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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6.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10 조회수2,29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6월 10일

연중 제10주일

제1독서 창세 3,9-15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제2독서 2코린 4,13─5,1

형제 여러분,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

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17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5,1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복음 마르 3,20-3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

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

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신부님,

 꼭 성당에 나가서 미사를 해야 합니까?

미사를 가면 얼마나 지루한지 모릅니다.

한 시간 동안 의미 없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미사가 의미 없어 보이고

시간 아깝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꼭 의미 없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일까요?
연애할 때를 떠올려보셨으면 합니다.

데이트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셨습니까?

한 시간? 아마 딱 한 시간만 한다고 하면

이상한 연인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누구도 데이트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더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무조건 좋다고 하시지요.

만날 때마다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별 의미 없는 말을 나눈다고 할지라도

그저 함께 있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이 개그맨처럼 웃긴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또 멋지고

아름답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얼굴만 바라봐도 좋습니다.
연애하는 것이 의미 없고

시간 낭비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함께 하면서 사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만나는 미사

시간이 왜 의미 없고

시간 낭비처럼 생각될까요?

 함께 사랑을 키우는 시간으로

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바라본다면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성당 가서 미사할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의 유혹은 어떤 것일까요?

사탄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선한 일을 하지 못하게

협박하지 않습니다.

육체적 감각을 괴롭히고 고문하면서

 우리의 육체를 때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랑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

사랑을 함께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가장

크고 유일한 유혹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셨고,

친척들이 붙잡으러 다녔고,

원수들이 이러한 말로

모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인이고

마귀 들린 자다!”

(요한 8,48 참조)
이 역시 사탄의 인간을 향한

 유혹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하는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사람들은

구원의 길로 가고 있었지요.

이 길로 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서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마르 3,22)면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던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모두 똑같기 때문에

 절대로 분리되어 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을 합쳐서 유혹으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도록 합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사랑만을

바라보다보니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주님의 사랑은 늘 뒷전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주님의 사랑과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님의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뱀의 유혹이 단 한 번으로

끝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지금도 그 유혹은 계속되면서

 주님과의 거리를

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되는 유혹에

넘어가면서 이제 감히

주님을 바라볼 수도 없다고

낙심합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라고 하시지요.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2코린 4,13)
이 믿음을 통해 우리는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2코린 4,16 참조)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담하지 않고 기쁨 안에서

 주님과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이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게 하는 길이며,

동시에 주님의 가족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불행으로 이끄는 유혹은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라는 말이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성모님의 사랑 그리고 믿음을 배웁니다.

"내일을 준비하며"

(‘좋은 생각’ 중에서)

이탈리아 작가이자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는 스물넷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옮겨졌다.

 당시 그와 같은 열차 객실에 있던

마흔다섯 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네 명 뿐이었다.
그날의 경험을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으로 펴낸 그는 아우슈비츠로

떠나기 전날 밤 모습을 이렇게 썼다.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하는 사람, 일부러

술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가는 동안

 먹을 음식을 밤새워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새벽이 되자 바람에 말리려고

널어 둔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뒤덮었다.

기저귀, 장난감, 그 밖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잘한

물건도 빠지지 않았다.

당신도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비록 내일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오늘 자식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겠는가?”
그들은 두려움을 떨쳐 내고

내일을 준비하며 옷을 빨고

젖을 먹였다.

어머니의 사랑은

수용소 안에서도 꽃을 피웠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내일을 준비하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어제 강의를 했던 서울대교구 시흥5동 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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