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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6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08 조회수3,028 추천수9 반대(0)

중학교 때의 기억입니다. 시골에 살던 사촌 누님의 직장이 서울로 정해져서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누님이 없던 저는 누님이 계셔서 좋았습니다. 누님은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고, 집의 분위기를 좋게 해 주셨습니다. 누님은 그렇게 3년을 지내다 방을 얻어서 독립하였습니다. 새로운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누님의 짐을 옮겨드리면서 많이 서운했습니다. 제게는 헤어짐의 첫 번째 기억입니다.

 

사제가 된 후에는 정들었던 본당을 떠날 때가 많았습니다. 첫 본당을 떠날 때는 눈물도 흘렸습니다. 그만큼 정이 들었고, 좋은 추억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헤어짐도 삶의 한 부분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성소국에 온 지도 올해면 5년이 됩니다. 별일이 없다면 8월에는 다른 곳으로 갈 것입니다. 명동에서의 기억들을 뒤로하고 교회의 뜻에 따라 새로운 만남이 있을 것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합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헤어짐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순간들을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언젠가 저는 선배 신부님의 지갑과 저의 지갑을 혼동하였습니다. 제가 너무 자연스럽게 지갑에서 돈을 꺼내니, 선배도 그 지갑이 제 것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제가 착각을 한 것을 알았고, 정중하게 사과하였습니다. 후배 신부님과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저는 방향이 틀리다고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후배 신부님은 운전도 잘하고, 운동신경도 좋기 때문에 틀리다고 말은 했지만 저도 내심 불안했습니다. 잠시 후에 후배 신부님도 자신이 착각했다며 방향을 돌렸습니다. 이런 작은 착각은 그런대로 넘어갈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지만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착각도 더러 있습니다.

 

본당을 비우고 피정을 가면 본당이 큰일 날 것 같지만 피정을 다녀와도 본당은 잘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 나만 잘 할 수 있다는 착각, 이것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착각과 비슷합니다. 유명 인사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은 언제나 예쁘고, 똑똑하고,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아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외로움과 고통입니다.

 

본당 신부는 임기가 5년이고, 보좌신부는 임기가 2년입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처럼, 아쉬움이 남고, 미련이 남아도 때가 되면 떠날 줄 아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그것이 착각의 틀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꽃은 피었다 지기 마련이고, 사람은 나올 때가 있으면 들어갈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역사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 했던 사람들 때문에 본인은 물론 공동체가 수렁에 빠지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때가 다 될 것을 예감하십니다. 구원의 역사에 또 다른 협조자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바쳐서 함께 했던 제자들을 떠나야 하고, 하느님 나라 운동에서도 떠날 때가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주님의 비움이 바로 참된 자유의 시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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