 되어 성지에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거나

또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할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고 있는 일들이 재미있고

또한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밖에 나가서도

집에서 하고 있는 것들의

연장선에서 쓸데없는 일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찾게 됩니다.

지금 현재 혼자 있어도

또 여럿이서 함께 있어도

 행복합니다. 어디서든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은

함께 있을 때에도 행복하다.”
혼자 있을 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촛불도 주변을 환하게 밝힙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