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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31.마리아 방문축일-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31 조회수1,991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 1,39-56(마리아 방문 축일)

 

 오월, 성모성월을 마감하면서, 우리는 복된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을 지냅니다. 오늘 <복음>은 두 가지의 아름다운 만남 이야기 입니다. 하나는 성모님과 엘리사벳의 만남이요, 다른 하나는 태중의 두 아들, 곧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만남입니다.

 

 <첫째 만남>은 두 여인의 만남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놀라운 손길을 체험한 이들입니다. 한 여인은 동정인 채 아기를 가진 처녀이고, 다른 한 여인은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돌계집으로 나이가 많아서 아기를 가진 여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성으로는 납득할 수도 받아들일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이 여인들에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잉태한 후, 서둘러(루카 1,39) 달려간 곳은 6개월 먼저 아이를 갖은 사촌언니 엘리사벳의 집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혼자 담고 있기에는 너무나 벅찬 감동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 예수님이 태중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보채어, 자신의 길을 닦으러 세상에 태어나게 될 요한에게 가기를 다그쳤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만남에서, 나자렛의 시골 처녀 마리아에게 생긴 하느님의 놀라운 개입이 기쁨과 찬송이 되어 터져 나옵니다. 먼저, 그것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치는 엘리사벳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루카 1,44)

 

 참으로 아름답고 겸손한 만남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믿음을 찬송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루카 1,45)

 

 오늘 우리가 성모님처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면 우리 안에서도 놀라운 탄생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은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를 낳으신 분을 내가 다시 낳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토록,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신 하느님의 활동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비천한 여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온 마리아의 노래는 세세 대대로 믿음의 자녀들이 부르는 하느님 자비의 찬미노래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스스로 가난하고 비천한 종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작고 낮은 자 안에 벌어진 하느님의 자비를 찬송합니다. 사실, 이 두 여인은 무명의 시골 아낙이었습니다. 궁중의 여인도, 부잣집 마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신분과 지위에서 보통 여인이었지만, 믿음에 있어서는 위대한 여인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어머니가 된 여인들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찬양을 받은 이유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비천한 이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의 권능과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은 마리아의 믿음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가난과 겸손 안에서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과 그분의 자비에 희망을 두고 살게 되면, 마리아에게서 일어났던 그 구원의 감동과 기쁨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의 위대하심을 알리고 노래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만남>은 더욱 더 의미심장한 만남입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계신 예수님과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세례자 요한의 만남입니다.

 사실, 요한이 6개월 형이지만 아우 예수님께 먼저 태중에서 기뻐 용약합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당황하여 몸 둘 바를 몰랐듯이, 요한도 태중에서 하느님인 예수님의 방문에 대해 몸 둘 바를 몰라 태중에서 기뻐 뛰놀았습니다.

 이는 태아의 인사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태중의 아기의 인사를 마리아를 통해 태중의 예수아기에게 전달합니다. 그리하여 신비로운 방식으로 태중의 요한의 원죄가 사해지고, 그는 원죄 없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원죄 없이 태어난 세 분, 곧 예수님과 성모님과 세례자 요한의 탄생일을 대축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마리아와 함께 벌어진 아기 예수님의 이 신비로운 방문은 동시에, 하느님이 인간세상을 방문하신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만남이요 친교요 소통입니다. 곧 그들의 만남과 친교와 소통은 '믿음'이라는 공감대 안에서 벌어집니다. 엘리사벳은 믿음 안에서 마리아의 임신에 대하여 의심을 품지 않았으며, 여인들 가운데 가장 축복받은 여인'이라고 마리아를 찬양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으며, 믿음으로 서로 소통하고 서로 친교를 나눕니다. 아기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신비로운 소통과 친교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갈수록 '능력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요,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교제하는 깊은 친교가 필요합니다. 또 서로 믿음 안에서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더 능력 있는 부모, 더 이익을 주는 동료, 더 똑똑하고 재주 많은 후배가 아니라, 더 믿어주는 이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이토록 아름다운 만남, 믿음 안에서 소통과 친교를 이루는 만남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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