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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계약의 제사 (히브리서 9:11 - 2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2,331 추천수0 반대(0) 신고

 

 

새계약의 제사

(히브리서 9:11 - 22)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존재하는 모든 좋은 것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사제로 일하시는 성전은 더 크고 더 완전한 것이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창조된 이 세상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창조된 이 세상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12 그리스도는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 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받을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3 부정한 사람들에게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뿌려도 그 육체를 깨끗하게 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면  14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먼젓번 계약 아래서 저지른 죄를 용서받게 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유산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16 상속에 관한 유언이 효력을 내려면 그 유언을 한 사람의 죽음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17 유언이라는 것은 유언을 한 사람이 죽어야 효력이 있는 것이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18 그래서 사실은 먼젓번 계약도 피를 가지고 맺었던 것입니다.  19 모세는 율법에 있는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선포할 때에 송아지 피와 물을 가져다가 박하묶음과 붉은 양털로 계약의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렸습니다.  20 그리고는 '이것은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맺으신 계약의 피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21 또 같은 모양으로 그는 천막 성전과 예배의식에 쓰이는 모든 기구에도 피를 뿌렸습니다.  22 율법에 따르면 피로써 깨끗해지지 않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일이 없이는 죄를 용서받지 못합니다. 아멘


 피흘림이 없이는 죄의 용서가 없다 라는 아주 정말  복음의 핵심!이 들어가 있는 그런 부분인데 계속해서 하늘에 완료돼 있는 원형과 이 땅의 모형들에 대해서 이제 히브리서기자가 쭈욱 이야기를 해 나가고 있죠  그러면서 14절에 보시면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이게 무슨 말이겠어요 양심이? 그러니까 죽은 행실에서 '죽은 행실이라는 마음이 살아난다' 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율법지킴은 행실 행함에 중점을 두죠  그런데 하느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행함은? 죽은 행함이라는 거예요. 죽은 율법지킴. 죽은 도덕지킴. 거기에서 마음을 깨끗하게 해 버린다는 건 예수님께서 우리가 예레미야 31장인가요 거기에서 새계약 나오죠? 거기서 마음을 정하게 깨끗하게 해준다고 그래요.

33 그 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 줄 내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마음을 깨끗하게 해서 깨끗한 일을 하게 해준다는 게 아니라 내 법'성령을 부어' 그러죠?  하느님의 법'성령을 부어' 그렇게 해야 진짜 마음이 깨끗해지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보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러죠 온전하라 완전하라 그런단 말이에요. 하느님이 율법을 주시면서 항상 '완전' 을 요구하세요

바오로의 편지에도 항상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않으면 저주받는다고 그래요. 그리고 야고보도 다 지키다가 하나 어기면 다 어긴 거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완전을 항상 요구하세요 완전히 행하라. 그 완전이라는 건 마음까지도 지켜내야 완전이잖아요 그죠? 

그 마음밭 이 마음 이게 뚜리인 마음에서 행함이 나오는데  우리가 겉은, 행실은 근사하게 위장을 할 수 있고 죽는 날까지 흠없이 살 수 있어요  그런데 하느님은 그 뿌리 마음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 마음이 하느님이 보기에 옳다 선하다 라고 인정이 되지 않으면 다 죽는단 뜻이란 말이에요.

그 행실만을 가지고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 자꾸 가려고 하는 그 죽은 행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 죽은 행실에서 율법주의에서 건져내어 마음을 깨끗하게 한단 뜻이에요.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서 착한 일을 하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행실에서 구원해 낸단 뜻이라니까요  죽은 행실 율법주의에서 끄집어 낸다 라는 뜻이란 말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예요. 피를 이야기하지 않는 자들은 다 가짜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이 세상에 거짓 예언자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이 나와서 -지금도 많죠?  이게 지금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바가 그대로 지금 이제 진행이 되고 있는 거예요 나타나고 있다구요.

하느님의 백성은 이제 믿음이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선교자를 만나게 되어 있어요그래야 들음에서 믿음이 난다 라는 말이 성립이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많지 않다' 는 거예요

그러니까 피를 이야기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를 이야기하지 않는 그것으로 모든 설교를 결론내지 않는 그건 다 가짜입니다. 단언해서 말씀드릴게요. 신부님 강론(설교) 마지막에 이렇게 사세요 저렇게 사세요~ 뭐 합시다~ 이거 합시다~ 성숙하게 사는 법~ 뭐 거룩한 성도로 사는 법~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잘 사는 방법~ 이게 다 뭐예요?  법이죠?  이걸 율법이라 그래요. 여러분은 왜 설교(강론)를 듣고 율법으로 마칠라고 그래요? 

 그게 바오로가  편지에서 이야기한 너희가 어떻게 믿음에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마치려고 하느냐 가 그 말이예요.  자꾸 여기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울려고 법을 말해 달라는 거예요. 어떻게 사람이 법을 그 율법은 하느님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건데 교회에서도 그걸 듣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걸 해 주면 또 명쾌하다 그러죠?  예수에게는 관심이 없고 설교자 에게만 관심이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만 집착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의 이야기만 하면 믿지않는 사람들은 되게 불편해 해요. 

 요한묵시록에서 너 살았다고 하나 너는 죽었다고 그러죠  예수님이 그래요 '너 살았다고 하는데 넌 죽었다' 하느님이 어떻게 교회보고 죽었다 그래요?  그런데 그 밑으로 가면 뭐라 그러냐면 니가 온전한 행실 행실이 있다라고 너는 살았다라고 스스로들 평가하고 남들도 그렇게 너희를 평가해 주는데  그런데 예수님이 죽었대요. 

예수님이 뭐라 그러냐면 '그 죽은 교회에 진짜 산 자가 몇 명 있는데 그들은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 그래요. 그 옷이 뭐예요?   세마포 흰 옷이에요세마포 흰 옷이 뭐냐면 예수의 피에 빨은 옷이라고 그래요

에페소서 1장 4절부터 보면   4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모든게 만들어 지기 전에 하느님은 내 아들의 피로 모든 걸 흠없이 하겠다 그래요 그죠?   그럼 예수의 피가 빠진 상태의 모든 건 다 뭐죠?  흠 있는거죠  죽은 거예요 그게. 그 말은 '없음' 이란 뜻이에요. 하느님 앞에서의 죽음은 없음이에요 그런데  예수의 피로 내가 너희를   '존재' '있음' 으로 만들겠다가  하느님의 창조이전 계약이라면 그러니까 니들은 어떤 힘도 거기에 기여할 수 없고 재생 할 수 없다라는 걸  하느님이 죄의 개념 이라는 걸 끌어들여서 설명하는 거란 말이에요. 

 창조이전 계약이 있고 태초에 창조가 됐어요 계약이 먼저 있고. 그러면 아담과 하와는 지금 뭘로 온 거예요 이 세상에?  '죽은 자' 로 온 거예요. '흠 있는 자' 로 온거예요 그리고는 이들이 어떻게 사냐면 죽은 자의 행사를 하죠. '선악과' 를 따먹고 그런단 말이예요. 행사를 하고 어떻게 산 자가 되냐면 흠없는 한 짐승의 피로 말미암아 그 가죽으로 부끄러움을 덮어 '존재' 가 되는 걸, 창세 전 계약을 설명하는게 아담과 하와란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뭐라 그러냐면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다' 이 말은  예수의 피가 아니면 너희들은 존재일 수 없다 란 뜻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이 세상에서 나는 '없음 맞네요' 를 인정하고 가는 게 성도지 나는 이 정도로 이렇게 성숙하고 이렇게 '있음' 의 증거를 보이고 만 사람입니다 를 하느님 앞에 갖고 가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하느님은 죽었대는데 계속 죽은 자에 대한...여기 보면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피를 뿌리죠 그것도 어디에 뿌려요? 책에 뿌려요 그죠?  계약의 책 율법이에요. 피를 뿌린다는 건 이 피가 없으면 살지 못한다는 거죠? 그럼 율법이 뭐라는 거예요? 죽은 거라는 거예요. 

율법으론 살아날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그 율법이 신약에서는 산상수훈으로 오죠. 이건 더 못 지켜요. 어떻게 마음까지 지키냐구요. 그런데 이 산상수훈을 삶으로 실천해내는걸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잖아요 지금 개신교 교회와 천주교 성당에서. 그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 앞에서 온전할 수 없는가 를 드러내는 폭로용인데 역사는 끊임없이 그걸 지키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그랬죠?  어디다 버린 거예요 하느님이 예? 베드로는  내일 참수 당할 그 상황에서 감옥에서 쿨쿨 잠을 잤어요. 예수님은?  잠은 커녕 바들바들 떨면서 땀이 피가 될 때까지 '아버지 나 무서워요' 그러잖아요 그죠? 뭐냐구..이게...

그리고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런 유약한 그리고 하늘이 열린 게 아니라 온 세상에 흑암이 열렸네? 누가 더 난 거예요?  베드로 십자가에 거꾸로 달았는데도 '내가 어찌 우리 주님과 똑같은 모양으로 죽겠는가 나를 뒤집어 달라' ... 그랬대잖아요 전설에 의하면... 그런데 유독 예수님만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 이런 거 아니에요 ... 어디다 버린 거예요? 예수님을 하느님이...육신에다 버린 거예요

예수를 육신에다가 버려서 이걸 죽여버림으로 말미암아 베드로같은 사람들이 이 육의 죽음을 역사 속에서 경험하고 죽는 순간에도 하늘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그럴 수 있었던 거라구요. 우리의 그 모습을 위해 예수님이 자기의 육신에 버려졌다니깐요?

 

그런데 지금 이 육신을 갖고 뭘 하겠다고 난리를 치는게 성화론 아닙니까. 이거 예수님이 버려진 곳이라니까요 여기가.  여러분을 이렇게 육에 버려진 여러분을 건져내기 위해 예수가 십자가에서 그 육에 버려졌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벌벌 떨다가 죽은 거예요. 이 육은 사망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런데 하느님이신 그 분이 이 육에 버려져 가지고 이 육이 맞는 그 무시무시한 '사망' 을 경험하신 거예요. 그럼 이건 반드시 죽어야 할 것이라고 증명이 됐는데 이 육을 갖고 부활의 몸이 해야 할 일들을 하겠다고 그 난리를 치는거죠. 그래놓구는 열심히 그걸로 자기들의 점수로 매기는... 그러니 뭔 그리스도교가 있냐구요 지금......


'우리가 예수 죽인 자' 예요 맞죠?  내가 '없음' 인데 '없음' 이 '있음' 의 흉내를 내니까 예수가 죽은 거잖아요. 그 마귀가 바로 '나' 라니까요?    창조이전 계약의 현장에 마귀는 없었다구요. 왜? 창조이전이기 때문에 마귀가 아직 창조되기 전에 이미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얘는 몰라요. 이게 묵시의 폐쇄성이라고요. 우리도 모른다고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성령을 보내서 우리에게 눈과 귀를 열어서 창조이전 계약의 실체를 우리 몇 명에게만 알게 해주신 거예요 이렇게. 그래서 그들만 '아 내가 예수죽인 자 맞구나...' 를 알게 되고  '그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존재" 된 거 맞구나' 그렇게 내려가는 거예요. 

 

그 때 그 사람이 예수로 말미암고 예수를 위하여 살다가 영원히 사는 거지만 그건   그리고 예수께로 돌아가는 거란 말이에요 그 사람이 나왔던 원래의 자리로.. 그래서 창조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하잖아요 우리를 그죠? 선택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그럼 창세 전에도 이미 우리의 개체성 그 존재성은 이미 하늘에 차압당한 상태란 말이에요. 

창조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볼 때는. 그리고는 이 역사 속에서 열심히 개체성을 발휘해 봐라 라고 다시 그리스도 안으로 끌어당기는 거란 말이에요. 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존재' 일 수 밖에 없는가를. 그러니 점점 어렵다고 그러고 다 곁을 떠나가구.... 어렵다..어렵다.. 뭐가 어려워요 이게 복음이?  이것만큼 쉬운 게 어딨어요?

그러니까 히브리서 같은 것도 이렇게 보면 전혀 어려울 게 없어요  예수의 십자가와 피로 풀어내면 히브리서가 뭐가 어려워요. 다 그 얘기가 그 얘기지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냥 하기싫다 하기싫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구원하는 거라니깐요?  세례요한이 물로 줬던 세례는 모형이에요. 

십자가 성령세례의 모형.  니네들은 이렇게 빠져 죽어야 하는 죄인이다 라는 걸 확정짓는게 세례요한의 세례였단 말이에요.  십자가를 지기 전이니까. '니들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죽어 너희들에게 성령세례가 주어져야 된다 그래야 너희들이 영적으로 죽고 다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 지신 거란 말이에요. 

예수를 사랑하라니까 왜 자꾸 내가 사랑받을 자격을 챙길려고 하냐구요.  내 모습 이대로 예수님이 사랑해 주셨대니까  왜 내가 자꾸 어떻게 이런 걸 사랑해요 라고 오히려 예수님을 나무라고. 하느님이 깨끗하게 올바로 성실하게 살게 하시면 성실하게 사세요 열심히 사시라구요. 

그런데 때때로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여러분에게 확 펼쳐 보이거든 그 앞에서 절망하거나 '에잇 내가 이런 꼴로 어떻게 하느님 앞에 가' 그러고 목 매달고 죽으면 유다되는 거예요 내 죄는 내가 책임진다.  오늘날 성화론이 그거 아닙니까? 

하느님은 베드로를 사랑하신다니까요?  '제가 원래 이런 사람 맞잖아요.. 그러고 제가 하느님 사랑하는 건 하느님!이 아시잖아요' 하느님에게 사랑의 주도권 주체자 되심을 넘겨드리는 거 아니에요.. 뻔뻔스럽게. 저주와 욕한 다음에 하느님 앞에서 '아이~ 사랑해요~ 어차피 하느님이 날 사랑하게 만들거잖아요~'  이게 성도지  내가 저지른 죄는 내가 책임진다 그래갖고 그냥 확 가서 목매달아 죽어버리면 하느님은 그런 용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면목없이 그 분이 내미는 손을 꼬옥 잡는 거예요.

 

오늘 성체성혈 대축일을 보내면서 제2독서가 히브리서 9장 11절에서 15절 이지요?

우린 자꾸만 성경을 앞뒤 짤라먹기 때문에 참 말씀의 의미를 상실할 때가 많아요.

늦었지만 참고로 보세요. 살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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