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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5.0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01 조회수3,027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8년 5월 1일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14,19-28

그 무렵

19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복음 요한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

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어렸을 때가 생각납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성당에서는 평일미사에

참석하면 은총표를 나눠줍니다.

미사 참석으로 받은 은총표를

날짜가 적혀 있는 포도송이

그림에 하나씩 붙입니다.

포도송이에 빈칸이 하나도 없이

가득 채우면 커다란 상을 준다고

신부님께서 약속을 하셨거든요.

저를 비롯해서 성당친구들은

평일미사를 빠짐없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주로 새벽미사였는데도

그 은총표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졸음을 이겨내고 힘들게

일어나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포도송이가 채워질수록

기쁨이 커졌고 성당 가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늦잠을 잔 것입니다.

어머니께 깨워달라고 했지만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날 은총표를 받을 수가

없어서 하나의

빈 포도송이가 생겼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물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성당에 나가는 것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고,

갖은 이유를 대면서 미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게 되면

그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매일 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그 안에서 즐거움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매일하던 운동을 한두 번

빠지게 되면 그렇게 즐거웠던 운동이

오히려 귀찮고 힘들어지는 일이

 되고 맙니다.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신앙 안에서 얼마나 큰 기쁨이 있는지

모른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하지만 열심 하지 않으신 분들은

왜 그러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지요.

그 시간에 다른 세상의 일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이유를 계속해서

만들어 갈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진정으로 나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단 일회적으로 또 가끔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는 주님의 평화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사실 주님의 평화와 구별되는

세상의 평화는 순간의 만족을

가져다줍니다.

 별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는데도

 뜻밖의 행운을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평화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평화는 그렇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주님 안에 머물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은 쉽게 얻을 수

 있는 평화가 더 이익이

아닐까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함을

가져다줍니다.

어떤 분이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 요즘

저는 너무나 행복해요.

그래서 혹시라도 이 행복이

사라질까봐 겁이 나요.”
주님의 평화는

 이러한 평화가 아닙니다.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또 겁을 내는 일도 없게 하는

가장 큰 평화입니다.

이렇게 큰 평화를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 안에 꾸준히 머무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절망하지 마라!

종종 열쇠 꾸러미의

마지막 열쇠가

자물쇠를 연다.

(필립 체스터필드)

이런 빈 포도송이를 채우면서

열심히 성당 다녔던 때가 생각납니다.

"고마운 삶"

전에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느낀 것이 있어서 적어봅니다.

더운 여름날 힘들게 언덕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올라갔습니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고

저는 잠시 쉴 곳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그 근처에

커다란 나무가 있더군요.

 저는 그 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서 물을 마시면서 쉬었습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나무 아래는

너무나도 시원했고 저의 피곤함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무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리고 이 나무를 심은 그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나무를 누가 심었을까요?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를

 심은 사람은 미래에 이 자리에서

쉴 저를 생각했을까요?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보기에 좋아서 심었을 지도 모르고,

나무 한 그루가 우연히 남아서

 이 자리에 심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미래의 저는

큰 혜택을 받습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이렇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했던 행동 하나가

다른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살 수 없는

세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정성을 기울여서

살아야 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삶입니다.

 

 

사람들에게 그늘을 주는 나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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