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7 조회수2,973 추천수11 반대(0)

 

내일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며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사제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하고, 사제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정하였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사제 성화의 날을 맞이하면서 사제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였습니다.

첫째, 사제들의 가난에 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파라오처럼 살면서 가난과 청빈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입으로 가난을 말하면서 사치의 삶을 사는 것은 위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자산을 마치 개인 것인 양 투명하지 않게 사용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동입니다. 가난의 결핍이 사제를 어려움에 빠트립니다. 가난은 사제를 양육하는 어머니요, 세상의 정신으로부터 지켜주는 보루입니다.”

둘째, 사제들의 이중생활에 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성직자는 단순하고 일관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두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참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이중생활입니다. 이중생활을 하는 목자들은 교회 안에 있는 상처입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에게 회칠한 무덤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도로서 하느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연민으로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는 목자의 최후입니다. 사제들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전에 먼저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영적 세속성에 젖어 들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이들에게 영적 세속성은 사회적, 정치적 쟁취에 대한 환상, 또는 실질적인 일 처리 능력에 대한 자만, 또는 자립과 자아실현에 대한 집착 뒤에 감춰져 있습니다. 이는 또한 보이는 것에 관한 관심, 다시 말해 여행, 회합, 회식, 연회 등으로 가득한 바쁜 사회생활로 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사제는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무일도와 말씀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제 성화의 날이면 생각나는 기억이 있습니다. 2002년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지금은 의정부교구인 적성 성당에 있었습니다. 지구장 신부님께서 제게 경기지역 사제들을 대상으로 체험사례 발표를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부담도 되고, 자격도 없어서 거절하였습니다. 지구장 신부님께서는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하셨고, 강사료도 듬뿍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서 내가 생각하는 사목이라는 주제로 체험사례 발표를 하였습니다. 다행히 신부님들은 저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셨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교구청에도 알려졌고, 저는 다음 인사이동 때는 교구 사목국에서 교육담당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때 나누었던 저의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첫째, 사목이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점심을 먹고 나서, 산보를 가는 것이 유일한 운동입니다. 점심을 먹고 산보를 가려고 사제관을 나서는데 비가 올 듯 말듯 하늘이 잔뜩 흐렸습니다.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서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진성이가 성당으로 왔습니다. 진성이는 성당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어린이인데 달리기를 잘합니다. "진성아! 산보갈래!" 하니까 진성이는 가방을 교육관에 벗어놓고 곧 저를 따라나섭니다.

 

우리는 큰 찻길을 건너, 비가 온 뒤에 물이 많아진 개울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을 지나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장날이 아니라서 시장은 한산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는 진성이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다시 큰길을 건너 진성이가 다니는 학교엘 갔습니다. 진성이가 우산을 교실에 놓고 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오랜만에 초등학교 교실엘 갔습니다. 우리는 다시 개울을 건너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놀다가, 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평소보다 길게 산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제관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진성이가 말하더군요. "신부님 근데 산보는 어디에 있어요?" 저는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으잉! 다시 산보를 가자는 말인가! 진성이는 "산보"라는 장소가 어디에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문득, 하느님 앞에 저 자신을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다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느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던 것 같습니다. 사목이라는 것도, 어쩌면 어려운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미 사제가 되었으면 어떤 사목자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지, 어떤 사목자가 교우들을 위해서 봉사하는지 다 배웠고,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배운 것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둘째, 사목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교우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사제관으로 들어가려는데 건회와 진성이가 성당 문으로 뛰어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왜 뛰어올까 생각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두 친구는 집에서 성당까지 뛰어왔답니다. 두 아이의 집은 장현리이고, 장현리는 차로도 15분은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아이들은 성당 버스를 놓쳤고, 그래서 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3시간 30분을 뛰어서 성당에 도착한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찡해집니다.

뛰다 넘어지고, 그리고 또 뛰고 그렇게 성당엘 온 아이들을 생각하니, 조금만 불편해도 짜증을 내는 저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건회는 현지라는 동생이 있고, 진성이는 민정이라는 누나가 있습니다. 현지와 민정이는 뛸 수가 없어서 장현리에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집에서 성당 생각을 하리라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건회와 진성이와 성당차로 장현리 건회의 집으로 갔습니다. 두 아이가 저를 보고 너무 반가워합니다. 우리는 함께 성당으로 왔고, 아이들은 230분 군종미사 참례를 하였습니다. 주님의 수난 성지 주일에, 두 아이가 그렇게 저에게 감동을 줍니다. 주님의 수난 성지 주일에, 두 아이가 성지 주일의 참 의미를 알려줍니다.

 

어느덧, 주님께 모욕을 주고 어느덧, 주님을 모른 체하고 어느덧,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사목이란 한 번에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사목이란 논에 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모를 심었다고 농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 관심과 노력 그리고 반성을 통해서 열매를 맺어 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목의 핵심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사목이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