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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처음 (요한 1.1-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2 조회수3,139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한 처음

(요한 1.1-5)

1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2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요한복음을 공부하면서 아직 복음에 대해서 정리가 안된 분들이 복음을 잘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또 아울러 아직까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귀한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은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예수의 수제자중의 하나였던 사도요한이 기록한 책이에요 요한복음 2120절 이하에 보면 그게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20 베드로가 돌아다보았더니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굽니까?' 하고 묻던 제자였다. 21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주님,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22 예수께서는 '내가 돌아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3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제자는 죽지 않으리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하지는 않으셨고 다만 '설사 내가 돌아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고 말씀하신 것뿐이다. 24 그 제자는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글로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5 예수께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그 하신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하자면 기록된 책은 이 세상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분명하게 요한이 요한복음의 著者라는 것이 나오죠? 그리고 초대교회 교부였던 이레네오도 그의 저서 어게인스트 헤레시스라는 책에서 주님의 제자인 요한이 에페소에 머무르는 동안 요한복음을 썼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요한은 어부였지만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 아들이였습니다.

 

마르코복음 120절 보세요 20 부르시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삯꾼들을 배에 남겨둔 채 예수를 따라 나섰다. 보시다시피 삯꾼들을 부릴 정도로 부유한 어부였던 것 같아요

요한은 사도 야고보의 동생이에요 야고보가 또 하나 있죠? 야고보서 쓴 사람 그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이구요 이 야고보랑은 틀린 야고보에요 예수께서 아버지 제배대오와 함께 그물을 깁고 있던 형제 야고보와 요한을 함께 부르시는 거에요

그 길로 요한은 형인 야고보와 함께 예수를 따랐어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십자가 곁에 까지 함께 한 그런 수제자중에 한 사람이 되었죠 아주 사랑받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세례 요한의 제자였어요 그런데 후에 예수 그리스도에 제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그런 일꾼으로서 평생을 복음에 투신했습니다. 또 가장 오래 살았구요

말년에는 그 에페소 교회에서 설교와 저술등에 일로 보내다가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때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박해가 아주 심해지자 그때 밧모섬으로 유배를 갔죠 거기서 이제 환상을 보고 요한묵시록을 기록하는 거에요

이 요한복음에 기록연대는 보통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가기 전 그러니까 AD 85년에서 90년까지로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마태 마르코 루가복음 이런 공관복음이 기록된 이후에 맨 마지막으로 기록된 책이 요한복음이라는 거에요 그런거는 중요하니까 기억해야 됩니다이 요한복음에 기록목적은 요한복음 2031절에 아주 자세히 나와 있어요 한번 볼까요

31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목적이 나오죠? 여기서 아주 중요한 단어가 세개 나와요 뭡니까 예수그리스도. 믿음 .생명 세 단어에요. 이게 아주 중요한 거에요 그러니까 이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복음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심 이렇게 복음을 설명하는 책인 거에요 이 말은 이 요한복음에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에 事役 그리고 그 事役에 열매로 해석이 되야 된다는 말이에요 무슨 말이냐면 제가 예를 들어 들일께요.

 

요한복음에 일곱가지의 표적이 나오죠

첫번째 표적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사건이에요

두번째 표적이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는 사건이구요

세번째 표적이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사건이에요

그리고 네번째 표적이 오병이어의 사건 그리고

다섯번째 표적이 물위를 걸으시는 사건이구요

여섯번째 표적이 날때부터 소경된자를 고치시는 사건이고

일곱번째 표적이 그 유명한 죽은나자로를 살리는 그런 사건이에요

 

이 요한복음에는 주님께서 이런 표적을 행하신 다음에 꼭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 에요 때가 이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무슨 때라는 거죠 '십자가의 죽음'이죠 '십자가의 때'

이 표적들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그 사건을, 그 때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을 거기서 보여주는 거에요 그래서 표적 끝에 항상 때가 이르지 않았다 때가 이르지 않았다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 표적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향해 흘러가고 있는 지를 보면 아주 흥미로운걸 발견할 수 있어요. 표적이 가나에 혼인잔치에서 지금 죽은 나자로가 살아나는 것으로 요렇게 흘러가서 끝난다 말이죠  

그 뜻은 지금 일곱가지의, 일곱 표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는 구원이 설명되고 있는 것 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잔치가 잔치가 되게 되는게 가나의 혼인잔치잖아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죽은 나자로가 살아나는 사건 이것이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라 말이죠 그러니까 이 표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는 구원이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거에요

그리고 그 표적이 일곱개인 것은 하느님의 그 창조에 숫자인 그 7에 의미를 그 표적에 담아서 그 표적들이 하느님에 재창조사건을 설명하고 있음도 보여주는 거에요 이렇게 요한복음은 예수, 믿음, 생명으로 해석에 결론이 나야 되는 거에요 어떤 구절을 갖다 들이대도, 그런데 왜 사도요한이 이미 공관복음서들이 쓰여졌던 그 시절에 그 노구(老軀)에 몸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시고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라는 그 복음을 또 다시 설명을 해야 했을까요? 이렇게 복음서를 또다시 써서 당시에는 영지주의 노스티시즘이 교회의 그 신학적 기반을 위협하고 있었어요 그 영지주의라는 것은 물질은 악하고 정신은 선하기 때문에 선하신 하느님께서 악한 세계를 창조하셨을리가 없다고 주장을 했어요 그리고 그 영지주의자들의 일부는 그 역사적인 예수는 단지 인간이였던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도에 그 신적 실체를 부정하는 그런 가현설 도케티짐을 주장하기도 했다 말이에요


그 말은 하느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죄악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실 수 없으며 또 영원하신 하느님께는 죽음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이 두가지 전제하여 그리스도는 예수라고 하는 그런 영적인 그런 탁월한 인간과 일시적으로 결합해서 그냥 잠깐 병존상태로 있다가 십자가 사건 바로 전에 떠나셨다라고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바로 도케티즘이라는 거에요

그리고 기록에 의하면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에서 복음을 가르칠때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이 직접적으로 요한에 가르침에 반기를 들고 나왔었다 그래요 그래서 요한은 요한복음을 써서 그러한 영지주의자들에 주장에 대해서 성경을 근거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맞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셨다 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강조할려고 쓴 책이에요

 

그래서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하느님이셨다 그리고 인간이셨다 라는 말이 아주 강조되고 있어요 예수님의 신성을 아주 강조한다구요 요한복음에는 아이 엠 에고 에이미라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에고 에이미 나는 샘물이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나는 세상에 빛이다, 나는 양에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포도나무다, 이렇게 에고 에이미 라는 단어를 써서 아이 엠 이라는 단어를 써서 자신을 표현하고 계시는 주님에 그 말씀을 인용해서 주님은 하느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요 하느님이시다 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거에요.

요한복음 184절 보세요 4 예수께서는 신상에 닥쳐 올 일을 모두 아시고 앞으로 나서시며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5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소' 하자 '내가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를 잡아 줄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6 예수께서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5절에서 '내가 그사람이다'라고 하죠 6절에서도 '내가 그사람이다.' 라고 하십니다 거기서 사용된 그 헬라어 단어가 아이엠 에고 에이미 에요  이 말은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하느님 당신의 이름이 뭡니까 라고 물어봤을때 하느님이 아이엠 후 하이엠 이라고 이름을 대답해 주셨죠? 그게 에고 에이미 에요 하느님의 이름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그사람이다'' 에고 에이미' 하니까 죄인들에게 그 하느님에 이름이 확 선포가 되니까 죄인들이 핍토, 뻥 나가 떨어진 거에요 그게 요한복음 18장에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아주 여러곳에서 예수님에 신성을 강조하고 있는 거에요 이런 에고 에이미 이런 단어를 딱 접했을때 유대인들은 금방 알아들었대니깐요 아 이게 하느님에게 쓰인 말인데 어떻게 예수에게 이런 말이 쓰여질까 이렇게 알았단 말입니다

 

4복음서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것을 주제로 기록된 것인지를 확인하고 있으면 요한복음에 그 기록목적이 조금더 뚜렷해집니다.

먼저 마태오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쓰여진 책이 에요 최초에 수신자가 유대인들이였어요 마태오복음은 그 유대인들에게 왕으로서에 예수를 소개하고 있는 책이 마태오복음이에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왕되심을 부인하고 있었던 것이 대해서 마태오가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들이 기다리고 있던 그 왕 그 진정한 메시아가 맞다 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기록한 책이 마태오복음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마태오복음 서두에는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가지고 왕에게 경배하러 오는 그런 장면이 들어가 있는 거에요

 

그리고 마르코복음은 그 수신자가 원래 로마인들이에요 그래서 마르코복음에는 마르코가 그리스도가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순종으로 세상에 종이 되셨음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어요

그런 연유에서 마르코복음에 중점은 되신 섬기는 예수님이 주제이기 때문에 예수님에 탄생기사가 나오지 않아요 그냥 예수님은 섬김의 종이라는 것이 주제이기 때문에 바로 그냥 예수 그리스도에 섬김이 서두에 딱 등장해 버리는 거에요 마르코복음에 서두를 잘 보시면 곧바로 1장에서 부터 예수님에 세례받으심과 시험받으심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事役들이 바로 기록이 되어 있다구요

 

그리고 루가복음은 헬라에 그리스도 인들을 대상으로 예수님을 사람에 아들로서에 완전하신 인간 다른 말로 인자로 그리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에 탄생과정과 목자들에 방문을 받으시는 그 주님의 모습과 그분이 인자로서 할례를 받으시고 또 인자로서 결례의 날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제사를 지내는 장면 그리고 인자로서 절기때에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가는 그런 소년 예수에 모습 이런 것들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 거에요 진짜 인간으로 사신 예수. 그래서 루가복음에는 탄생기사가 적혀 있는데 동방박사가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오는 장면이 또 빠져 있다 말이죠 그거는 주제와 상관없기 때문에 그냥 생략시켜 버린 거에요

이렇게 다른 공관복음서들이 예수님에 생예동안 일어났던 사건들과 말씀들을 역사적으로 기록해서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요한복음은 그러한 사건들과 말씀들을 해석을 해서 그 영적 의미를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래서 요한복음은 해석에 아주 주의를 기울여야 됩니다. 다른 공관복음하고 조금 차별을 두어 해석을 해야 되요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며 오직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구원에 관한 내용이 강조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에 그 사람으로서의 탄생부분을 생략하는 거에요 그래서 안나와요 그게. 그리고 바로 뭐부터 나오냐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임하시는 그 모습부터 나오는 거에요 말씀이신 하느님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거... 그 예수가 바로 하느님 맞다부터 시작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며 오직 그분을 믿음으로서만 생명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는데에 불필요한 부분인 주님의 탄생부분이나 시험받으심 변모산 사건 최후의 만찬 이런 것들이 과감하게 다 생략이 되어 있죠 요한복음에는 안나와요

  

 

이 요한복음은 4복음서중에 가장 나중에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그러한 사건들은 독자들이 이미 다른 복음서들을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으리라고 가정을 했기 때문에 자기의 목적에 불필요한 것들은 다 이렇게 쳐 내버린 거에요 요한복음은 그렇게 공관복음서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가지 내용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대신에 중요한 주님의 말씀을 강조해서 아주 세밀하게 증거해 줘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짤막하게 하신 비유나 간단하게 하신 말씀을 거의 생략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비유가 거의 안나오죠? 그렇지만 아주 긴 강화가 많이 나와요 특히 13141516장은 전부 예수님에 講話에요 說敎에요 제자들에게 하신 설교.

그런 강화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자기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히 베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있죠 그리고 나머지 공관복음서들은 예수님의 그 공생애 무대를 주로 갈릴리로 한정하여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갈릴리에 사역은 거의 안나와요 그리고 유대지방에서의 예수님에 사역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록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도 4번이나 여행하셨음이 잘 나타나 있어요

그리고 요한복음에만 과월절이 3번 나와요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3년 이였다는 것은 요한복음에만 나와요

다른 공관복음서에서는 과월절이 딱 한번 나오죠 그래서 공관복음서만 보면 예수님에 공생애가 1년 이였나 이렇게 착각할수도 있다니깐요 그런 면에서도 요한복음은 아주 중요한 거에요 여러가지 유익한 정보들이 많이 나와 있어요

그리고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들어있지 않은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나 그건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어요 니고데모 이야기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 그리고 죽은 나자로를 살리신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고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런 거랬어요

 

요한복음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눠져요 그건 제가 나눈거에요

첫번째 부분이 11절에서 18절 까지의 부분이에요 그부분을 우리가 서론이라 그래요 그리고

두번째부분이 119절에서 1250절까진데 그게 일곱가지 표적에 부분이에요 그리고

세번째 부분이 131절에서 2031절까지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까지 그 마지막 기간동안에 그 강화와 기도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내용이 바로 고기에 적혀 있죠 그리고

네번째 부분이 211절에서 2125절까지 그러니까 후기라고 우리가 부를 수 있어요

요렇게 네부분으로 나눠서 보면은 요렇게 러프하게 나눈 것이지만 조금 이해가 더 쉬워요 요한복음을 잘 보시면요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자신을 이렇게 숨기세요 그러면서 점차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어요

처음에는 유대인들과 부딛혔을때 그들과 싸우지 않고 이렇게 피하신다구요 그런데 5장에 가면 안식일 문제로 유대인들과 논쟁을 하는 모습이 나타나요 그러니까 진리를 점차로 들어내시면서 예수님은 죽음으로 자신을 스스로 몰고 가시는 거에요 그리고 진리가 들어나는 만큼 예수님에 고난과 시험도 점점 커져감을 알 수 있어요 그게 우리에 삶이기도 한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 고난도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 고난도 예수님에 고난과 함께 비례해서 점점 커져요 날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出校를 당하죠 출교라는 건 그 당시에는 엄청난 거에요 엄청난 핍박이에요 그런데 그 다음엔 죽었다 살아난 나자로는 살해의 위협을 당하죠 예수를 죽이면서 저것도 죽여버리자 그런다니깐요 고난도 점점점점 커진다 말이죠 그리고 요한복음은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그 빛이신 예수에 의해서 이 빛에 의해서 어둠과 빛이 확연하게 이렇게 구분되어 지는 것을 보여줘요 오병이어의 사건 이후에는 처음에는 많이 쫓아오다가 오병이어의 사건 이후에는 열두명만 달랑 남죠 점점점점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간다니깐요 빛에 의해서 그래서 요한복음 처음에 빛이 나오는 거에요

 

 

 

이제 본문으로 한번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한번 볼께요 요한복음 11, 한 처음(太初),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한 처음(太初)에로 시작이 되요 성경에 한 처음(太初)인더 비기닝으로 시작되는 책이 세권이 있어요 뭐죠

창세기, 요한복음, 요한1, 이렇게 세가지가 한 처음(太初)에 인더비기닝으로 시작이 된다구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요한은 그에 편지에서 창세기를 떠올리면서 새로운 창세기를 쓰고 있다는 거에요 요한복음 1장이 창세기 1장에 구조와 동일합니다 그 말은 창세기는 바로 요한복음을 그림자로 모형으로 힌트하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자 말씀드린것 처럼 요한복음은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뿐인 죄인들의 마음속에 뚫고 들어오셔서 흑암인 그들을 밝히시고 혼돈스러운 것에 틀을 세우시며 공허한 죄인들을 하느님의 은혜로 체우시는 그런 구속사역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에요 요한은 창세기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에 구속사역을 힌트하고 있었음을 자신에 편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세상에 수면위에 운행하시는 성령을 보증으로 세우시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죠 그게 요한복음에 내용을 힌트하고 있는 거라는 걸 요한이 이야기 하고 싶은 거에요

창세기 12절 보세요 2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 예레미아에 나와요

예레미아 422-23절 보세요 22 '내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이렇게도 나의 속을 모르다니. 미련한 자식들. 철없는 것들. 나쁜 일 하는 데는 명석한데 좋은 일은 할 생각조차 없구나.' 23 '땅을 내려다보니 끝없이 거칠고 하늘을 쳐다보니 깜깜합니다.

죄인을 나타내는 거에요 내가 땅을 본즉 그들이 사는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여기에 그대로 나오죠 그럼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뭘 상징하고 있다라는 거에요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에 땅 그것을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상징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창조를 시작하시는 그 창세기에 바로 그 장면은 성령을 보증으로 세우시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뿐인 죄인들에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새 창조를 해내시는 우리 하느님에 구속에 내용을 처음부터 힌트하고 있는 거라는 거죠

창세기에 창조는 6일 동안에 일어났죠 그리고 마지막 7일째에 하느님께서 안식을 하시는 것으로 끝이나요 그래서 7일 안식의 수 혹은 완전수 하느님의 수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래서 요한복음에도 창세기처럼 7일이 등장하는 거에요 요한복음 1장과 2장 서두까지 보면 7일이 똑같이 등장한다구요

그러니까 요한복음과 창세기 그 연관성을 우리가 간단하게 복습을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창세기를 보시면 첫째날이 빛이 창조되죠 빛이 있으라 그죠

창세기 13-5절 보세요 3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4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5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그래요 하느님께서 첫째날 빛을 창조하시는데 그 빛이라는 것은 발광체가 있어야 존재하는게 빛이죠 이런 빛이 있을라면 지금 이 공간을 비추고 있는 빛은 발광체가 뭐에요 전등이잖아요 전등이 있어요 거기에서 빛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 우주에 발광체는 뭐죠 태양이잖아요 그래야 비로소 빛이 생길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태양은 넷째날 만들어 진다 말이에요 그러면 이 첫째날 만들어진 이 빛은 뭐에요 발광체가 뭘까요 이 첫째날 만들어진 빛에 발광체 적어도 그 첫째날 만들어진 그 빛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 빛은 아니에요 그죠? 여기서 쓰인 빛 오르라는 이 히브리어는 구체적인 그 발광체나 그 발광현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에너지원 능력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단어에요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은 창세기 13절에 그 빛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빛이 아니라 신적 은사신적 능력을 의미하는 영적인 빛으로 봤어요 저도 그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에 동의를 합니다 빛이 있으라에서 있으라 하야라는 단어는 하느님에 이름에서 쓰인 단어에요 조금아까 우리가 봤지만 아이엠 후 아이엠이라는 하느님에 이름 있죠 그게 하야에요

 

그런데 여기서 빛이 있으라에서 오르 하야 그런다 말이죠 하느님의 이름이 거기서 등장을 한다 말이죠

그러니까 그 창세기 첫째날에 그 빛 오르 하야는 참 광명이신 유일한 발광체이신 참 빛이신 그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에서 를 창조해 내시는 하느님에 능력이며 만물을 보살피시며 키우시는 생명력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잘 이해하셔야 되요

시편 369절 보세요 9 생명의 샘 정녕 당신께 있고 우리 앞길은 당신의 빛을 받아 환합니다. 인 다이 라이트 쉴 위 씨 라이트

빛이 두개가 나오죠? 광명 광명 라이트가 두개 나오잖아요 여기도 오르 오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는 빛의 원천이신 하느님 자신이고 거기서 흘러나와 우리의 생명력이 되고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으니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 흘려나와서 우리에 생명력이 되고 있는 또 하나의 빛, 그러니까 태양빛이 태양이라는 발광체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듯이 하느님이라는 발광체로부터 나오는 그 빛 그 빛이 바로 하느님에 신적 능력이요 만물을 창조하시고 존재케 하시는 생명력 이라는 거에요 바로 그 빛이 첫째날 나타났다는 것이죠 창세기를 잘 보시면 태양이 창조되게 전에 채소와 과일이 이미 자라나는걸 볼 수 있어요 셋째날 그러죠 태양은 냇째날 창조되는데 셋째날 식물이 이미 자라난다구요

창세기111- 12절 보세요 11 하느님께서 '땅에서 푸른 움이 돋아나거라! 땅 위에 낟알을 내는 풀과 씨있는 온갖 과일나무가 돋아나거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2 이리하여 땅에는 푸른 움이 돋아났다. 낟알을 내는 온갖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 나무가 돋아났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식물은 태양빛을 받아서 광합성을 해야 비로서 존재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 식물은 태양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그곳에서 자라고 있다구요 무엇에 의해서 감추어진 빛 진짜 만물을 소생케 하고 자라는 감추어진 그 빛 그 생명력이 그 빛에 의해서 자라나고 있는 걸 보여주는 거에요 그래서 넷째날에 그 태양의 창조 이전에 벌써 생물에 등장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창세기 1장에 나오는 그 빛에 창조는 이제 하느님에 전지 전능하신 능력으로 어떠한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거에요 바로 그 능력이 밤과 낮을 갈라서 밤에 속한 자들을 영원한 어두움으로 몰아내시고 낮에 속한 자들을 빛으로 건져내시겠다 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빛이 있으라 하신 그곳에 어둠이 공존하는 거에요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 했는데 거기에 어둠이 아직까지 있죠 그래서 어둠을 밤이라 하고 빛을 낮이라 했잖아요 이거는요 엄청 중요해요

그냥 야 첫째날 빛이 창조됬구나 둘째날 궁창이 갈렸구나 이런식으로만 알고 계시면 안된다는거에요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보세요.

하느님은 빛이 있으라 하신 그곳에 어둠이 공존하게 만드심으로 해서 이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빛이 필요없는 그런 하느님에 나라로 만들어 내실 거라는 것을 미리 힌트하고 계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새 창조로 말미암아 어둠이 이제 더 이상 없는 그러한 하느님의 나라가 어떻게 창조될 것이다라는 것을 지금 힌트하고 있는 거에요

  

 

 

요한복음에서 바로 그 실체이신 빛이 그때는 감추어진 빛 발광체가 아닌 그 발광체로부터 나오는 어떤 능력인 빛이 나타났었지만 이제는 그 실체인 빛이 진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왔다 이거를 요한복음에 첫째날에서 보여주는 거에요 창세기에 첫째날에서는 빛이 있으라 하면서 빛이 나타났었는데 그것은 진짜 발광체는 아니였어요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 첫째날에서는 빛에 실체가 진짜 오는 거에요

요한복음 19절 보세요 9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 그 빛이 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참 및 그 참 빛이 인제 오는 거라 말이죠 그 새 창조의 완성이 그 빛이 오셔서 빛에 실체가 오셔서 이제 창세기에 창조가 아닌 첫창조가 아닌 새 창조를 하게 되는데 창세기에 첫창조가 힌드하고 있는 새 창조를 하게 되는데 ...그 새창조의 완성이 요한묵시록이 등장한다 말이에요 보세요

묵시록 2255 이제 그 도성에는 밤이 없어서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창세기 첫째날에는 빛이 있었으나 어둠이 공존했죠 하느님께서 그 어두움을 어떻게 이 빛으로 몰아내시고 어두움이 더이상 없는 그 나라로 만들어 나가시는가 창세기 11절에서 요한묵시록 22장으로 어떻게 만들어 가시는가가 성경이라는 거에요 아시겠어요

그 중간에 그 참빛이신 예수가 오셔서 그것을 어떻게 이루시는 가를 보여주는게 요한복음이라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첫째날에 바로 그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례자요한이 증거하는 그분이 바로 참 빛이다라고 증거하는 장면이 첫째날에 등장하는 거에요 한번볼까요

16-10절 보세요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 8 그는 빛이 아니라 다만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 그 빛이 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10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

 

이게 요한복음에 첫째날이에요 창세기 뚤째날로 이제 가볼까요

창세기 둘째날에는 물이 궁창 위에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갈라지죠? 중요한건 물이 갈라졌다라는 거에요 물이 갈라지고 하느님에 택한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사건이 출애굽에 나오죠 무슨 사건? 홍해사건이에요.

하느님에 택한 자들만 살아나고 나머지 죄인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는거 그게 바로 홍해사건이에요 고린도 전서에서는 그 홍해사건을 洗禮라고 부르죠

고린도전서 101-2절 보세요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꼭 기억해 두셔야 하겠습니다. 모세 때에 우리 조상들은 구름의 인도를 받았고 모두가 홍해를 무사히 건넜습니다. 2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의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갈라진거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간 것을 세례라고 표현한다 말이에요 바오로가 구름과 바다에서 구름 궁창 위에물 바다 궁창 아래의 말이잖아요 그것을 통과하는게 세례라 말이에요

다른 말로 죄인이 궁창 위에 물과 궁창 아래의 물에 빠져서 모두 심판을 받아서 다 죽고 하느님에 택한 자들만이 새사람이 되어서 올라오는거 그것을 세례라고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는건 우리가 죽고 다시 새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하는 거에요 그 말은 하느님에 죄에 대한 진노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보여주는 거에요

실제로 궁창 위에 물이 전부 쏟아지고 궁창 아래에 물과 합쳐져서 이 땅에 寄食하는 것들이 모두 죽은 심판에 사건이 있었잖아요 노아의 홍수사건.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 노아의 홍수사건 이후에 이제는 땅을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라고 계약을 하세요 그러면 어떤 다른 방법을 만들어 놓으셨다라는 것인데 어떤 방법이에요 하느님의 연계악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로 수렴이 되야 하는 거에요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궁창 위에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전부 쏟아 부어서 그를 심판하시고 그 안에 들어있는 자들은 모두 살려내려 한 거에요 그게 노아의 방주인 거에요

그래서 고린도 전서가 홍혜사건을 이스라엘이 구름과 바다에서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에요 모세가 그들을 품에 앉고 그 궁창 갈라진 물 저주를 다 받아낸 거에요 그리고 하느님은 모세를 쫙 끌어 냈더니 모세 안에서 이스라엘 이 함께 쭉 딸려 나오는 거죠

그래서 구름과 바다에서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라고 기술하는 거죠 바로 그 홍해사건과 노아의 방주사건을 종합해 놓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세례사건이에요

세레자요한으로부터 받은 예수님의세례는 예수님이 주인과 연합이 되는 사건이에요 요한의 세례는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회개의 세례에요 요한의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구원못받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悔改洗禮에요 예수님은 그렇게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해서 죄인과 연합하는거에요 죄인의 자리에서 내려오시는 거에요 그래서 그 죄인이 되셔서 죄인들을 품에 앉고 죄인들을 대표하고 죄인들을 대신해서 궁창 위에 물과 궁창 아래의 물에 빠져 죽는 거에요 예수가 그 일이 십자가인 거에요 그래서 성경에서는 십자가의 사건도 세례라고 부른다 말이에요 그래서 요한복음의 둘째날에 세례가 등장하는 거에요 

 

요한복음 129-34절 보세요 29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한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오신다. 30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분이 한 분 계신데 그분은 사실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분을 두고 한 말이었다. 31 나도 이분이 누구신지 몰랐다. 그러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푼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 와 이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다. 33 나는 이분이 누구신지 몰랐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성령이 내려 와서 어떤 사람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인 줄 알라' 고 말씀해 주셨다. 34 과연 나는 그 광경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둘째날 회개의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인의 자리로 스스로 내려가시는 거에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불세례를 받아서 죽어버리신 거라구요

마르코복음 1038절 보세요 38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단 말이냐?' 하고 물으셨다.

十字架에요 이게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품에 안고 하느님의 저주에 세례를 받아내시므로 저주의 물을 가르고 있던 그 궁창이 찢어지고 우리는 하느님 나라로 옮겨지게 된 거에요 三層天으로 이제 옮겨지게 된거죠

3층천에 올라 갈려면 그 궁창 그 하늘을 통과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거기가 저주의 물로 막혀 있다구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그 궁창의 물에 홀로 빠져 죽으심으로 해가지고 그 궁창을 찟어 버린 거에요

성경에 보면 하늘을 커튼 휘장이라고 많이 표현을 하잖아요 그 휘장이 어디서 찟어 졌어요 예수님이 십자가로 돌아가실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고 있던 그 휘장 건빵 두개 두께였다구요 그게 그냥 쫙 찟어져 버린 거죠

그래서 일년에 한번 대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던 그 지성소에 하느님을 만나러 들어갈 수 있는 그 지성소에 우리가 아무때나 들어갈 수 있게 된 거죠 아니 아무때나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성소가 되어버렸어요 하느님이 나한테 와버렸어요. 내가 하느님을 만나러 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이 내 안에 와 버렸대니깐요 그게 어떻게 해서 일어난거라구요? 예수님이 궁창 위에 물과 궁창 아래에 물에 홀로 빠져서 죽어버리셨단 말이에요 불세례 물세례를 혼자 다 받아버리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일이 이뤄진거에요 그래서 요한복음에 둘째날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주의 물로 죽어야 할 자들이 예수님이 그걸 다 받아내심으로해서 하느님 나라로 옮겨지는 사건 그것을 힌트하고 있는 거에요 창세기에 둘째날이 그냥 단순히 하늘과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에 물 그것이 창조되었더라로 끝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 창세기에는 항상 예수가 들어가 있다니깐요 그죠?

창세기에 셋째날에는 물과 뭍이 나뉘고 식물이 창조되요 창세기19-10절 보세요

9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 있는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마른 땅이 드러나거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0 하느님께서는 마른 땅을 뭍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성경에서는 보통 바다는 악을 상징하구요 뭍은 하느님 나라를 상징해요 그래서 요한묵시록에서 새하늘과 새땅을 묘사할때 다시 바다가 있지 않겠고 라는 그런 표현을 하는 거에요

묵시록 211절 보세요 1 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그죠? 일부러 바다라는 단어를 갖다가 새하늘과 새땅을 묘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서 구원을 받을때 저주의 바다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드러났다라는 표현을 하죠 구원을 묘사하는데 바다가 갈라지고 마른땅이 들어났다라고 일부러 마른 땅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표현한단 말이에요

출애굽기 1421절 보세요 21 모세가 팔을 바다로 뻗치자, 야훼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바람을 일으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붙여 바다를 말리셨다.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렇게 표현한다 말이에요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에 좌우에 벽이 되니 바다와 뭍 바다와 육지 바다와 마른 땅을 이렇게 대조하고 있단 말이에요

 

시편 1142-5절 보세요 2 유다는 그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치고 요르단강은 뒤로 물러섰으며 4 산들은 염소처럼 뛰놀았고 언덕들은 양처럼 뛰었다. 5 바다야! 너 어찌하여 도망치느냐? 요르단아! 너 어찌하여 물러서느냐?

이렇게 성경에서 바다가 물러가고 그 바다가 마른 땅이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도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에요 그래서 바다와 구별된 그 뭍에 저주받은 땅에서 자라게 되는 그 가시와 엉겅퀴와는 대조적으로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를 가진 열매맺는 나무가 자란다라는 것을 거기다가 요렇게 보여주는 거에요 반면에 그 바다에는 탄닌이 들어있다

그래요 창세기 121절 보세요 21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큰 물고기와 물 속에서 우글거리는 온갖 고기와 날아 다니는 온갖 새들을 지어 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여기서 큰 물고기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히브리어 탄린인데요 이 탄린이라는 단어는 용 뱀 바다괴물 등에 의미로 쓰여지는 단어에요 똑같은 단어가 쓰여진 곳을 제가 몇 군데만 찾아드릴께요

아사야서 271절 보세요 1 그 날, 야훼께서는 날서고 모진 큰 칼을 빼어 들어 도망가는 레비아단, 꿈틀거리는 레비아단을 쫓아 가 그 바다 괴물을 찔러 죽이시리라.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이 용도 탄린이에요 똑같은 단어에요 바다에 있는 용 그런다 말이에요

이사야서 519-10절 보세요 9 야훼여, 당신의 팔을 벌떡 일으키십시오. 그 팔에 힘을 내십시오. 옛날 옛적에 하셨듯이 팔을 일으키십시오. 라합을 찢던 그 팔을, 용을 찔러 죽이던 그 팔을 일으키십시오. 10 바다 깊은 물구렁을 말리던 그 팔을, 깊은 바다에 길을 내어 구원받은 백성을 건너게 하던 그 팔을 일으키십시오.

물론 창세기 121절 에서는 고래나 아니면 커다란 물고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 탄린이 쓰였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구속사 안에서의 그 바다라는 관점으로 볼때는 용 뱀 바다 괴물에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한 해석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창세기 121절에서 바다에 탄린이 들어가 있다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 바다에 탄린을 넣어두심으로 해서 뭔가를 상징하고 계시다라는 것의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다는 어둠 죄악 더러움 등을 상징하는 것이고 뭍은 생명이 있는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더러운 죄악을 물리치고 구원을 받아서 하느님 나라를 살며 누리는 자가 될 수 있죠

 

  나는 안다 (요한복음14장 )

우리에 행위로 우리에 노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으로요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른 양을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는 그 하느님 나라를 살며 누릴 수 있는 거에요 그런 관점에서 요한복음에 3일 째 날을 보세요.

요한복음 135-39절을 보세요 35 다음 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다시 그 곳에 서 있다가 36 마침 예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가신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 갔다. 38 예수께서는 뒤돌아서서 그들이 따라 오는 것을 보시고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라삐,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라삐는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 39 예수께서 와서 보라고 하시자 그들은 따라 가서 예수께서 계시는 곳을 보고 그 날은 거기에서 예수와 함께 지냈다. 때는 네 시쯤 이었다.

이거 굉장히 선문답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어요. 요한이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안드레아와 다른 제자와 함께 섰다가 왜 그런 단어가 나오는지 궁금해 하란 말이에요 섰다가, 서 있다가 그 두 제자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다 하느님에 어린양이다. 라고 했어요. '서서 보라' 하면 생각나는 장면 있잖아요? 출애굽기요

출애굽기 1411절 보세요. 11 모세를 원망하였다. '에집트에는 묻힐 데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끌어내어 여기에서 죽이려는 것이냐? 왜 우리를 에집트에서 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느냐? 12 우리가 이럴 줄 알고 에집트에서 에집트인들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더냐? 에집트인들을 섬기는 편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느냐?' 13 모세가 백성들에게 소리쳤다. '두려워 말라. 움직이지 말고 오늘 야훼께서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보아라. 너희가 오늘 눈앞에 보는 에집트인들을 다시는 보지 않게 되리라. 14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모두들 진정하여라.'

구원은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는 거에요 그리고 깨닫는 것이 구원이라니깐요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있어요

그 자들을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예수 그리스도에 말씀으로 능력으로 깨닫게 해주시는거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무지, 죄악, 어두움 속에서 이 바다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에요 그리고 하느님 나라로 옮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창세기에 셋째날인 거에요   

요한이 제자들에게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에 어린양을 보라라고 말한 것은 제자들아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어린양의 피로 구출받아 나오듯이 이제는 어린양의 피가 아닌 하느님에 아들에 피로 죄와 사망에 그늘에 앉아 있는 주님에 택한 자들을 구하러 오신 그 어린양, 진짜 어린양 여태까지 너희들이 제사로 드렸던 그 어린양 상징적으로 드렸던 모형으로 드렸던 그 어린양 말고 진짜 어린양 그 어린양을 보라라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엄청난 복음에 선포인 거에요

그랬더니 그 두 제자가 예수님을 쫓아갔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 두 제자에게 너희들은 무엇을 구하느냐 라고 물으셨어요 자신을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누구를 찾느냐 이렇게 물어봐야지 너희들 도대체 무엇을 구하느냐 그 제자들은 여전히 누구를 쫓느냐 보다는 그를 쫓아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에 더 관심이 있었던 거에요 그랬더니 제자들이 랍비여 어디계시오니이까? 이렇게 물었어요 그리고는 괄호 열고 뭐라고 설명을 덧붙이냐면 랍비는 번역을 하면 선생이더라 라고 번역을 덧붙이고 있어요

그 말은 이 제자들이 예수님에 말에 '예 저희는 당신은 선생이니까 당신에게서 뭔가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그냥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스승으로만 생각했다 라는 거에요. 자기의 유익을 위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스승으로만 생각했다라는거죠 아직 까막눈인 거에요 소경인 거에요 그랬더니 예수님이 컴 앤 씨 그런다구요

그리고는 그 날을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샜단 말이죠 그리고는 뜬금없이 요한이 거기다가 그때가 제 10시였다 이렇게 뜬금없이 시간을 딱 갖다가 기록을 해 놓는다 말이죠 왜 거기다가 시간을 기록해 놓을 까요 10시면은 여기 시간으로 저녁 4시쯤 되거든요 그 말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그 시간에 그들이 변화됬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 시간에 유대인들은 어떤 순간을 강조할때 시간을 기록한다구요

예수님이 그들을 보고 컴 앤 씨 하고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님으로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소개 받고 그리고 그 능력으로 그 복음이 깨달아 지게 된 그 시간. 그게 바로 예수님이 컴 앤 씨 하고 그들을 불렀던 그 시간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들의 무지와 죄악과 어두움이 어떻게 물러갔어요? 그들에 바다가 어떻게 물러갔습니까 어떻게 그들이 뭍으로 옮겨졌죠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으로 그래서 셋째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는 거에요

그들의 인생이 변한 그 시점이 바로 그 제10시 예수님과 함께 거하기 시작한 바로 그때였다 라는 것을 보여줘요 그러니까 이 안드레아가 나가가지고 자기 형 베드로한테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이제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셋째날인 거에요

 

  

그리고 그렇게 혼돈을 질서로 잡아서 이제 준비된 그 틀에다가 이제 아직 남아 있는게 뭐에요 혼돈을 질서로 잡긴 했는데 공허가 남았잖아요 예 그러니까 창세기 넷째날 다섯째날 여섯째날에서는 그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에 그 틀에다가 질서에다가 공허를 채우는 거에요 이렇게 그래서 넷째날에는 첫째날에 공허를 채우죠 해 달 별 그죠

다섯째날에는 둘째날에 공허를 채우는 거죠 하늘에 새 바다에 물고기  여섯째날에는 셋째날에 공허를 채우죠 육축과 짐승과 땅에 기는 것과 인간을 만들어서 채우는 거죠 그리고 이게 완성이 된 일곱째날 안식을 하시는 거라 말이에요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그 이튿날 넷째날 어떤 일이 일어나요? 필빕과 나타나엘 이런 제자들을 불러 모으죠 이제 하느님 나라라는 틀을 보여줬으니까 거기다가 하느님의 백성들로 채우는 거에요 제자들로 채우는 거죠 그래서 제자들이 열두명인거에요 열두지파 열두사도 해서 이건 하느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거라 말이죠

그래서 유다가 빠졌을때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마티아라는 사람을 갖다 끼워 넣는 거에요 열두명을 채워야 되니까. 마티아는 거기 딱 한번나오죠 그리고 뭐했어요 그 사람이 그런데 그 하느님에 백성을 상징하는 그 숫자를 채우기 위해 열두명 채워지는 거라 말이죠

그래서 그 요한복음에 넷째날 부터 여섯째날 까지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는 장면들이 기록이 된 거에요 그리고 일곱째날에 하느님에 안식을 상징하는 혼인잔치 가나에 혼인잔치가 등장하는 거죠 그래서 요한복음 21절에 사흘되던 날에 이렇게 시작되는 거에요 그게 일곱째 날이잖아요 그죠

요한복음 21절 보세요 1 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 째 되던 날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 혼인잔치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계셨고 2 예수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고 와 계셨다.

그러니까 창세기에 창조는 구속사 안에서 새 창조의 관점에서 보면 불안정한 창조를 상징하고 있는 거에요 그 자체가 불안전하다는게 아니라 구속사 안에서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첫째날이 뭐라 그랬어요 낮과 밤이 공존하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요한묵시록에 밤이 더이상 없는 그 새하늘과 새땅으로 이렇게 이어지는 거라 말이죠

둘째날은 궁창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이 저주 받아 죽어야 되는 그 물로 죽어야 되는데 이 궁창의 물을 예수님이 전부 맞아서 죽어주시고 그 저주의 물이 이제 다 없어져 버리는 거죠 그리고 하느님께로 가는 그 하늘을 막고 있던 그 휘장이 찟어져 버리는 거죠

셋째날은 물과 뭍으로 갈라져 있어서 바다와 육지 이 바다가 쫙 물러가고 뭍이 어떻게 들어나게 되는가 그래서 이 새하늘과 새땅 다시 바다가 있지 않은 새하늘과 새땅으로 어떻게 가는가를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가 요렇게 보여주는 거에요 그 사이에 요한복음이 딱 들어가서 그 일은 바로 이 빛이신 참 빛이신 예수가 오셔서 이루어 내셨다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죠

성경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은 구원 하느님의 은혜 거기에 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는 거에요

요한복음은 이렇게 구속사의 관점에서 영적으로 설명이 된 책이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서두에서 살핀 것처럼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인 예수 믿음 생명을 울타리로 딱 가지고 한절한절 이렇게 공부를 해가면 이처럼 은혜로운 책도 없어요.

 

 [성경의 이해] 요한복음 이해

이제 요한복음을 통한 하느님 나라, 구원에 이르는 길을 살펴 볼라구유~   -^ㅇ^-

 

지루하시지유? 그래서 중간 중간에 삽화를 넣어 봤어유.

천천히 쉬어가시면서 보시라구유. ㅎㅎㅎ

 살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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