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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죽기까지 낮추시어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29 조회수2,924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8주간 수요일


<죽기까지 낮추시어>



복음: 마르코10,32-45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림


LORENZETTI, Pietro 작, (1325)


 

 

 

 

      멜랑콜리아(Melancholia: 2011)는 우울증에 관한 영화입니다. 감독 자체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하니 우울증에 대해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다고들 합니다.

여기서 우울증은 지구를 향해오는 행성 멜랑콜리아(행성 이름 자체가 우울증입니다)로 표현됩니다. 당연히 그것에 부딪히면 파멸하고 마는 지구는 우울증을 앓는 우리 자신을 상징합니다.

저스틴이라고 하는 여자는 우울증을 숨기고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우울증 때문에 모든 것을 망치고 맙니다. 사람도 두렵고 새로운 결혼생활도 두렵고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도 두렵습니다. 결국 결혼한 날 이혼합니다.

그래서 클레어라고 하는 언니 집에 얹혀살게 됩니다. 클레어는 아들과 남편이 있는 보통 가정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각자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과학적 사고를 지닌 남편은 자신의 계산대로라면 절대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클레어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꼬마 아들은 죽음을 직시하며 담대합니다. 클레어는 이미 우울증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피할 수도 없음을 압니다.

남편은 결국 그 행성이 정확히 지구에 충돌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약을 먹고 자살합니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결국 죽음 앞에서 맞게 되는 두려움입니다. 죽음 앞에서 자신 있을 과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클레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계속 불안해합니다. 도망쳐보지만 갈 데가 없음을 알고 다시 돌아옵니다. 오직 저스틴과 클레어의 아들만이 행성이 지구에 부딪히는 순간까지 눈을 감고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아마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어차피 우리 모두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데 그 우울함이 곧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너무 두려워 먼저 죽어버리는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우울증도 있고, 그냥 담대하게 그 우울함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받아들여야 할 것, 우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진정한 우울증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죽음 앞에서 담대할 수 있을까요? 담대할 수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명확히 알게 됩니다. 아니 명확히 알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담대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며 당신께서는 거기에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져 사형선고를 당하고 다른 민족들에게 조롱당하고 침 뱉음 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이런 죽음이 예수님에게만 해당하는 것인 줄 알고 야고보와 요한은 당신께서 영광에 싸여 오실 때에 한 사람은 당신 우편에 한 사람은 당신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받으시게 될 십자가의 세례를 그들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누구나 따라야 한다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죽이지 않고서는 누구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와 부활은 하늘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세례와 같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곳에 살기 위해서는 그 곳에 알맞은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죽음은 새로 태어남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살아가는 것도 꼭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높아지느냐는 당신이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미 결정 돼 있으니 그것은 신경 쓸 바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다만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유념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겸손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곧 자아의 죽음을 의미하는데 자아가 곧 교만이기에 우리는 모두 교만을 매달아 겸손한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한 여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인생의 의미나 목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인데, 누구나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 십자가의 길이란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마음으로 가서는 안 되고 이 세상에서부터 가장 낮은 자, 비천한 자로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십자가에 자신을 매달아 죽임이 곧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길로 가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겸손해져야 누군가가 또 내 겸손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나도 그 겸손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십자가 없는 겸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분”(필리 2,8)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미 우리가 겸손해지려고 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완전히 우리 자아가 죽을 때 완성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어차피 맞아야 할 죽음을 향해 가며 우리가 해야 하는 유일한 일입니다. 죽음 앞에서 우울하거나 두렵지 않기 위해서는 죽음이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는 세례와 같으며 겸손의 길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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