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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늘나라 초대장을 받을 우리는 / 연중 제9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6 조회수1,879 추천수5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부활이 없다는 사두가이는 스승님, 어떤 이가 자식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후사를 일으켜야 한다.’라며 예수님께 당돌하게 여쭈었다. 그 구체적 질문이다.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그도 후사 없이 죽었고, 셋째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일곱 모두 후사가 없었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어쩜 이 같은 맥락으로 많은 이가 생각한다. ‘우리가 부활하면 죽을 때의 나이로 부활할까, 아니면 전성기 나이의 모습일까?’ 몸의 부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일반적이다. 저 세상에서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또 다른 계획이 있다는 게다. 부활은 인간의 지식에 속하지 않는 깨달음이며 은총이란다. 순수함으로 다가갈 때에만 주어지는 은총이리라. 부활은 소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일 것이다. 전혀 다른 생명으로 바뀌는 것일 게다. 그러기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할 게다.

 

사실 사두가이는 유다의 지식층 중에서도 중심격인 위치에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지적 우월감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 없이 죽은 형을 위해 여섯 동생이 그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면 부활 후가 어떤지의 질문이다. 질문 자체가 비논리적이며 유치하다. 이렇게 부활이 없다는 그 불손함에도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 뚜렷한 가르침을 남기셨다. 그분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세상 질서와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단다. 흔히 하느님은 이런 분이시고 그분 나라는 이렇다.’라는 우리 생각은 시간의 흐름에 갇힌 인간의 상상일 뿐이라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다음이 아닌, 죽음을 건너 넘은 부활한 삶을 이야기하신다. 삶의 끝에는 죽음이 없는 부활만 있음을 말씀하신다.

 

사두가이들이 이런 엉뚱한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그게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일침을 한다.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나. 그렇다. 죽은 다음의 세계는 우리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그렇게 질문하고 답한다. 예수님께서 또 이르셨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꼭 같아진다.” 정말 그럴 게다. 성경을 잘 모르면 오해하기가 십상일 게다. 억지 부리고, 고집을 피우기도 하리라.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 빈 수레는 요란하다. 사두가이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깨달아 지금 이 순간 진지한 삶을 누려야 할 게다. 어쩜 성모님과 같이 겸손과 순명의 삶을.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에게도 부활이라는 하늘나라의 초대장을 정확히 주시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사두가이,부활,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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