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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5.0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07 조회수2,049 추천수6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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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7일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 16,11-15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복음 요한 15,26─16,4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 성공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방해꾼을

피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 방해꾼들은

내가 향하는 길에서

나를 이탈시켜 거짓된 길로

인도하는 유혹자입니다.
그 첫째는 바로 부러움입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만큼 부러워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부러워하는 것일까요?

바로 내가 아닌

남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기준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자기도 모르게 남의 기준이

진짜 길인 줄 알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소유한 것을 자신도

갖고자 하는 삶,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착각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방해꾼 두 번째는 흉내입니다.

이것 역시 첫째의 부러움과

다를 바는 없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부러움이

정신적 활동이라면,

흉내는 육체적

활동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고유함을

 찾지 못하고 부러움의 대상을

쫓아서 흉내 낼 뿐입니다.
진정한 성공의 길은 이러한

부러움과 흉내를

쫓는 삶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기 고유의 길을

찾아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고유함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얻기 때문입니다.
과거 예수님을 몰아내기 위해

애를 썼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했던 이유는

 예수님께 대한 부러움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자신들이 생각했던 존경과

사랑이 예수님을 향하자

부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던 예수님을

흉내 내어서 자신들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인 것처럼

 포장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고유한 일에 충실했다면

주님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주님 안에서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과거

 단 한 번의 일일까요?

아닙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에 대한 부러움에서 나오는

 시기와 질투로 주님의 뜻과

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주님께서는 진리의 영이 당신을

 증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진리의 영이 증언하시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주님 뜻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의 삶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는

성공은 부러움과

흉내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준을 따르는

성공은 사랑 안에서

자신의 고유함을

따르는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천사를 악마로

변화시키는 것은 자만이고,

인간을 천사로

만드는 것은 겸손이다.

(성 아오스딩)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진리의 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의 삶 자체가 중요하다."

(‘아름다운 동행’ 중에서)

험준한 산을 넘는 남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산을 넘으면서 힘이 들고

숨이 차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준비했던 거래를

성공시키고 큰돈을 벌어서

돌아오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점점 흐려지면서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눈보라까지 몰아쳤습니다.

삽시간에 눈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남자가 작은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하늘이 도운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눈보라 속에서

 온몸이 흠뻑 젖어 그대로 있으면

추위에 동사할 것이 뻔했습니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모은 남자는

불을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불쏘시개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품속에서

자신이 그동안 고생해서 모은

돈다발을 꺼내 주저 없이

불쏘시개로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따뜻한 모닥불을

만들 수 있었고,

무사히 아침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밤새 심하게

불었던 눈보라는 그쳤고,

 산에서 고립된 사람을 찾던

구조대는 모닥불의 연기를 보고

남자를 구조 할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가지고 있던 돈을

불에 태웠지만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생명과 미래를,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었으니

 나에게 이보다 더 큰 이득은 없구나.'
그 돈을 지키는 것이 지혜로울까요?

아니면 돈을 태워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하지만 이 세상 안에서

진정한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죽어서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세상의 기준인 돈이나 명예보다

자신의 고유함을 드러낼 것들을

 따르는 삶이 중요합니다.

산에 가고 싶어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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