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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5.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04 조회수1,82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5월 4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 15,22-31

그 무렵

22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30 사람들이 이렇게

 그들을 떠나보내자,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내려가

공동체를 모아 놓고

편지를 전하였다.

31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다.

복음 요한 15,12-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어렸을 때에 부모님 심부름을

갔다가 동네 개에 물렸던 기억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개를 키우는 사람이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당시만 해도 개를 풀어 키우는 집이

 많았기 때문에 심심찮게

 개에 물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억이 그 뒤 개만 보면

 항상 뒷걸음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또다시 개에 물리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지금 현재까지

그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는

개를 보고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귀엽다면서 손을 내밀면서

친해지려고 노력까지 합니다.

어렸을 때의 두려움이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요?

아마도 개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몇 년 째

개를 키우다보니 저를 힘들게 했던

개에 대한 두려움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의 마음이 두려움보다

 좋아하는 감정으로 변화시켰고

 그래서 개들과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극한의 상황에서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가득한 상황에서도

 자녀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인데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구하는

영웅적인 사랑도 봅니다.

그밖에도 우리는 자주 두려움을

 극복하는 사랑을 듣고

또 실제로 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사랑을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주시지요.

완전한 인간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주님 역시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상의 죽음을

기꺼이 선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 사랑은 두려움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간직하고

또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주님의 친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이

이 세상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한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 안에서 두려움 속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은 주님께서

명령하시고

또 직접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 밖에 없습니다.

이 사랑을 가득한 세상이 될 때,

세상은 결코 어렵고

힘든 곳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쁨이 넘치는 곳,

함께 사랑하기에 행복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생은 타인에게 얽매여 있다.

타인을 사랑하는데 인생의 반을 소모하고,

나머지 반은 타인을 비난하는데 소모한다.

(주베르)

저의 두려움을 없애준 제가 키우는 강아지들.

"인생을 다시 산다면?"

95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많은 대답들을 정리하면

다음의 세 가지였다고 합니다.
첫째, 생각을 더 많이 할 것이다.

 즐거운 순간, 해돋이,

노을, 행복한 순간을

더 많이 즐길 것이다.
둘째, 위험 부담을 더 많이

 감수하고 모험심을 더 발휘할 것이다.

도전을 피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셋째, 죽고 나서도 계속해서

살아갈 유산을 남길 것이다.
어떻습니까?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성지 제의방에 사제를 위해

예쁜 꽃을 꽂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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