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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애정과 사랑의 차이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28 조회수2,420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애정과 사랑의 차이>


복음: 요한 12,24-26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다


ROBBIA, Luca della 작, (1446)


 

 

 


노이나와 낟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아본 신랑 낟의 어머니.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되어가니?”

준비는 다 되었고, 마지막 점검 중이에요.”

낟의 어머니는 며느리 노이나와 단 둘이 설거지를 한다.

너 그거 아니? 낟이 어렸을 때 정말 말을 안 들었어. 세월 참 빠르지... ”

요즘도 말을 안 들어요.”

낟의 어머니는 배불러서 괜찮다는 낟에게 떠날 때 또 비닐봉지에 과일과 음료수를 넣어준다. 노이나가 대신 받아준다.

운전하고 있는 낟을 보며 자기 어렸을 때 노이나먹다가 씨가 목에 걸린 적이 있었다며?”

누가 그래?”

그러자 노이나는 신랑의 어머니가 준 노트를 보여준다. 운전은 노이나가 하고 낟은 어머니의 노트를 조용히 읽는다.

“1987319,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 몸무게 평균 이하(괜찮아, 내가 있잖아.) 애가 도대체 먹지를 않는다. 어떡하지? 199394, 여섯 살 때 처음으로 우유 한 컵을 다 마셨다. 1994319, 낟이 초콜릿을 좋아해서 초콜릿으로 생일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19881122, 아들이 캠핑을 간다. 밤에 배가 고플까 걱정이 된다. 200086, 아들이 농구 시합에서 이겼다. 대견해. 역시 내 아들이야! 우리 아들은 수박, 오렌지, 망고, 바나나를 좋아하지만 노이나를 싫어한다(씨가 목에 걸린 적이 있었다). 롱빈이 들어가지 않은 치킨바질을 좋아한다. 내 아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생선 머리를 좋아한다.”

엄마는 꼬리가 좋다고 하셨는데...’

아들은 어머니가 준 비닐봉투를 다시 보며 눈물을 흘린다.

노이나는 낟의 어머니가 이 노트를 주고 자신을 안아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노이나, 내 아들 잘 부탁해.”

마지막 장에 어머니와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있고 이렇게 쓰여 있다.

너를 보살피는 것이 내 생애 최고의 행복이었단다.”

[출처: ‘큰 보살핌은 작은 한 입에서’, 태국광고, 유튜브]

 

예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 말 나는 믿을 수 없어, 사랑한다면 왜 떠나가야 해, 그 말 나는 믿을 수 없어...”

사랑한다면 떠날 수 있어야합니다. 아들을 보내지 못해서 자신의 아들을 빼앗아간 것처럼 며느리를 구박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면 보낼 수 있어야합니다. 보낼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애정입니다.

애정과 사랑은 반대말에 가깝습니다. 애정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상대로 나를 채우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상대가 떠나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사랑은 상대의 행복을 위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보내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금대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금대접으로 여깁니다. 금대접은 식탁을 장식할 수 있는 귀중한 것입니다. 그 그릇에 음식을 담느라고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금대접이 사람이라면 자신과 같은 금대접이 옆에 있다가 사라지더라도 다른 곳에서 더 빛나겠거니 생각하며 한 편으론 기뻐합니다. 자신은 여전히 금대접이고 떠난 금대접은 또한 다른 곳에서 금대접으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질그릇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담기는 음식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에 절대로 자신에게 담겨있는 것을 남에게 빼앗기기 싫어합니다. 이것이 애정입니다. 애정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용하는 감정입니다.

 

사랑도 아닌 애정 때문에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거나 주님을 따를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모든 애정을 끊어야만 합니다. 만약 순교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인이 걱정되고 아이들이 걱정되고 어머니가 마음아파 하니 안 되겠다고 말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상태로는 아직도 내 행복이 애정에 의해 좌지우지되기에 주님이 가신 길을 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애정이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애정은 묶이는 것이고 사랑은 독립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버리지 않고는 받을 수 없습니다. 떠나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관계는 묶이지 않은 독립된 한 사람과 또한 독립된 한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은 애정을 사용하지 않기에 애정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목숨을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옥으로 간다고 떠나면 어쩔 수 없어하십니다. 그렇다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초대하십니다.

낟이 자신을 며느리에게 맡겨버리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을까요? 자신을 독립시켜주는 어머니의 사랑에 더 감사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지금 놓아줄 수 없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애정이란 명목으로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애정을 강요하지 않을뿐더러 애정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때 발휘될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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