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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5.1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17 조회수3,391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8년 5월 17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 22,30; 23,6-11

그 무렵

30 천인대장은 유다인들이

왜 바오로를 고발하는지

확실히 알아보려고,

바오로를 풀어 주고 나서

명령을 내려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바오로를 데리고

내려가 그들 앞에 세웠다.
23,6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사두가이들이고 일부는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바오로는 최고 의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7 바오로가 이런 말을 하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졌다.

8 사실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고, 바리사이들은

것을 다 인정하였다.

9 그래서 큰 소란이 벌어졌는데,

바리사이파에서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강력히 항의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이나 천사가

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10 논쟁이 격렬해지자

천인대장은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려가 그들 가운데에서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부대에 명령하였다.

11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복음 요한 17,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가는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가게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무조건

이 가게를 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친절한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도 살 물건이 있어서

가게에 들어갔는데, 저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왜 이렇게

멋지게 하고 왔어요?

무슨 좋은 일 있어요?”
특별한 복장을 하고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제 신분을 알려주는

클러지셔츠를 입은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복을 입고 갔는데

멋지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에 기분이 상했을까요?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고 화를 냈을까요?

아닙니다. 기분이 좋아졌고

이렇게 기분을 좋게 하는

곳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저의 반응입니다.

이 분의 기분 좋아지는

 말씀에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사장님께서도 오늘따라

특히 멋진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말은

 좋은 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반대로 나쁜 말은

나쁜 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부정적인 말과 행동 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내가 한 말과

행동을 통해서 또 하나의

일치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치를

가져오고 싶습니까?

좋은 일치?

아니면 나쁜 일치를

원하십니까?
실제로 영국의 샌드위치

체인점 ‘프레 타 망제’은

직원들이 손님을 응대하며

옷차림이나 날씨 이야기를

나누게 했습니다.

단순히 몇 마디 긍정적인

말을 했을 뿐인데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자그마치 20%의 매출이

상승했다고 합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연구에서는 종업원과 수다를 떤

손님이 그렇지 않은 손님보다

기분 좋게 매장을

섰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만

일치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믿는 이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 일치는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서로 배려하고 힘이 되어주는 일치,

 함께 앞으로 나아가며 기쁨을

나누는 일치인 것입니다.
이 일치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드러내는

 노력은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는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 하루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하는데 더

 큰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기도에

함께 하는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탈무드)

세상의 빛이 되십시오.

"3등"

(조준호, ‘잘 넘어지는 연습’ 중에서)
2012년 런던 올림픽,

 접전 끝에 승부가 갈리지 않아

연장전까지 이어진

유도 8강전이었다.

경기가 종료된 후 세 명의 심판은

모두 나의 판정승을 선언했다.

그런데 갑자기 심판 위원장이

심판들을 불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내 자리로 돌아온 심판들은 판정을

번복하고 나의 패배를 선언했다.

각국 외신은 물론 상대 선수

국가였던 일본 언론조차

석연치 않은 판정이라고 할 만큼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새벽까지 경기를 본 많은

사람이 울분을 터뜨렸다.

나 역시 허탈했지만,

아직 경기가 남았다. 넋 놓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올림픽 역사상 유례없는

판정 번복을 당해 정신력이

흔들리는 데다 경기 중 인대가

끊어져 한 팔밖에 쓸 수 없는

 악조건에 빠졌다.

그런데도 나는 결국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진심으로 기뻤다.

 하지만 내게 위로가 쏟아졌다.

“아쉽고, 안타깝고, 아깝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의아했다.

‘세계 3등인데, 안타까운 일인가?’
선수들은 올림픽을 위해

 십 수 년 노력한다.

개최 주기로 따져도 4년,

 1460일 동안 피땀을 흘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 몇 분의

올림픽 경기 결과로

를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 걸까?

내 모든 것을 평가받는 단 몇 분?

안면 지난 1460일?
3등은 모든 경기를 통틀어

한 번은 져야 얻을 수 있는 등수다.

금빛 영광을 눈앞에 두고

패배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게 3등은 십 수 년 간 넘어지고,

일어서고, 조르고, 메쳐지면서

유도에만 매달려 얻은 결과다.

다시 떠올려 봐도 나는 그 순간

그보다 잘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끌어

모아 경기에 임했다.

그래서 아깝지도,

아쉽지도 않다.

내가 흘린 땀의 높이가

 세계 3등이라는 것에

고마울 따름이다.
인상 깊은 글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들은

최고의 것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다보니 최고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좋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 안에서 상처를 입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제는 모두에게 힘찬

 박수와 격려를 해주는 그러한

주님의 제자가 되면 어떨까요?

우리가 하나 되는 것,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준호 선수의 경기장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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