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9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6 조회수2,470 추천수12 반대(0)

 

지난 화요일에 잠실 야구장엘 갔습니다. 두산과 SK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바보의 나눔에서 초대를 하였고, 교구청의 신부님들과 함께 갔습니다. 아쉽게도 경기는 3회를 끝으로 취소되었습니다.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야구는 규정상 취소된 경기의 기록과 결과는 모두 없어진다고 합니다. 홈런을 쳤던 선수는 아쉽지만, 자신의 기록에서 취소될 것입니다. 홈런을 맞았던 투수는 홈런을 맞았던 기록이 취소될 것입니다. 비록 경기의 기록은 취소되겠지만 경기장을 찾았던 관객들, 경기에 최선을 다했던 선수들의 열정은 기억될 것입니다.

 

저는 그날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을 보았습니다. 선수들이 등장하면 선수들을 위한 응원 노래가 있습니다. 팬들은 선수들을 위한 응원 노래를 모두 외우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도 소리를 높여 응원의 함성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위해서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내는 팬들이 있었습니다. 의무감으로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좋아서 일하는 사람이 더 열정적인 것 같습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모습에서는 의무감은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면서 감옥에 갇히는 것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고난과 고통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디모테오에게도 당부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뜨겁게 불태우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명동 거리에는 솜사탕을 파는 사람, 뽑기를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려한 색의 솜사탕이 되기 위해서, 설탕은 뜨거운 회전판에서 녹아야 합니다. 설탕이 녹지 않으면 저렇게 예쁜 솜사탕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뽑기도 그렇습니다. 뜨거운 불 위에서 설탕은 녹아야 하고, 여러 모양의 뽑기가 되기 위해서는 늘어진 판 위에서 쇠도장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부활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일어난다.’라는 뜻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고통에서 즐거움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는 부활의 의미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기에 불의한 죽임을 당한 이들을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구약성서의 마카베오기는 부활에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를 하는 어머니와 아이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티아티스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이방인들의 제사를 거부하고 순교를 합니다. 이 또한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죽음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부활의 신앙은 지금 이곳에서의 충실한 삶을 이야기합니다. ‘불신과 편견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민족과 계층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부활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으로 지금 이곳에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들이 사는 삶의 자리에서 증언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삶입니다. 우리 또한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뜻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우리가 죽은 후에 어찌 될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규범과 기준이 똑같이 적용되는지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규범과 기준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천으로 취소된 경기의 내용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된다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살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는 여전히 죽음의 문을 넘어 또 다른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의무감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하느님께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단 한 번 살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헌신은 의무감보다는 열정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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