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준 것만큼 되돌아오는 그 사랑 / 연중 제9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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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8-06-07 | 조회수1,89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때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계명 가운데에서 가장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분께서 곧장 이르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주 너의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해 그분을 사랑해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몸처럼 사랑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정녕 없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에 대한 부모 사랑을 ‘내리사랑’이란다. 이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자식이 무슨 조건을 갖추었다기보다 당신 자식이기에. 그래서 이 사랑을 도덕적 의무로 규정할 수 없다. 부모로서의 본능이기에 굳이 의무로 정할 필요야. 허나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려면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게다. 하느님의 우리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건 우리가 무슨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었다는 게 아닌, 우리가 당신의 자녀이기에 그렇다. 하느님의 인간사랑은 억제할 수 없는 그분의 본능일 게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분을 정녕 사랑하려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사랑은 단순 감정도, 값싼 고백도 아닌, 본능적 욕망과도 다르다. 온 마음과 목숨, 정신과 힘으로 체험한 삶이다. 그래서 사랑은 하느님의 또 다른 얼굴이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참된 사랑만이 그분을 만날 수 있기에. 그러나 감동이 생략된 형식만으로는 참으로 삭막한 일 아니랴! 우리가 온몸으로 애정을 쏟는다고 말만 앞세운 채 뒤로는 메마르다면,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으리라. 정말 온 정성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은 그렇게 감동을 꼭 주라는 거다. 누구 한 사람에게도 그런 감동을 준다면 자신의 삶이 분명 달라질 게다. 그냥 준 그 감동은, 그렇게 준 것만큼 꼭 되돌아오기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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