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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5.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14 조회수2,164 추천수1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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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제1독서 사도 1,15-17.20-26

15 그 무렵 베드로가 형제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그 자리에는 백스무 명가량

무리가 모여 있었다.
16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서는, 성

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17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20 사실 시편에

‘그의 처소가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

없게 하소서.’

또 ‘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22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3 그래서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24 이렇게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25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26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

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복음 요한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저는 사진을 자주 찍습니다.

풍경을 주로 찍지만

인물 사진 찍는 것도

 매우 좋아하지요.

그런데 “여기를 보세요.”

라고 말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직된 표정을 짓습니다.

또 어떤 분께서는

“싫어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사진 찍는 것을

 피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모습이 찍히기도 하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순간에

찍히는 사진도 생깁니다.

이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찍은

사진을 그냥 삭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진 찍을 때에 너무나도

편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다 마음에 듭니다.

심지어 약간의 흔들림이 있어도

이것 역시 마치 일부러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진은 한 순간을 촬영함으로써

나오는 것입니다.

한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 되어서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한 장의

사진이 됩니다.

그 결정적 순간에

다른 행동을 하거나,

도망친다면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인상 깊은

사진이 나올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삶 전체가 중요하지만 분명히

결정적 순간이 있습니다.

 피해서는 안 될 순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다가서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이 결정적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후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에 대해 뒤로

미루는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할 일 없으면 열심히 성당도 다니고

봉사하면서 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가 과연 오게 될까요?

리고 무엇보다도 큰 착각은

주님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할 결정적

순간을 갖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바로 그 부르심이 주님의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내 자신이

주님을 선택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뒤로 미루지요.

주님의 은총을 거부하기에

 주님 안에서 행복의 삶을 간직할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게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은총을 받은 우리입니다.

이를 삶 안에서 간직하기 위해서는

 ‘신앙 따로’, ‘삶 따로’의 마음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신앙과 삶은 분명히

일치되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성당 가서

미사 참석하는 것으로 완벽한

신앙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전체에 주님이 함께

하실 수 있도록 그분의 자리를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멀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작은 기쁨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그저 서로를 위하고,

좋은 커피를 내리고,

팬케이크가 맛있다면

삶은 가치 있다는 것이죠.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오늘은 마티아 사도 축일입니다.

"결혼식에서.."

 

어제는 결혼식

주례를 서고 왔습니다.

지금까지 사제 생활을 하면서

 한 200회 이상의

결혼식 주례를 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이 주례를 섰다고

말하니 어떤 분이 묻습니다.
“신부님은 결혼 안 하셨잖아요.

 이렇게 결혼하는 부부를

보면 부럽지 않아요?”
이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부부도 있지만,

솔직히 그렇지 않은 부부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긴 2017년 혼인이혼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혼인은 26만 4천 5백건이고

이혼은 10만 6천 건이더군요.

3쌍 중에서 1쌍 이상이

이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나 봅니다.
“판단력이 부족하면 결혼을 하고,

 이해력이 부족하면 이혼을 하며,

기억력이 부족하면 재혼을 한다.”
행복한 부부가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모습을 보고서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함의

중요성을 깨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함께하는 모습이

일상적인 모습이 될 때,

분명히 주님의 사랑이

 이 땅에 완성될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는 제가 많이

부러워할 수 있도록 부부간의

더 큰 사랑을 만들어 보세요.

  어제 결혼한 신랑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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