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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가난한 이의 친구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30 조회수2,34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가난한 이의 친구>

  

 


복음: 루카 1,39-56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바닷가를 바라보는 한 구조대원의 뒷모습과 그 옆의 약간 일으켜져있는 이동침대를 찍은 한 장의 사진이 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동침대에 실려 앰뷸런스에 태워진 한 여성은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앰뷸런스를 돌아서게 하는 한 마디를 합니다. 환자는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고통 완화 치료소로 이송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꺼냅니다.

마지막으로 바다가 보고 싶어요.”

이 얘기를 듣고 있던 구급대원은 조용히 차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해변으로 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구급대원들은 그녀를 들것에 옮겨 구급차 밖으로 꺼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눈에 바다를 볼 수 있는 해변으로 그녀를 데려다주었습니다. 환자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구급대원은 물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평화 속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행복합니다.”

구급 대원 중 한 명이 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고 이들의 연민은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출처: ‘죽어가는 여성 한 마디에, 병원 정반대로 달린 구급차’, 포크포크, 유튜브]

 

주는 것이 더 행복할까요, 받는 것이 더 행복할까요? 받는 것이 더 좋은가요? 받기만 하는 노숙인이 더 행복해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받지 못하는 것보다야 받는 것이 더 낫기야 하겠지만,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받는 쪽보다는 주는 쪽에 있는 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더 좋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때 아버지와 비슷한 연령대의 분들이 오셔서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를 목욕시켜주는 봉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만약 제가 아버지였다면 받는 쪽보다는 주는 쪽을 선택하시고 싶었을 것입니다. 봉사 받는 쪽보다는 봉사 해 주는 쪽이 더 행복합니다. 봉사가 힘들다면 그것은 봉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된 봉사는 나를 매우 흡족하게 합니다. 우리의 행복은 타인의 행복에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행복하게 해 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당시 엘리사벳은 매우 늦은 나이에 아기를 가졌기 때문에 얼굴을 들고 세상에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기를 가져 기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까봐 동시에 우울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시는 성모님께서는 사촌 엘리사벳의 잉태 사실을 알자 당신이 어디에 머물러야하는지 명확히 아셨습니다. 당신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곳에 당신이 계셔야한다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1,000원은 큰 액수는 아니지만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한 아이 앞에서는 며칠을 더 살 수 있게 만드는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내가 1,000원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어느 자리에서 가장 행복할까요? 50,000원짜리 다발 속에 끼어있을 때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가장 귀하게 사용될 수 있는 곳일까요? 답은 뻔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항상 더 불편한 자리를 찾습니다. 부자들이나, 권력 있는 사람, 혹은 인기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에게 크게 필요하지 않은 잔돈과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괜히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말고 내가 쓰일 수 있는 비천한 사람들 사이로 가야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셨고 심지어 세리와 창녀들처럼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이들과 어울리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명성에 큰 먹칠을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이용할 뿐입니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가난한 이의 친구라고 하면 예수님이나 성모님이 떠오르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불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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