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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천사가 되는 길, 사탄이 되는 길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9 조회수3,778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10주일


<천사가 되는 길, 사탄이 되는 길>



복음: 마르 3,20-35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다


ROBBIA, Luca della 작, (1446)



 

   

저희 어머니는 고아로 자라오셨습니다. 전쟁 직후, 여자아이가 고아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 가난한 집에 맡겨졌지만 그 집에서마저 키울 능력이 없어 다른 부잣집에 맡겨졌습니다. 그 부잣집에서는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고 집안일을 돕는 하인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그 집 주인의 자녀가 잘못해도 항상 혼나야했다고 합니다. 물론 일을 한 것에 대한 보수는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에 감사해야했습니다. 참다못한 어머니는 18살 되던 해에 그 집에서 도망 나와 물어물어 처음 자신을 받아주었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집에서는 공부도 안 시키고 식모처럼 부려먹기만 한 그 사람들을 고소하겠다고 했지만, 그 집에서도 살아가는 것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 집은 워낙 가난해서 역시 일만 죽도로 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 집 여동생이 방안에서 놀고만 있어서 청소를 거들어달라고 했다가 그 이야기가 어머니의 귀에 들어갔고 또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일만 죽도록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딸을 일 시키려 했다는 비난과 함께 오랜 시간 당하는 구타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집에서도 자녀로 취급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살 힘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못된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약을 타서 가족들을 다 죽이고 자신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바다를 보며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바다 위로 예수님이 걸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 예수님, 빠지시면 안 되는데...’

갑자기 예수님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온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어머니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 당신에게 오시는 것을 향해 팔을 벌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시던 길을 꺾어 나환자들이 사는 동네로 걸아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나환자들이 사는 바로 그 동네에서 처음 어머니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첫 기억은 산을 헤맬 때 무서운 모습의 나환자가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 데려다 준 일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나환자들도 사는데...’

예수님은 아마도 온 몸이 허물어져가서 가족은 물론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나환자들도 잘 살아가고 있으니 너도 그 사람들을 보고 힘을 얻어 잘 살아보아라.”하고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네가 가장 무서워했던 나환자가 너를 도와주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세상엔 너 혼자가 아니다.” 그렇게 마음 안에서 악한 생각이 사라지고 다시 돌아와 열심히 살았고 그 집은 이런저런 좋은 일이 겹치며 동네의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집의 호적에 딸로 등록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는데 율법학자들이 와서 예수님께서 마귀 들렸다고 말합니다. 혹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평가합니다. 예수님은 한 나라도 갈라져서 싸우면 망하게 되는데 어떻게 악력이 악령을 쫓아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계셨습니다. 이에 그들을 보시며 당신을 모독하는 것은 참고 용서해 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성령을 악령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랑을 믿어야 사람을 믿게 되는데, 성령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믿지 못하면 예수님도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더라도 사랑은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어머니의 어둠을 몰아내셨습니다.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낀 저희 어머니 속에는 어둠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어둠을 밝혀주는 것은 빛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예수님의 그 호의까지 어둠으로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를 이 꼴로 만들어놓고, 나에게 오시다가 다른 곳으로 가시다니!’

그러면 분노가 더 치밀어 올랐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어머니는 가리옷 유다처럼 영원히 어둠으로 가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령의 좋은 빛은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누구든 자신 안에 있는 것을 기준으로 다른 것을 보고 해석합니다. 개는 아름다움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 꽃이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 안에 아름다움이 넣어져있기 때문에 꽃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귀가 되면 개와 같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습니다. 온통 어둠이라면 아주 작은 빛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태양을 보기 싫어서 땅 속으로 들어가 아예 눈이 퇴화해버린 지렁이와 같은 것들이나 동굴에서 자라 눈이 사라져버린 물고기들을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이것들은 이제 빛을 아예 분별할 수 없게 되어버려 빛 속에서 사나 어둠 속에서 사나 큰 차이가 없게 돼 버렸습니다. 오히려 빛 속에서 살면 자신들의 상태가 보이기 때문에 어둠속으로만 들어가게 됩니다. 어둠 속에선 자신들이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예수님께서 독사들, 혹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시는 이유는 이미 본성이 그렇게 빛을 볼 수 없는 사탄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어둠으로 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도 어둠인 것입니다. 성령은 사랑 중의 사랑이기 때문에 태양의 빛과 같습니다. 태양의 빛을 보며 어둠이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좋아질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눈을 감아버려 퇴화시켜 버린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이들에겐 아무리 큰 사랑의 빛을 비추어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미리내 천주성삼 수도회 임언기 신부님에게 오래 전 한 임종직전 냉담자에게 병자성사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 가보니 이미 배에 복수가 차 있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냉담한 것에 대한 고해성사를 들으려고 하는데 입도 꿈쩍 않는 것이었습니다.

말을 하기 힘든가보다 싶어서 여러 죄들을 신부님이 열거하면 해당하는 것에 그냥 고개만 끄덕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꿈쩍을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 가려고 하는데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더랍니다.

나 죄 없어!”

 

사실 사탄은 하느님의 사랑도 미움의 행위로 봅니다. 사탄은 하느님이 자신들을 미워하고 인간들을 더 사랑한 것에 대해 반기를 든 천사이고 그런 집단입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좋게 보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옥은 하느님에 대한 저주로 가득합니다. 만약 그 중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믿는 이가 있다면 하느님은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오실 것이지만 그들의 눈은 이미 시각을 잃어서 태양을 보더라도 빛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아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을 발견하게 되면 천사의 눈을 지닌 것이고 모든 것 안에서 부정적인 것만 발견하면 사탄이 된 것입니다. 아마 가리옷 유다도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상에서 빵을 적셔 주실 때 나에게 아부하는 건가? 십자가의 고통은 싫은가보지? 나에게 무릎 꿇으면 팔아넘기지 않을 수도 있지...’ 라며 예수님의 마지막 사랑의 행위까지 어둠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래서 스스로 이렇게 사탄이 되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 안에 선한 것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야 사랑을 받아들이고 더 빛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만을 주시려 하시지 아프게 하시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의사가 칼을 들고 있다고 몸을 움츠려서는 안 됩니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망가지의 주인이 자신의 꼬리를 잡고 아프게 한다고 더 절벽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사랑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본래 아프게 합니다. 이 아픔 때문에 선한 것이 악한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됩니다. 내 안에 선한 생각이 없으면 선한 것이 보이지 않고 그러면 점점 더 사탄이 되어갑니다. 아주 작은 것 안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우리 안에 빛이 조금씩 커지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기도하러 앉았다면 한두 가지 정도는 감사기도를 꼭 바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작은 것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보았다면 어떤 죄든 용서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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