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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롯의 교훈 (소돔 멸망) (창세19:1~3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19 조회수4,257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경

 롯의 교훈 (소돔 멸망) 
(창세19:1~38)

1 하느님의 천사 둘이 소돔에 다다른 것은 저녁 때였다. 룻이 때마침 성문께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맞으며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청하였다.  2 '손님네들, 누추하지만 제 집에 들러 발을 씻으시고 하룻밤 편히 쉬신 다음 아침 일찍이 길을 떠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밖에서 밤을 새우겠다고 하면서 사양하였으나,  3 롯이 하도 간청하는 바람에 롯을 따라 그의 집에 들어 갔다. 롯은 그들에게 누룩 안 든 빵을 구워 주며 대접하였다. 

4 그들이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소돔 시민이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온통 몰려 와 롯의 집을 둘러 싸고 5 롯에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오늘 밤 네 집에 든 자들이 어디 있느냐? 그자들하고 재미를 좀 보게 끌어 내어라.' 

6 롯이 밖으로 나가 등뒤로 문을 닫고  7 사정하였다. '여보시오, 제발 이런 못된 짓은 하지들 마시오. 8 아시다시피 나에게는 아직 남자를 모르는 딸이 둘 있소. 그 아이들을 당신들에게 내어줄 터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그러나 내가 모신 분들에게만은 아무 짓도 말아 주시오.'  9 그러나 그들은 '비켜라. 네가 떠돌이 주제에 재판관 행세를 할 참이냐? 그자들보다 너부터 혼내 주어야겠다.' 고 하면서 롯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문을 부수려 하였다. 

10 일이 이쯤 되자 그 두 사람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 안으로 끌어 들이고 문을 닫았다.  11 그리고 문 앞에 몰려 든 사람들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눈이 부셔 문을 찾지 못하게 만들었다. 12 그리고 나서 롯에게 말하였다. '네 식구가 이 곳에 또 있느냐? 아들 딸 말고도 이 성에 다른 식구가 있거든 다 데리고 떠나거라  13 이 백성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야훼께 사무쳐 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야훼의 보내심을 받아 이 곳을 멸하러 왔다.'  14 롯은 곧 딸들과 약혼한 사람들을 찾아가, '야훼께서 이 성을 멸하기로 작정하셨으니 어서 이 곳을 빠져 나가라.' 하고 일렀다 그러나 사위 될 사람들은 실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웃어 넘겼다.  15 동틀 무렵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였다. '이 성에 벌이 내릴 때 함께 죽지 않으려거든, 네 아내와 시집가지 않은 두 딸을 데리고 어서 떠나거라.'  16 그래도 롯이 망설이므로 그들은 보다못해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끌어 내었다. 야훼께서 롯을 그토록 불쌍히 여기셨던 것이다.  17 롯의 가족을 데리고 나온 그들은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 보아서는 안 된다. 이 분지 안에는 아무데도 머물지 말아라. 있는 힘을 다 내어 산으로 피해야 한다' 하고 재촉하였다  18 그러나 롯은 그들에게 간청하였다.'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19 저같이 하잘 것 없는 사람에게 이렇듯 큰 호의를 베풀어 목숨을 건져 주시니 고마운 말씀 이루 다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재앙이 당장 눈앞에 있는데 저 산으로 도망치다가는 죽고 말 것입니다.  20 보십시오. 저기 보이는 도시라면 가까와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다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작은 도시지만 거기에라도 가서 목숨을 건지게 해 주십시오.'  21 그러자 그는 청을 들어 주겠다고 하며 롯에게 말하였다. '저 도시는 멸하지 않을 터이니 22 빨리 그 곳으로 달아나거라. 네가 그곳에 이르기까지 나는 손을 쓸 수가 없다.' 그 도시를 소알이라고 한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  23 롯이 소알 땅을 밟자 해가 솟았다.  24 야훼께서 손수 하늘에서 유황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퍼부으시어  25 거기에 있는 도시들과 사람과 땅에 돋아난 푸성귀까지 모조리 태워 버리셨다.  26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 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27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 전에 야훼와 함께 섰던 자리에 가서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분지 일대를 굽어 보니 그 땅에서는 연기만 치솟고 있었다. 마치 아궁이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29 그 분지에 있는 도시들을 멸망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롯이 살고 있던 그 도시를 뒤엎으시면서도 롯을 파멸에서 건져 주셨던 것이다.  30 롯은 소알에서 그 고장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두려워 두 딸을 데리고 소알에서 나와 산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는 두 딸과 함께 굴 속에서 살았다.  31 하루는 언니가 아우에게 말하였다. '아버지는 늙어 가고, 이 땅에는 우리가 세상의 풍속대로 시집갈 남자가 없구나. 32 그러니 아버지께 술을 취하도록 대접한 뒤에 우리가 아버지 자리에 들어 아버지의 씨라도 받도록 하자.'  33 그 날 밤, 그들은 아버지께 술을 대접하고는 언니가 아버지의 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이 언제 들어 왔다가 언제 일어나 나갔는지 통 몰랐다.  34 그 이튿날 언니가 아우에게 말하였다. '간 밤에는 내가 아버지의 자리에 들었으니 오늘은 네 차례다. 아버지께 술을 대접하고 자리에 들어라. 같이 아버지 씨를 받자.'  35 그들은 그 날 밤에도 아버지에게 술을 대접하고 이번에는 아우가 아버지 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이 언제 들어 왔다가 언제 일어나 나갔는지 통 몰랐다.  36 이리하여 롯의 두 딸은 아버지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37 큰 딸은 아들을 낳고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는데, 그의 후손이 오늘날의 모압인이다.  38 둘째 딸도 아기를 낳고는 이름을 벤암미라고 하였는데, 그의 후손이 오늘날의 암몬인이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건져지긴 했으나 후대에게 두고두고 부끄러운 신앙의 선배의 본이 되고  있는 롯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교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한번 하느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은 결코 탈락할 수 없고 실패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교회에게 소돔과 고모라와 롯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전해 주신 것은 ‘이렇게 살아도 결국 구원은 받는 것이구나.’하고 안도와 함께 계속 부끄러운 성도의 삶을 지속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내 백성들아, 너희가 정말 십자가의 은혜가 무엇인지 안다면 롯처럼 살아서야 되겠니?’에 강조점이 있 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의 롯의 이야기를 통해 聖徒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들을 확인하고 고쳐야 할 것들은 과감히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창세기 19장에 롯의 모습을 분석해 보면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첫째로 롯은 그가 하느님의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힘을 추구하며 세상과 더불어 쾌락을 즐기던 자였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던 롯은 삼촌 아브라함의 은혜를 입어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큰 재물을 모으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먹고 살만해지자 삼촌 아래에 예속되어 있는 한, 자신의 명예나 경제적 이득에 별 도움이 못 된다고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조카 롯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에게 좋은 땅을 골라서 떠나라고 제안를 했습니다. 롯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혜를 저버리고 마치 이집트의 풍요를 그대로 옮겨놓은듯 해 보였던 요르단 평지를 택하여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장막을 옮겨 쾌락의 도시 소돔으로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롯은 소돔이 주는 쾌락을 즐겼습니다. 그는 야훼를 섬기던 아브라함의 무리 속에 살며 하느님의 인도하심과 약속하심을 직접 보고 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롯은 소돔의 쾌락이 너무 좋아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세상 힘의 무상함과 죄악상을 고발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간혹  ‘예수 믿으면서 세상에서 잘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잘되고 싶어 하는 욕망 자체를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왕이면 잘 되세요.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 위에 공고히 서지 못한채 세상의 힘을 목적삼아 하느님조차도 자신의 목적 달성에 이용하려고 하는 자들의 삶 속에서 과연 천국을 증거하고 죄악된 세상의 실상을 폭로하는 삶이 나올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롯을 보십시오. 자기가 좋아서 들어온 그 땅에 대해 어떻게 악평을 하겠으며, 어떻게 그 속에 사는 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도 소돔이 주는 쾌락이 너무 좋아  못 견디겠는데 어떻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나안의 복된 삶에 대해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롯은 소돔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돔의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이 되어 성문에 앉을 수 있는 신분이 되었고 그들에게 인정도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소돔 성의 죄악을 지적하고 하느님의 심판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설사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코웃음도 안 쳤을 것입니다. 왜 사위들이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겠습니까? 소돔의 심판과 멸망에 관한 롯의 말은 권위가 없었습니다. 사위들이 볼 때 롯의 말은 평소의 그의 말과 행동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사위들이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것입니다.
만일 롯이 평소에 소돔의 죄악에 대해 개탄하며 그 땅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면 사위들은 그의 말을 일단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사위들이 롯의 말을 수용하고 안하고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위들은 롯의 말을 전혀 진지하게 듣지 않았습니다. 

롯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그의 일상의 삶 속에서 이 세상의 쾌락과 만족이 아닌 하느님 백성들의 행복과 만족, 그리고 그들의 지향점을 설명하는 삶을 살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힘과 그 힘들이 공급하는 신기루 같은 쾌락에 젖어 세상과 訪佛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 세상의 힘에 매료된 자들의 또 다른 문제는 하느님과의 깊은 교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쾌락이 너무 좋아 하느님과의 교제를 소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도 그런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두 천사와 함께 아브라함의 장막에 찾아 오셔서 아브라함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하셨던 하느님은  그러한 롯의 집에는 아예 가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을 경고하기 위해 롯을 찾아간 두 천사도 처음에는 롯의 집에 들어가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왜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자가 하느님이 심판하여 멸할 땅에 거처를 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멸할 세상의 힘의 원리를 자신의 삶의 원리로 삼아 살고 있었기에 하느님이 그와 함께 하실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역사와 공간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聖徒가 그에게 주어진 인생동안 이 세상을 떠나 존재할 수 있는 가시적 공간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이 세상에 거처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세상이 거처를 삼고 살도록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롯 안에는 소돔의 쾌락이 롯을 장악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소돔을 떠나면서 그렇게 지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러한 롯의 거처를 혐오하셨습니다.
하느님의 혐오 속에서 가까스로 소돔을 빠져 나오는 롯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사는 동안 자기 마음대로 세상의 쾌락을 좇아 살다가 하느님의 혐오 속에서 하늘나라 가고 싶으세요?
이렇게 聖徒가 세상의 쾌락과 힘을 추구하고 그 맛을 보게 되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하기가 아주 힘이 듭니다. 세상의 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실력이 생기기 전에 세상에서의 성공에 매혹되여 그 성공을 얻게 되면 그 성공이 주는 매력을 이겨낼 장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신앙인으로서의 실력을 키우라는 것이 성경의 권고인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인격과 사람됨 이전에 세상의 성공과 힘을 추구하게 되면 그들은 절대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나그네를 대접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삶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그게 죄인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에게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도 자신의 성공과 자랑을 위한 도구로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 나그네를 대접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힘 쫓아다니지 말고 먼저 하느님의 백성 다운 삶을 살아내는 데에 힘을 쏟자고 말씀드리는 것이지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 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에제16:49~50) 49 네 아우 소돔의 죄가 무엇인지 아느냐? 거만을 떨고 실컷 먹고 마시며 태평세월 즐기면서 천하고 가난한 자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은 것이 바로 소돔과 그 딸들의 죄였다.  50 거만을 떨며 내 눈에 역겨운 짓들을 하기에 내가 물리쳐 지금 네가 보는 대로 없애 버린 것이다. 

 
②두 번째 롯의 문제는 하느님의 백성의 연합을 깬 것입니다. 롯은 하느님의 택한 백성인 아브라함과 신앙의 여정을 함께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떠나 믿음의 교제를 저 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교제하며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敎會를 허락하신 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이 세상의 권세 잡은 자를 대항하여 홀로 버텨낼 수 없음을 잘 아시고 서로서로 도와주며 하느님 백성으로 잘 자라나라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에페4:16) 16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도 이와 같이 하여 사랑으로 자체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교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도 없고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성도는 절대 독불장군(獨不將軍)으로 살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성도의 영적 성숙에 반드시 필요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절대 올바른 신앙생활을 영위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성도가 교회를 떠나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세상 풍속을 좇아 산다면 그의 신앙생활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롯이 바로 그러한 자들의 전형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고후6:14~18)  14 믿지 않는 사람들과 짝짓지 마십시오.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짝이 될 수 있으며 빛이 어떻게 어둠과 사귈 수 있습니까?  15 그리스도가 어떻게 벨리아르와 마음을 합할 수 있으며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무엇을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16 하느님의 성전에 우상이 어떻게 어울리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사이를 거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에게서 빠져 나와 그들을 멀리하여라. -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부정한 것에 손대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맞아  18 나는 너희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성도는 올바른 교회 안에서 治理와 養育을 받으며 연락하고 相合하며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교회가 아닌 세상에서 세상과 交際하며 성도의 신앙생활을 올바로 유지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성도가 교회를 등한히 하고 세상과 교제하며 세상에 머물면 반드시 그 세상의 영향에 젖게 되어 있습니다.
롯을 보세요. 천사들이 롯의 집에 들었을 때 소돔 사람들이 천사들을 상관하겠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천사들이 그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는데도 그들은 롯의 집 대문을 찾느라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 때 롯의 처신이 어땠습니까? 롯은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기의 두 딸을 성난 군중들에게 주려 했습니다. 언뜻 보면 그가 굉장한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롯이 한 가지 악을 막기 위하여 또 다른 악을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는 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성경이 禁하는 남색(로마1:24,27), 동성애가 이미 만연하게 퍼져있었던 소돔 성에서 롯의 도덕성이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딸들은 어떻습니까?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하고, 그 무시무시한 심판의 불을 눈으로 직접 보고 소돔 성을 빠져나오면서도 그들은 손에 포도주를 들고 있었습니다.
롯과 두 딸이 소돔에서 빠져나와 동굴에서 생활할 때 두 딸이 롯에게 포도주를 먹였습니다.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났겠습니까? 아니 설사 그 포도주가 소돔 성에서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무서운 심판의 불을 목격한 자들이 포도주를 구해놓고 수시로 마시고 있었다는 것이 상상이 가십니까? 그것은 롯과 그의 딸들이 쾌락의 도시 소돔 성에 살면서 그들의 영적 도덕적 감각이 얼마나 무뎌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악 된 세상을 상징적으로 축약하고 있는 소돔은 하느님마저도 조롱하는 그런 곳입니다.

(창세 18:20, 19:13) 20 이렇게 생각하시고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아우성을 나는 차마 들을 수가 없다. 너무나 엄청난 죄를 짓고들 있다. 13 이 백성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야훼께 사무쳐 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야훼의 보내심을 받아 이 곳을 멸하러 왔다.' 

18장20절의 ‘소돔과 고모라에서’라는 어구와 19장13절의 ‘아우성치는’ 어구는 둘 다 소유격 ‘소돔과 고모라의 부르짖음, 그들의 부르짖음’이라고 번역을 해야 옳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르짖음 들은 소돔 안에 살고 있는 어떤 소수의 의인들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소돔 사람들의 부르짖음인 것입니다.  ‘하느님이 있긴 어디 있어? 하느님 네까짓게 뭐야?’라는 조롱과 경멸의 부르짖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따라서 교회 생활에 충실치 못하고 세상과 어울려사는 사람들은  그 세상의 영향을 받아 하느님마저도 우습게 여기고 때로는 하느님께 삿대질까지도 서슴지 않는 자들이 되어 갑니다.
롯이 왜 하느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듣지 않고 그 소돔에서 지체했겠습니까? 하느님을 우습게 아는 세상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롯과 그의 가족들은 소돔 성에 사는 동안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돔의 죄에 깊이 중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반복해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내 백성아 어서 어서 거기서 나와라’하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묵시18:2~4)  2 그는 힘찬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무너졌다! 바빌론은 악마들의 거처가 되고 더러운 악령들의 소굴이 되었으며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새들의 집이 되었다.  3 모든 백성이 그 여자의 음행으로 말미암은 분노의 포도주를 마셨고 세상의 왕들이 그 여자와 놀아났으며 세상의 상인들이 그 여자의 사치 바람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4 또 하늘로부터 이와 같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내 백성아, 그 여자를 버리고 나오너라. 너희는 그 여자의 죄에 휩쓸리지 말고 그 여자가 당하는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라. 
聖徒는 교회를 떠나 세상과 벗하여 살면 반드시 亡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교회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함께 자라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신기루 같은 행복을 약속합니다만 절대 세상은 사람들에게 참 행복을 제공해 줄 수 없습니다.
(야고4:4) 4 절조 없는 사람들! 이 세상과 짝하면 하느님을 등지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이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원수가 됩니다. 


젊은이들이 자꾸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점점 고령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교회를 떠나 세상의 성공을 좇아 온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모습을 보시면서 대견스러워 하십니까? 아니면 통곡을 하십니까?
저는 부모들이 자기 자식 좋은 직장 얻었다고, 좋은 대학 들어갔다고 자랑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우리 천국 가족들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기도 한 것이니까요.  아이가 교회를 떠나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고 있는데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든가, 좋은 직장만 얻으면 된 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롯과 같은 부끄러운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들의 자식은 반드시 부모와 합작으로 모압과 벤암미를 낳게 될 것입니다.
 
③세 번째로 롯은 마지막 한 가지를 포기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롯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돔과 그 속에 있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7절)’은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롯은 그 말씀을 듣자마자 ‘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반대를 하였습니다. 그처럼 화급한 때에 롯이 하느님께 이의를 제기했다는 것은 롯이 평소에 얼마나 불신앙적이고 이기적인 생활을 해왔는지를 그대로 노출시켜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머뭇거리는 롯의 팔목을 억지로 잡아끌다시피 하여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런데도 롯은 그 앞에서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19절)’하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처럼 큰 은혜로, 멸망당하는 소돔 땅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롯은 그 하느님 앞에서 또 다시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불에서 건져주신 것은 고맙지만 힘들어서  산까지는 못 가겠다는 것이지요. 나를 산까지 옮기는 것은 하느님이라도 안 될 거라는 것입니다. 롯은 하느님께 소돔처럼 평야에 있는 소알로 가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창세19:20) 20 보십시오. 저기 보이는 도시라면 가까와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다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작은 도시지만 거기에라도 가서 목숨을 건지게 해 주십시오.' 

롯은 지금 하느님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느님과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소알은 작은 성이니까 그냥 놔두고 자기를 그 성으로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소알은 소돔의 축소판이었습니다. 롯이 처음 산마루에서 요르단들을 바라보았을 때 제일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곳이 소알이었습니다.
(창세13:10)  10 롯이 멀리 요르단 분지를 다 둘러 보니, 소알에 이르기까지 마치 야훼의 동산같이, 에집트의 땅같이 물이 넉넉하였다. 그것은 야훼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의 모습이었다. 
 
소알 또한 야훼의 동산 같고 이집트땅과 같은 소돔과 고모라의 亞流(모방)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알은 롯의 안목의 정욕이 바라본 마지막 草場이었습니다. 롯은 소돔을 떠났을 때 자신의 꿈과 지금까지의 노고가 일시에 붕괴되는듯한 허망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직 도 소알이 남아 있었습니다. 소돔이 없으면 소알이라도 차지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소알은 롯의 야심과 이욕(利慾)의 최후 보루였습니다. 롯이 소돔의 축소판인 소알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는 것은 자기는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소돔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소돔 성을 빠져 나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믿음의 눈으로 그 소돔 성이 어떤 곳인지 잘 압니다. 그 소돔 성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도 잘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소돔 성에서 나와 달려가라고 하는 산으로 곧장 달려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빠져 나오기는 했는데 자꾸 미련이 남습니다. 거기서 누리는 쾌락과 행복이 자꾸 반추가 됩니다. 그렇게 옛 사람에 대한 연정이 자꾸 솟아 올라오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소돔을 대체할 소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마귀는 아주 가까운 至近거리에 소알을 준비해 놓고 기다립니다.
(창세19:20)  20 보십시오. 저기 보이는 도시라면 가까와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다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작은 도시지만 거기에라도 가서 목숨을 건지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의 약속을 우습게 여겼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까운(지근)거리에 하갈이라는 대체품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소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때 마귀는 우리 곁에 소알을 준비해 놓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 작은 성 소알 안에는  큰 성 소돔의 물품들이 고스란히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소알은 작은 성이니까 큰 성 소돔에 비하면 금욕 생활을 하는 것이라 자부하며 스스로를 자위합니다. 소알은 소돔의 자식입니다. 소알을 버리지 못하면 소돔의 심판이 그대로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성 소알을 우습게보면 큰 코 다칠 날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이 가끔씩 술을 한잔씩 하면서 ‘나는 그 무서운 마약도 끊은 사람이야, 이까짓 술 몇 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한다면 그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마약보다 더 무서운 또 다른 중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재물을 모으는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자녀다움을 훈련하고 연습하는 삶을 살기로 한 사람이 부정과 편법임을 알면서도 작은 불로소득을 챙기면서 ‘그렇게 큰 것을 포기했는데 요정도는 봐 주시겠지’하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소돔의 자식 소알에 머물고 있는 사람 인 것입니다.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폭력적이던 사람이 그 삶에서 돌이켜 이제는 폭언 정도만 하고 있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역시 소알에 머물고 있는 가련한 자입니다. 시기, 질투, 험담, 이간질 등등 우리가 붙들고 있는 소알은 너무나 많습니다. 어서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그게 바로 소돔의 자식들인 것입니다. 다 비워야 합니다.
 
④마지막으로 롯은 하느님의 경고를 받고도 여전히 자기 뜻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롯은 끝까지 아브라함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롯에게 경고의 나팔까지 불어주셨습니다. 동방 연합군의 손에 롯을 붙이셔서 그에게 믿음의 행렬인 아브라함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경고를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롯은 소돔의 魔力을 못 이기고 다시 소돔 성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하느님은 끝내 롯이 살던 소돔을 불살라 버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롯은 소돔을 그리워하며 아브라함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굴에서 포도주나 마시며 딸들과 相關하여 모압과 벤암미를 낳아버렸습니다. 후일 모압 여인들은 가나안으로 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혹하여 多産神인 바알을 섬기게 하였고, 벤암미의 후손들인 암몬 족속들은 몰록神에게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악습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의 對敵이 됩니다.(레위18:21, 민수25, 아모1:1) 성도가 세상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을 벗하여 살게 될 때 그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멸망의 자식들을 잉태하게 되는 것이고 그 삶은 절대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롯이 소돔에서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에 올라 앉아 있었으면서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베후2:7) 롯은 소돔을 나와서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는 것을 직접 보았고 딸들과 근친상간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자기  딸들이 낳은 자기 자식들을 보면서 평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요? 그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롯의 삶을 부러워하시겠습니까? 성도는 하느님의 경고를 감지했을 때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肉慾을 따라 사는 많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롯의 이야기가 경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세상의 힘의 원리에서 벗어나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인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이 하느님을 위해 그렇게 살아 드리는 것으로 생색내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지 않으면 늘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성도의 행복과 평안과 안식을 위해 ‘내 백성아 세상에서 나와 내 말을 듣고 나와 네 이웃을 사랑하는 삶, 나그네를 대접하는 삶을 살거라.’ 하고 요구하십니다.
 
(창세19:30)  30 롯은 소알에서 그 고장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두려워 두 딸을 데리고 소알에서 나와 산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는 두 딸과 함께 굴 속에서 살았다. 

보세요. 하느님의 백성인 롯이 평생을 고통스러움 속에서 두려움 속에서 삽니다. 여러분도 그 삶을 사시겠습니까?
하느님은 설득하고  경고하십니다. 롯의 곁에서 소돔 성의 화려함을 못내 잊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는 하느님의 백성 롯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물질주의에 젖어 있는 자들은 저렇게 저주의 소금기둥이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강력한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롯의 妻를 생각하라(루가17:32)’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롯이 소금 기둥으로 변한 자기 아내의 모습으로 하느님께 경고를 받았듯이 우리도 오늘  롯과 롯의 아내의 삶을 보면서 하느님의 경고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롯처럼 하느님의 경고들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간 평생을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됩니다. 어서어서 성도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지금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수시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고전10:11~12) 11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고가 경고가 되었으며 그것이 기록에 남아서 이제 세상의 종말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는 교훈이 되었습니다.  12 자기 발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의 경고들은 그 어느것 하나도 경솔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억지로 강압하여 끌고 가시지 않으십니다. 설득하시고, 경고하시고, 책망하시며 그들을 이끌어 가십니다.
 

(창세19:27~28)  27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 전에 야훼와 함께 섰던 자리에 가서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분지 일대를 굽어 보니 그 땅에서는 연기만 치솟고 있었다. 마치 아궁이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셨던 바로 그 자리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目睹하게 하셨습니다. 그 것을 본 아브라함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죄를 철저히 심판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울러 하느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을 경외하며 자녀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을 전율 속에서 절실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롯과 그의 가족 그리고 소돔의 멸망 이야기에서 우리는 현재 우리의 신앙생활이 과연 하느님 앞에서 올바른 것인가를 되 짚어보고 고칠 것이 있으면 즉시 고쳐야 할 것이며 채워야 할 것이 있으면 즉시 채워야 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 있으면 즉시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하루 주심에 감사하며 회개의 삶으로 삽시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살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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