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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5.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03 조회수1,83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5월 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제1독서 1코린 15,1-8

1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복음 요한 14,6-14

그때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6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초등학교 시절,

저희 학년은 성탄 예술제 때에

연극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12월 한 달 내내 연극 연습으로

 바쁘게 지냈지요.

그때 제가 맡았던 배역은

 대사가 하나도 없는

목동 3이었습니다.

솔직히 성당에 열심히

다녔던 저로써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역은 못하더라도

요셉이나 동방박사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었거든요.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저의 재능을 알아보셨는지

 대사 하나 없는

 배역을 주셨습니다.
드디어 12월 24일 저녁

성탄 예술제의 막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저희 학년의

연극 차례가 왔지요.

 연습한대로 모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요셉 역할을 하는 친구가

대사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동방박사를 맞이하면서

 말을 해야 하는데 어쩔 줄

모르면서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했지요.

바로 그 순간,

아기 예수님 역할을

맞고 있는 친구가 벌떡 일어나서

요셉의 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응애~ 응애~”라고 아기

울음소리만 내야하는

 아이가 갑자기 요셉의

대사를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었고,

 연극을 지도했던 선생님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어떻게

할지를 몰라 합니다.

연극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합니다.

즉,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고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 한 명 만으로는

연극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습니다.

 많은 조연들이 있어야 하고,

그 배우들을 도와주는

보이지 않는 스텝들이

있어야만 훌륭한 연극이

 나올 수가 있지요.

이렇게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이의 역할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주님을 통해야지만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 있고,

하느님께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주인공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인공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고 하면서

 마치 종에게 말하듯이

주인공이신 주님께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을 첫 번째 자리에

두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인공이십니다.

이 주인공이신 주님께

굳은 믿음을 둘 때,

우리의 삶은 가장 훌륭한 삶의

모습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읽는 법을 알 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있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드니 디드로).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성모성월을 맞이하면서..."

어렸을 때 저의 장난감

비슷한 물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묵주입니다.

 어머니께서 워낙

묵주기도를 많이 하셔서

 집 곳곳에 묵주가 놓여 있었는데,

이 묵주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다다다다’ 소리를 내면서

헬리콥터 운전하는

놀이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는 깜짝 놀라면서

 혼을 내셨지만,

 저는 이렇게 하나의 놀이로

묵주를 알게 되었고 또 가깝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 역시 묵주는 제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조기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학생 때 걸어 다니며

묵주기도를 하다 보니

지금도 산책하면서 또는

운전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봉헌할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죄송한 마음입니다.

진득하게 성당에 앉아서

온 정성을 쏟아 부어 바쳐도

모자랄 판에 산책을 하면서

또는 운전하는 시간에 봉헌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습관이 정말로 무섭다고,

성당에 앉아서 조용히 묵주기도를

바치면 자주 하품도 나고

또 분심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더욱 더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곤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모님의

특별한 전구가

효과 만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어려움이 쉽게

해결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이 기도를

멈출 수가 있겠습니까?
성모성월입니다.

성모님께 중재를 청하는 시간,

그래서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는

5월 되시길 바랍니다.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면서 은총의 시간이 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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