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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예수님의 작은 조각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30 조회수2,748 추천수3 반대(0) 신고

 

 

"예수님의 작은 조각들"

+ 찬미예수님

오늘이 무슨 주일이지요?

성소주일. 예전에는

착한 목자주일이라고도 했지요.

성소(聖召), 거룩한 부르심.

물론 성소라고 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하느님의백성이 된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

왕직, 예언직 품위에 오른

모든 크리스찬을 가리켜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도 하지만,

특별히 일 년의 한번

오늘은 사제, 수도자, 신학생,

그리고 점점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은퇴신부님들을

기억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나오지요?

그러나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이리떼와

싸운다고 했습니다.

직업적인 목자가 아니라

자식보다 양들을 더

사랑하는 착한 목자!

오늘 우리는 이 환난의 시대에

진정으로 착한 목자,

착한 수도자가 많이 나오게

기도하는 날입니다.

 ‘착하다’고 하는 것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어요.

3가지를 의미합디다.

첫 번째는 착실하다.

두 번째는 어질다.

세 번째는 선하다.

착실하고, 어질고 선한 것을

합쳐서 국어사전에는

착하다는 뜻으로 나옵니다.

 이 세 가지를 가지고 나 자신이

착한 목자인지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착실한 신부인가?

내 별명이 김 착실이야~

말할 것도 없죠? 어질다.

나보다 더 어진 신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세 번째가 선하다.

선하다고 하는 뜻을 풀이하면

길이 아니면 간 적이 없고.

오로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길만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길이 아닌 쪽은 쳐다보지도 말고

진리가 아닌 쪽은

냄새조차 맡으면 안돼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35년간 오직

한 길만을 보고 살아왔어요.

나를 자화자찬하는 것 같아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위로를 받았어요.

 양들에게 목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보통목자가 아니라

무슨 목자? 착한 목자.

양들에게는 착실하고 어질고

선한 목자가 필요해요.

자기 이익이나 편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목숨 걸고

 양을 보호하고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착한 목자가

꼭 있어야 해요.

우리 서운동 성당에도 많은

신부님들이 거쳐 가셨습니다.

내가 24대인가 그래요,

서운동에서 오래 계셨던 분들은

 많은 신부님들을 겪었을 겁니다.

그럼 우리 서운동 목장에서는

목자와 양이 어떤 관계로

 살아가고 있을까?

 저는 젊은 시절 신부일 때

목자가 양을 위해

죽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어요.

왜 양들을 위해 죽어?

나 살기도 바쁜데?

양은 자기가 알아서 살아야지.

제가 그 뜻을 몰랐던 거죠.

그런데 산전수전 지상전

화생방전을 겪으면서 겪을 때마다

하느님이 가르침을 하나씩 주십디다.

그런 많은 체험을 통해

어떤 정도까지 바뀌었는가?

지금은 양들을 위해 죽을 수 있어요.

내가 신자를 위해 대신

죽어야하는 상황이라면

계산 안하고 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내 생명만큼

사랑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목자를 위해

죽을 수 있으세요?

하하! 안 죽으셔도 됩니다.

목자는 양을 위해 죽어도 양은

목자를 위해 죽을 필요는 없어요.

목자와 양의

입장은 달라요, 그렇죠?

 착한 목자는 이리떼가

나타나면 자신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도 양은

가슴에 품고 살려야합니다.

사탄이라는 놈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자와

양의 관계를 갈라서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의 목자와

양이 서로 반목하고

피를 흘리며 사는지 모릅니다.

저는 강의를 많이 나가다보니 가는

성당마다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요.

그런데 성당마다 성당

입구부터 공기가 달라요.

시장터 한 가운데 있는

성당이라도 딱 정문에

들어가면 따뜻한 성당이 있어요.

으리으리한 성당이라도

입구부터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부는 성당이 있어요.

그런 성당에서 피정시키면

오전 내내 웃지도 않아요.

얼굴들이 다 굳어있어요.

 본당신부는 나와 보지도 않아요.

가서 사제관을 두드려보면

새까맣게 어린 신부예요.

런데 신부 얼굴에

기쁨과 평화가 없어요.

그리고 “신부님,

저 일 년만 있으면 떠나요.

 이렇게 드센 신자 처음 봐요”

라고 합니다.

신자들도 “신부님, 저희들도

 일 년만 참으면 되요.”

으리으리하게 지은

성당이면 뭐합니까?

목자와 양이

축복의 기도가 아니라

서로 떠나라고 하고 있으니,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겠습니까?

감실안의 예수님은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고 계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성당들이

너무너무 많아요.

그럼 도대체

어느 쪽 잘못이에요?

아까 이야기했지요?

사탄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대로 마귀 장난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면서

목자와 양 사이를

갈라지게 한다고 했어요.

지금의 시대는 분별의 시대예요.

분별하지 못하면 사제도

양들을 끌고 절벽으로

집단 자살합니다.

교회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비록 천막성당이더라도

따뜻한 사랑이 있다면

그곳이 예수님 계신 곳이고

그 곳이 성전입니다.

 물론 같은 사제입장에서도

 아무리 잘 봐 주려해도

철없는 신부, 철딱서니 없는

수녀 있습니다.

새끼는 애비를

잘 만나야한다는 말은

진리예요.

자식은 일단 아버지

잘 만나는 것이

첫 번째 복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내 입맛에

쏙쏙 맞는 부모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아비가 못되었다하더라도

자식은 아비를 위해

기도하고 청해야합니다.

 예전에 영등포쪽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

아는 신자 집에 잠시 쉬러 갔어요.

안에서 소리가 나는데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기에

손잡이를 돌려보니 열려져 있습디다.

문을 조금 열고 헛기침을

몇 번하면서 인기척을 내면서 보니,

안에 신발이 많았어요.

문 열고 들어가 보니 반모임을 해요.

끝날 때가 되었나 하며

서성거리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반모임이 아니야.

신부 욕하는 모임이야!

신부소리도 안합디다.

그 인간, 그치, 주고받는

 언어가 살벌해요.

본의 아니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반성했지요.

‘잘 살아야겠구나.

사제가 잘못 살면 그치

그 인간소리까지 듣는구나.’

 욕하다 지쳤는지 조용하기에

 “계십니까?” 하니 주인이

나와서 신부님 언제 오셨어요?

한 30분 되었다고 하니

혼비백산 도망가기에

앉으라고 하고 물었어요.

“본당신부님의 표양이

안 좋았을 때 감실 앞에

무릎 꿇고 신부님 위해

기도하신 분 계십니까?”

있을 리가 없지요. 예수님께

매달리는 사람이 그렇게 모여서

신부님을 씹을 수 없는 거예요.

그 날 그 자매들은 눈물

쏟으면서 이야기 듣고,

 저는 안수주고 헤어졌어요.

결국 덕분에 피정시간은

30분 늦었지만 그래도

그 자매들은 어디 가서

그 짓거리 안할 겁니다.

 교우들이 사제 한 사람에게서

예수님을 다 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예요. 욕심이에요.

피정 다니면 신자들이 은혜 받고

“신부님, 신부님 본당신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면 제가 그래요.

“그러면 너도 와서 살아봐라”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사목해도 반대파는

꼭 있는 거예요.

그 거룩한 비안네 신부님이

본당신부님을 해도

반대파는 꼭 있어요.

악습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악습에 젖어있어요.

 여러분은 사제 한 사람에게서

예수님을 다 보려고 하지 마세요.

물론 신부님들도 죽을힘을

다해서 힘쓰지만,

약점 많은 인간인데 어떻게

예수님을 다 보여주겠어요?

여러분이 만난 신부님에게

예수님의 작은 조각을

하나라도 볼 수 있었다면

그 신부님은 성인사제예요.

어차피 한 조각조각뿐이

못 보여줘요.

어느 신부님은 예수님의

발바닥을 보여줘요.

참 부지런해요.

레지오 단원들이 환자를

방문해보면 벌써 신부님은

 다녀가셨다고 해요.

항상 양을 찾아다니는

 예수님의 발을 보여주는 사제죠.

또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신부님이 있어요.

늘 빈 성당 감실 앞에서

성당을 지키고 있어요.

본당에는 신부님을 따라

성체 조배하는 신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또 어떤 사제는 예수님의

착한 마음을 보여주는

사제가 있어요.

강론은 너무 못하는데

너무 착해요.

강론 못하는 것이 흠이 안돼요.

어느 신부님은 예수님의

입을 보여줄 거예요.

입만 열었다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요. 변화시켜요.

 여러분이 세례 받고 겪었던

여러 신부님들이 보여주었던

예수님의 모습이 있을 거예요.

그것을 버리지 말고 잘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 세상 떠날 때

하얀 도화지에 그 조각들을

붙여보세요.

그러면 그 때가서야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

 만들어질 겁니다.

사제들은 사제단으로 있을 때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완성되는 것이지

사제 하나가 그리스도를

다 보여주지 못해요.

 사제가 예수님을 못 보여주는

그 부분이 있어요.

사탄은 항상 그것을 노리고,

신자들을 통해서

그것을 치고 들어와요.

본당 신자들이 수백 명

냉담을 해도 큰일이지만

교회가 뒤집어지지 않아요.

하지만 사제 한명이

환속을 하면

교구 전체가 들썩거려요.

한국교회가 들썩거립니다.

본당신부하다 옷 벗은

그 성당에서는 적어도

한 세대에서는

성소자가 안 나와요.

그래서 결국은 마귀들은

 신자들을 동원해서

사제를 치려고해요.

사제들은 힘들고 흔들릴 때

부모님과 신자들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신부님들이

 어느 때 제일 불편할 것 같아요?

밥 얻어먹는 것이 제일 힘들어요.

그래서 나도 슬슬 은퇴준비를

해야 하니 김치도

내가 만들기 시작했어요.

저도 배우면 잘할 것 같아요.

내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내손으로 김장해서

조금씩 담아서 아는 사람에게

매년 보내고 싶어요.

또 등 가려울 때 불편해요.

물론 효자손이 있지만,

사람 손으로 긁어본 적이 없어

비교는 힘들지만 덜 시원해요.

또 등에 파스붙일 때 불편해요.

궁리 끝에 벽에 양면

 테잎으로 파스를 붙이고

벽에 가서 제가 붙어요.

이제는 정확히 자리를

잘 찾아서 붙여요.

이런 것들이 불편해요.

그리고 여자 생각나는 것,

기도 안하면 여자생각 나요.

피 끓는 인간 몸뚱이 인데요.

하지만 기도하면

생각나지 않아요.

 여러분들 명심하세요.

사제는 개인 수도가

아니라 공동우물입니다.

우물은 어느 집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가운데에 있어서

지나가는 나그네도 떠먹어요.

피정 다니다보면 어느

신부님은 어는 신자들하고만

어울린다는 말을 들어요.

그런 소리들을 때 묵주 꺼내서

그 신부님 위해 한 단 바치세요.

그 기도는 성모님이 받으셔서

분별 못하고 흔들리는

사제의 머리위에 장미꽃을

뿌려주시어 거룩한 목자가

되게 도와주실 겁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에 같이

맞장구치고 옮기고 그러면

누가 빙끗 웃겠습니까?

마귀새끼요.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구나.

조금 있으면 다 깨지겠다.

 착한목자는 착실하고

 어질고 선해야합니다.

그런 이런 모습은

신학생 때부터 배워야하지만,

지식위주도 가르치게 됩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습니다.

이 아이가 신학교 오기 전

집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착실하고 어질고

선한 모습은 신학교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신부가 되고 난 다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떻게

인성이 만들어졌는가?

더 나아가서는 태교가

어떻게 되었는가?

거룩한 사제하나 만들려면

삼대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사제들도 세상 것 버리고

그 길 들어왔으면

멋있게 살다 가야지

왜 손가락질 받고 삽니까?

‘아, 저 분은 장가를 갔어도

잘 사셨을 거야’라는

소리를 들어야지

‘장가 안가서 다행이야’

하면 안 되겠지요?

 저도 사제의 삶을 다할 때까지

착실하고 어질고 선한 사제로

살기로 노력을 할 터이니

여러분도 기도 많이

해주십시오. 아멘

 2018년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4/22)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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