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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물과 남편 (요한 4.1-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11 조회수3,386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우물과 남편

(요한 4.1-19)

1 예수께서 요한보다 더 많은 제자를 얻으시고 세례를 베푸신다는 소문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귀에 들어 갔다. 2 ( 사실은 예수께서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베푼 것이었다. ) 3 예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유다를 떠나 다시 갈릴래아로 가기로 하셨는데 4 그 곳으로 가자면 사마리아를 거쳐야만 하였다. 5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방의 시카르라는 동네에 이르셨다. 이 동네는 옛 날에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인데 6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가 앉으셨다.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와 있었다. 7 마침 그 때에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물을 좀 달라고 청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시내에 들어 가고 없었다. 9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10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시자 11 그 여자는 '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다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그 샘솟는 물을 떠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12 이 우물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마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13 예수께서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 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하셨다. 15 이 말씀을 듣고 그 여자는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16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셨다. 17 그 여자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남편이 없다는 말은 숨김없는 말이다. 18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네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19 그랬더니 그 여자는 '과연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성화(聖畵) - 사마리아의 여인

 

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대단히 많은 분량의 메세지가 들어있어요 자 이 본문이 그렇게 그리스도교에 주옥같은 교리들로 가득 차있어요 우선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어떠한 내용 전개속에 들어있는 지를 확인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장 말미에서 예수님은 나타나엘에게 人子위로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에 使者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볼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2장부터 하늘이 열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표적들이 등장하잖아요 총 일곱개의 표적을 통해서 성경은 어떻게 하늘이 열리고 땅과 하늘이 연합이 되는지 화해하게 되는지를 보여줘요

그래서 2장부터 12장까지를 표적들에 이라고 부른다 그랬잖아요 예수님께서 하늘이 열리게 되는 그 사건을 가리키는 표적을 행하시면 사람들은 그 표적을 이 땅의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고 주님은 그 표적이 가리키는 바를 다시 천절하게 설명해 주는 식으로 표적들에 책이 구성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 표적들에 책의 첫번째 표적이 뭐라 그랬어요? 가나의 혼인잔치 표적이였잖아요 주님께서 가나에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 그 가나에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그 기적은 형식만 남은 죽은 종교인 그 유대교는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와 같다라는 것을 지적하는 그런 표적이였어요 바로 그 가나에 혼인잔치 표적을 오해하는 인물로 처음 등장하는 사람이 니고데모인 거에요 그리고 두번째 사람이 바로 사마리아 여인인 것입니다

두번째 인물로 등장하는 사람이 사마리아 여인인데요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어요 니고데모와 사마리아의 여인 모두 복음이 필요한 사람의 표본으로 등장을 하는 건데 니고데모가 구원을 받지 않아도 될만큼 높이 올라갈 사람은 없다라는 그런 진리를 나타내는 표본이라면 사마리아여인은 누구라도 구원을 받지 못할만큼 밑으로 떨어진 사람은 없다라는 진리를 나타내는 표본인 거에요 완전히 극과 극이죠 오직 주님에 의해서만 구원이 주어지고 그 은혜를 받을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인간도 없고 그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도 없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에요

 

니고데모와 사마리아의 여인에 이야기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은 정말 극과 극에 차이를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이에요 니고데모는 유대인이였죠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인들이 개처럼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사인이였어요 반면에 사마리아 여인은 어떤 종교적 파당에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는 정치인이였죠 산헤드린 공회원, 국회위원이였다 말이에요. 사마리아 여인은 어떤 지위도 갖고 있지 않았어요 니고데모는 대단한 학자였습니다 유대인에 선생이였지요 사마리아 여인은 교육을 받지 못한 무식한 여자였어요 어떻게 아냐구요 당시에 여자들은 교육의 혜택을 전혀 못받았단 말입니다 이렇게 대조시키는 거에요

니고데모는 도덕적으로 높은 지경에 있었어요 그죠 사마리아의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 치우고 또다른 남자와 남편이 아닌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 부도덕한 여자입니다 니고데모는 이름이 밝혀졌어요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은 이름도 없어요 그 여인에 이름이 누군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리고 니고데모는 남자였고 사마리아 여인은 당시 인구계수에도 들지 않았던 여자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자기 평판을 보호하기위해서 밤에 몰래 찾아왔는가 하면 이 사마리아 여인은 지킬 평판도 없었던 그런 여자였어요 성경은 이렇게 엄청난 양 극에 대조를 가진 사람들을 등장기켜서 이 세상 어느누구도 은혜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은혜를 받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할 사람이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 결론인 442절에서 예수는 세상의 구세주다 라고 이렇게 결론을 맺는 거에요 예수는 부자들만의 구세주가 아니고 예수는 똑똑한 사람들만의 구세주도 아니고 예수는 선민이라 자처하는 유대인들만의 구세주도 아니라 세상에 구세주라는 것이죠 그렇게 많은 차이가 있는 두 사람이지만 무엇보다도 커다란 두 사람간의 차이는 한 사람은 표적을 보고 자신에 지식을 근거로 주님을 찾아왔다는 거구요 한 사람은 주님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 분이 무엇을 하시는지 무엇을 주시는지도 모르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찾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큰 차이인 거에요

성경은 바로 그 차이를 이용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인간측에 지식이나 노력이나 능력을 근거로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은혜에 의해서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거에요 요한복음 지금 1장부터 계속해서 하느님 은혜를 강조하고 있어요 구원은 우리 인간측에서 찾아감으로 주어지는게 아니에요 그거는 세상 종교들이죠 모든 세상 종교는 사람들이 신을 찾아가는 식으로 되어 있지만 리스도교만은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오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 구원은 하느님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분에 백성들에게 찾아가셔서 그 백성들에 눈과 귀를 열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영생을 부어주심으로 주어지는 거에요

이사야서 13절 보세요 3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

타락한 인간은 하느님 은혜가, 복이 떠난 인간은 절대 하늘의 것을 인식하거나 깨달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어요 하느님은 그들을 나귀나 소보다도 못한 인간이라고 지금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람에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발견할때 개만도 못한 놈, 짐승만도 못한 놈 이라는 욕을 하는데 그거는 짐승을 모독하는 행위래요 왠줄 아세요 이사야서 13절에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 니들은 모른다라고 그래서 하느님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개 되지 보다 못하게 여기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지 마음대로 살은 그 더러운 사람들을 짐승에게 비교하는건 짐승을 모독하는 행위래요 대단히 기분나쁘죠 사실입니다

로마서 310-14절 보세요 10 성서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올바른 사람은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하느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비뚤어져 쓸모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며 그들의 혀는 거짓을 말하고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흐르니 14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하다.

12절에 '삐뚜러져'라는 단어는요 길을 벗어나다 라는 뜻이에요 길을 벗어나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에 복을 상실한 이후에 하나같이 다 길을 벗어난 상태가 되었다 라는 거에요

그래서 구약성경에 헬라어 번역본인 70인 역에서는요 그 '삐뚜러지다' '엘클레오'라는 그 단어를 139회나 사용을 해서 인간들이 어떻게 얼마나 길을 벗어나 있는지를 보여준다구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다 길을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찾아서 돌아올 수 없다라는 거에요 이사야서 53장에 그러한 인간의 상황을 잘 표현해 주는 구절이 있죠

536절 보세요 6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 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인류에 역사가 시작되면서 인류는요 그들 가슴에 뻥 뚫린 공허를 매울 길을 찾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한 노력을 동양에서는 라고 불렀어요 가 무슨 짜죠 길도자에요 길을 찾으려고 애를 썼딴 말입니다 사람들이요 서양에서는 그거를 철학이라고 부르죠 그러나 그들이 길을 발견했나요? 못했습니다. ? 모든 사람이 다 치우쳐 각기 제길로 갔거든요 길을 못찾어요 인간 스스로 누구도 그 공허를 메울 길을 찾지 못했어요 그 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이성에 한계 밖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에 존재를 증명해 보려고 했고 자신들 힘으로 그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부단한 노력들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것들이 선행체계 지식체계 이런 것이죠 종교 이데올로기 학문 이런 것들이요 과학 문명, 그렇다면 인간들이 그토록 찾아헤매던 는 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요한복음146절에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나오잖아요 이 길이 바로 인 것입니다 여러분 뭐 道人 닦는다 이런 말이 대단한 말인거 같죠 道家思想에서 말하는 는 바로 이 도를 찾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 도가 뭔지를 몰랐기 때문에 영뚱하게 찾아간 것이죠 그러나 모든 인간들은 바로 이 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예수 길이신 도이신 예수가 찾아온 방법이 아니면 절대 인간이 찾아갈 수가 없다니깐요 그래서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 이야기와 사마리아 여인에 이야기를 통해서 바로 그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는 거에요 그렇게 길이신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그에 마음속에 새로운 영을 부어주실때에 인간은 비로소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것 밖에 것들을 인식할 수 있게 되죠 그것을 뭐라고 불러요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무식하고 부도덕한 사마리아 여인이 나중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돌아가서 부끄러움도 다 잊은채 메시아를 전하게 되는 그런 장면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구원은 그런 것입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도 않았던 어떤 자에게 전혀 불가능했던 어떤 자에게 길이신 도이신 예수께서 찾아오셔서 그 마음을 뚫고 들어가버린거 그래서 그 선물이 너무 소중해서 이 세상에서 자기가 의지하고 있던 것을 버려두고 나가서 그 선물을 자랑하는거, 구원은 그런 것입니다 참 안타깝게도 그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에요 오늘날에 교회는 그 뒤에 뭐가 이렇게 붙기를 바라죠 添言되기를 바란다구요 뭐가 붙기를 바라죠 그렇게 구원을 해줬더니 사마리아 여인이 때부자가 되었더라 내지는 그 여자 팔자가 확 피었더라 그 다음부터 만사형통이 되었더라 절대 병도 안걸리더라 이런 이야기가 붙기를 바란다니깐요 그러나 성경은 이 아름답고 순결한 복음뒤에 그런 유치한 것들을 절대 붙이지 않아요 그리스도교는 그런거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12-14절보세요 12 우리가 받은 성령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그 은총의 선물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이 가르쳐 주는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14 그러나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주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해서 고단하게 사마리아로 가셨던 거에요 그 여인에 처지나 상황을 바꿔주러 가신거 아닙니다. 녀의 눈과 귀를 열어 永生을 주러 가신 거에요

고린도후서 104-6절 보세요 4 우리는 세속의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하느님의 강한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이론을 무찔러 버리고 5 하느님을 아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오만을 쳐부수며 어떠한 계략이든지 다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 6 그리고 여러분이 완전히 순종하게 될 때에는 모든 불순종을 처벌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타락한 이후로 하느님을 대적하여 일어난 인간의 모든 지식체계와 선행체계를 박살내시고 강력을 파하는 그런 힘으로 오시는 거에요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 품을 떠나 하느님에 복과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반대되는 어떤 것들을 쌓아서 도를 찾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도를 절대 발견할 수 없었어요.

사람이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난다라는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납니까? 어떻게 사람이 물위를 걸어요 만뉴인력의 법칙은 어디간거에요 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물고기 2마리하고 보리빵 다섯개로 2만명이 넘는 사람을 먹입니까? 이건 질량 불변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도 완전히 무시된거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믿어요 바보같이.

어떻게 그걸 믿게 된 거에요 눈과 귀가 열려서 이제 신령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것 신기하지 않아요? 저같은 사람은 굉장한 회의론자였거든요 모든것을 의심해보는 성경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걸 믿고 있다니 저는 그게 기적이에요 무슨 다른 기적이 뭐가 필요해요? 암덩어리 하나 떨어져 나가는게 그게 무슨 기적이에요? 저는 제가 그걸 믿고 있고 그리고 제가 그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희망하며 그분에 다리를 꼭 붙들고 있다라는 이것보다 큰 기적을 저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여러분 실체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을 하고 자각을 하셨다면 그게 아마 기적일 걸요. 어떻게 내가 하느님을 알게 되었을까 어떻게 내가 죄와 허물로 죽어있던 무덤의 자리에서 무덤을 열고 밖으로 튀어 나왔을까? 그것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있어요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허락하신 것이 바로 그 엄청난 어마어마한 선물인 것입니다. 자 여전히 각기 제길로 가고 있는 세상에 지식인들은 코웃음도 치지 않는 그러한 를 따라 우리는 묵묵히, 그러나 기쁘게 하느님 나라로 걸어갈 수 있게 된 거에요 이제 를 찾았으니까 아니 가 찾아오셨으니까 사마리아 여인에 이야기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

 

 

성경은 요한복음 3장에서 유대교에 최고봉에 인물로 니고데모를 등장시키고 4장에서 시나이산 모세계약체계의 최하 골짜기인 사마리아 여인을 등장시켜서 구원에는 인간의 어떤 조건과 자격과 열심도 보태질 수 없고 또 그러한 것들로 방해되어질 수도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구원에 길은 인간 측에서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길이신 예수가 찾아오셔야 하는 은혜에 선물이라는 것을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러한 구조 속에 들어있다 라는것을 잘 기억하시고 1절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먼저 1절부터 3절까지 한번 읽어 보죠 1 예수께서 요한보다 더 많은 제자를 얻으시고 세례를 베푸신다는 소문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귀에 들어 갔다. 2 -사실은 예수께서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베푼 것이었다. - 3 예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유다를 떠나 다시 갈릴래아로 가기로 하셨는데 4 그 곳으로 가자면 사마리아를 거쳐야만 하였다.

요한복음이 얼마나 치밀한 논리를 갖고 전개가 되는지 보세요 3장 말미에서 세례자요한이 그분은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한다라는 말로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인 십자가에 원리에 대해서 선포를 했죠 기억나시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루어지는게 예수님에 커지심이였잖아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게 예수님에 커지심이였단 말입니다 그가 예수님에 그 커지심과 관계된 자로서 이 땅에서 보여준 것이 바로 그에 작아짐, 순교였어요 자기가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예수님도 누군가에 커짐을 위해 계속 작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요 잘 이해하셔야 되요 예수님이 인기가 세례요한보다 높아지자 예수님은 황급히 그 높아짐에 장소에서 떠나신다구요 요한복음을 보면 계속해서 예수님은 그 인기가 높아지는 자리에서 계속 떠나시죠? 도망가신다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작아짐으로 누가 커지게 되요? 성도와 하느님이 커지게 되는 거죠 예수님에 작아짐이 극도에 달한 곳이 어디에요 십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하느님은 그걸 예수님에 커짐이라고 여겨주신다니깐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게 나의 옛 사람을 죽이고 나에 고집, 원하는 성품, 이거 죽여가는게 뭐에요 나에 거룩입니다 하느님에 성품을 문득 문득 내 삶 속에서 들어내는거 그걸 하느님에 영광을 드러낸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삶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십자가가 완전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란 말입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의 여인 / 두초

46절을 보시면 6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가 앉으셨다. 때는 이미 정오(6)에 가까와 있었다.

너무 피곤해갖고 우물곁에 털썩 주저앉았다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6시에 우리시간으로는 낮 열두시에요 육시에 물을 길러 나올 자기에 백성을 만나시기 위해 피곤하여 우물가에 털썩 주저 앉으셔야 할 만큼 아주 바쁘게 그 길을 가신 거에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돼지 취급했었어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유다에서 갈릴리아로 갈일이 있으면 요르단강 동편으로 이렇게 건너가서 상당히 먼 거리를 돌아갔어요 유다땅이 여기있고 갈릴리가 여기있고 사마리아가 가운데 있어요 여기가 요르단강입니다.하여튼 유다에서 갈릴리아로 갈래면 3일이면 가는데 요르단강 동편으로 가갖고 돌아가면 6일이 걸려요 그런데도 일루 안갔다니깐요 꼴통들이.

그들을 개 돼지 취급했다구요 그 이유는 잘 아시죠? BC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아시리아한테 망했죠 그런데 아시리아는 혼합정책을 쓰던 나라였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사마리아에 살던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전부 아시리아로 끌고 가고 그 사마리아 땅에는 아시리아 사람들 그리고 또 딴 지방 사람들을 데려다가 살게 했단 말입니다

 

열왕기하에 나와유 볼까요 1722절부터 22 이스라엘 백성은 여로보암이 지은 온갖 죄에 빠져 그 죄를 버리지 못하다가, 23 마침내 야훼 앞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시켜서 말씀하셨던 대로 된 것이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고국을 등지고 아시리아로 사로잡혀 가서 이날까지 거기에 붙잡혀 있다. 24 아시리아 왕은 바빌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사마리아 성읍들에 이주시켜 그들로 하여금 그 곳에서 자리 잡고 살게 하였다 

이렇게 혈통과 종교가 섞여 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인들에게는 이방인들보다 더 못난 사람들로 여겨졌던 거에요 그들은 북 이스라엘이 섬겼던 그 하느님과 우상을 합해서 사마리아 교회 는 이상한 종교까지 만들었고 그래도 이름은 하느님이라고 또 불렀어요 그러니까 남유다 사람들이 절대 그 사람들을 인정할 수가 없는 거에요 어떤 면으로든 그러니까 아예 그 땅을 밟지도 않았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어요 유대인들은 혈통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남유다 사람들은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혈통을 잘 지켰다구요 더 의기양양했죠. 우리는 지켰는데 니네들은 왜 못지켰어 이렇게 되는 거죠 오죽하면은 남유다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할때요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신들도 돕겠다고 나섰었는데 남유다 사람들이 거부했어요 이 개 돼지들이 이 성전을 짓는데 도와준다는건 말이안된다 그래서 거부를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화가 났죠 그래서 방해를 했어요 오히려 성전짓는데다가 부정한 시체들을 막 깔아놓기도 하고,건축재료를 훔쳐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실때 쯤에는 사마리아 사람들하고 유다사람들하고는 원수였어요 골은 깊어질대로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유다사람들이 만일 사마리아 사람들을 자기 집에 들이잖아요 그러면 법으로 그 집 자식을 노예로 삼을 수 있었어요 무섭죠? 사마리아 사람을 내 집에서 하루 재우면 내 아들이 노예가 된다니깐요.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하고 밥을 같이 먹으면 그 유다인은 돼지고기를 먹은 걸로 간주를 했어요. 이해가 잘 안가죠 돼지 고기 그 맛있는걸 뭐 유다사람들은 되지고기를 가장 부정한 짐승으로 여겼잖아요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 그 사람은 돼지고기를 먹은 걸로 간주를 해갖고 징벌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유다인이 사마리아 땅을 지나게 되었을때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배가 고파서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물과 음식을 얻어 먹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쓰던 그릇도 쓸 수가 없었어요 법적으로요.

주님이 그 땅으로 가신 거에요 자기 백성을 찾기 위해 그 땅으로 가신 거에요 그 땅에 하느님이 찾으시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서둘러서 사마리아 땅으로 가셔서 낮 열두시에 사마리아 여인과 만났어요 중동지방은 낮기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보통 여자들이 낮에는 물길러 안나오죠 밤에 나온다구요 저녁 무렵에. 그런데 이 여자 혼자 낮 열두시에 물뜨러 나온 거에요 그것만 보더라도 이 여자는 자기 마을 사람에게 조차도 부정한 여인으로 따돌림을 받았던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하여튼 시나이산 모세 계약책에 가장 밑바닥에 있는 여자를 등장시킨 거에요 그 여자도 예수님이 찾아가서 은혜를 부으니까 하느님에 자녀가 되더라라는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원래 유다인 랍비는요 대낮에 길에서 여자를 만날 수도 없었고 여자와 대화를 할 수도 없었어요 심지어 자기 아내와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를 주님께서 찾아가셔서 먼저 말을 거셨어요 여자도 그냥 여자도 아니고 사마리아 여자 사마리아 여자도 그냥 여자가 아니고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따돌림 받았던 부정한 여자 그 여자에게 찾아가신 거에요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우리가 바로 그 여자였다니깐요 성경은 그거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니들이 바로 그 여자였다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거에요 우리가 그 여자보다 뭐가 나은게 있습니까. 주님이 만드신 무대장치를 보세요 만일 주님의 제자들이 곁에 있었다면 하나라도 곁이 있었다면 주님은 그 여자와 오랜 시간 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을 거에요 그죠?

그런데 제자들이 몽땅 양식을 구하러 갔습니다 보통 양식을 구하러 가는데 제자들이 다 가요 한두명이 가고 나머지는 쉬는데 그때는 양식을 구하러 제자들이 다 가 버렸어요 하느님에 섬세한 무대장치에요 주님은 제자들이 양식을 가지고 구해갖고 왔을때 까지 계속해서 그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에 배려를 한번 보시란 말이에요. 이 사마리아 여인에 이야기가 주님께서 자기에 백성에게 은혜에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일부러 그 땅을 찾아가셔서 그 백성들을 구원하신 이야기라는 것은 주님께서 당도하신 그 시카르라는 마을에 이름 지명에서 이미 힌트가 되어 있었어요 5절을 보시면 시카르라는 것이 이렇게 묘사가 되어 있죠

5-6절 보세요 5예수께서 사마리아 지방의 시카르라는 동네에 이르셨다. 이 동네는 옛 날에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인데 6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그래요 시카르는 야곱이 세겜 추장 하몰에 아들들로부터 은 1백개를 주고 산 세겜 땅으로 에발산과 그리짐산 중간에 있는 동내였어요 시카르라는 단어의 의미가 뭔줄 아세요 갚을 치르고 사다란 뜻입니다 다른 말로 代贖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 야곱에 우물이 있는 시카르는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하느님에 백성들을 그 나라가 완성될때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구속사를 내용으로 담고 있는 하느님께서 복음을 설명하시기 위해 이미 준비해 놓으신 무대장치였던 거에요 .

거기에 사마리아 여인을 등장시키고 우물을 등장시키고 주님이 가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거셨어요 물좀 달라 오늘 본문을 잘 읽어 보신 분들은 주님의 이 요구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실 거에요 분명 주님은요 31절에서 제자들이 먹을 것을 갖다 줬을때 나에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라고 먹을걸 거부했단 말입니다

그럼 그런 주님이 왜 그 여자에게는 물을 달라 그랬을까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음료와 양식이 있다라고 하신 그분이 왜 이 여자에게는 물을 달라 그랬을까요?

주님은 지금 주님에 목마름을 해갈하실 물을 그 여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구를 통해서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을 드러내시기 위해 물을 달라 라고 시작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물에서 어떻게 이야기가 어디로 전개되어져 가는지를 한번 잘 보시면 아주 재미있어요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거시자 사마리아 여인이 깜짝 놀라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였기 때문에 그런거에요 유다와 사마리아는 아주 오랜기간 외면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복장이나 외양이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유다인이라는걸 금방 알았던 거에요 그래서 왜 유다인이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죠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

9절 보세요 9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바로 그 이야기를 생수에 이야기로 끌고 가십니다

10절 보세요 10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시자

여기서 생수라고 번역이 된 휘도르는 흐르는 물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고여있는 물은 휘도르란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세겜에 있는 야곱에 우물은 깊이 100피트에 고여있는 오아시스에요 그 여인 앞에는 지금 100피트 깊이에 우물이 있을 뿐입니다 그 사막에 어디에도 그 오아시스인 우물 이외에 흐르는 물이 없었어요 여인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생수가 무엇인지 아주 궁금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도대체 흐르는 물이 어디있다고 이 사람이 지금 흐르는 물을 나에게 주겠다고 이야기하는가 아마 실없는 남정네의 농담으로 여겼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주님은 10절에 이야기에서 그 생수는 바로 하나님에 선물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명확히 이야기하고 계시다구요

보세요 10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그리고 자신이 하느님에 선물을 줄 수 있는 메시아라는 것도 넌지시 암시한다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주님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해요 예 이게 바로 죄인들에 실존인 것입니다.

그 여인은 대뜸 이곳에는 물을 기를 그릇도 없고 이 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습니까 라고 해요 중동지방에 오아시스에는 항상 물깃는 그릇이 있었어요 염소가죽으로 만든 물깃는 그릇 그런데 왜 이 여인이 물깃는 그릇이 없다라고 했는지 아세요 사마리아 사람들이 쓰는 그릇은 유대인들이 쓸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는 물 깃는 그릇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물을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이 여인은 주님께서 주시겠다고 하는 이 생수를 육신적인 해갈을 해줄 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에요. 마치 니고데모에 우매함이 여기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안드세요 맞습니다 그 이야기하는 거에요 지금 니고데모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 거듭남을 육신에 거듭남으로 오해를 해서 어떻게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옵니까?이렇게 이야기했던 것 처럼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께서 주시는 영생에 샘물을 이 세상에 물로 오해를 했던 거에요 주님은 차근 차근 설명을 해주세요

13-14절을보세요 13 예수께서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 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하셨다.

주님은 당신께서 말씀하신 생수는 그저 육신에 목을 축이는 물이 아니라 영생을 주는 생수에 강이라고 말씀하세요 그 생수의 강은 성령이다

738-39절 나오잖아요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 나올 것이다.' 39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그죠?그러나 우매한 인간들은 자신들이 그 파놓은 우물이 그들에 목마름을 해갈해 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수에 필요성을 못느끼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께서 너희는 생수를 마셔야 한다 너희는 거듭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을때에 니고데모도 사마리아 여인도 못알아 들었다라는 거에요 그걸 알려주는 것입니다 저 꼭데기 부터 저 아래까지 아무도 못알아 듣더라 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에요 니고데모에게는 지식과 명예와 도덕성과 부라는 우물이 있었어요 니고데모는 그러한 우물물로 자신에 갈증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유다교의 대표로 등장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떳떳하게 주님앞에 온거에요 어떻게 해야 거듭납니까?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에 뭘 보태야 됩니까? 물어본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뭐라 그랬어요 스크렙 에브리 띵 유브던 니고데모스그랬다구요 다 갖다 버려라그랬다니깐요 니가 갖고 있는건 어디에도 소용이 없어 어디에도 도움이 안되 다 갖다 버려라 그랬다니깐요 사마리아 여인은요 구약의 율법체계를 상징하는 그 야곱 우물이 자신에 목을 축여줄 거라 생각했어요 자기는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시나이산 계약의 그 체계속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나 주님은 아니다 그런다구요 너희에게는 생수가 필요해 성령이 필요하다 그런다구요 생수는 뭐에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나오는 성령을 이야기하는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먹었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 반석은 누구다 그리스도다 하지 않습니까 고린도전서 104절을 보세요 그들은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었고 4 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의 동반자인 영적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다는 말입니다. 그 바위는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목마름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여인에게 주님께서 이제 본격적으로 그 목마름에 정체가 무엇인지를 밝혀 준다 말이에요 주님은 갑자기 당신에 말하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한번 줘봐요 라고 이렇게 비아냥 대는 여인에게 남편을 데려와라 이렇게 이야기해요 선문답같죠 무슨 이런 질문 대답이 있어요 물좀 주세요 그랬더니 남편을 데려와라 그런다니깐요 여인은 갑작스런 주님의 질문에 자기는 남편이 없다 그래요 그래 주님께서 니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에 그 남자도 니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구요 주님은 그 자리에서 그 사마리아 여인에 죄를 폭로해 버리신 거에요

 

그래서 여인이 생수를 달라고 하니까 니가 진짜 목마른게 무엇인지 모르는구나 라고 니 남편을 데려와라라고 이야기한거에요 너는 지금 그 남편으로 하여금 니 목마름이 해갈될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다 그 남편말고 진짜 남편인 내가 니 안에 들어가니 목마름을 해갈해 줘야 된다라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갑자기 생수주세요 그러니까 남편 데려와라 이야기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으로 여러분에 목마름을 해갈할려고 하고 있죠 여러분도 돈 명예 가정에 행복 이런 것으로 지금 그 목마름을 해갈할려고 하고 계십니까 아닌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율법체계인 야곱의 우물과 세상의 힘을 상징하는 남편들을 통해서 자신의 해갈을 추구하고 있었던 그 여인에게 이제 진짜 남편이 나타나신 거에요 이 사마리아의 여인은 바로 여러분과 접니다 우리에게 그 주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습니까? 돈과 명예와 도덕성과 종교행위등으로 우리가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때 신랑이 찾아오신 거에요 그 부정한 여인에게 신랑이 찾아오신 거에요

예레미야 213절 보세요13 나의 백성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생수가 솟는 샘인 나를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하여 물이 괴지 않는 웅덩이를 팠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무든 것은 다 터진 우물인 거에요 다 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당에 와서 그 우물 물을 달라고 하는 자들은 도대체 뭐냐 말이에요 도대체 여러분이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계속해서 엉뚱한 우물을 파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하느님을 버린 사람들이지 절대 성도가 아닌 거에요 그게 예레미야 213절에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수는 여러분의 우물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되는 거에요 그 분으로만 만족하고 그분에 선물인 영생으로만 행복해 하실 수 있는 분들이 바로 성도인 것입니다

 

이사야서 122-3절 보세요 2 진정 하느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내가 당신을 의지하니,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야훼는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십니다.' 3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우리에 우물은 뭐가 되어야 되요 구원에 우물이여야 된대니깐요 돈에 우물 명예에 우물 쾌락에 우물이 아니라 구원에 우물물 그것으로 기뻐하셔야 되는 거에요 주님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물가로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우물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라라는 거에요 나를 바라보라 사마리아 여인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는 말이라니깐요 그 우물이 아니라 나 나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그 우물 그 우물만이 너희들을 해갈시킬 수 있고 너희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제발 눈을 돌려라 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가 세상에 우물이 아닌 구원에 우물로만 기뻐하는 진짜 성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가 파놓은 우물들을 때때로 뭉개버리시는 거에요 우리가 파놓은 건강이라는 우물을 때때로 뭉개버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파놓은 명예라는 우물을 때때로 뭉개버리시는 거에요 우리가 파 놓은 돈이라는 우물을 뭉개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우물 엎고 예수라는 우물물 만으로 너 진짜 기뻐할 수 있니 그럼 너 진짜야라는 거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러한 자로 지어져가고 성숙되어져 가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삶 속에 그런 일들이 일어 났을때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당연한 거에요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는 실력자가 되었을때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선생처럼 하느님이 부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 사람은 자식한테도 땡전 한푼 안물려주고 아주 검소하게 살다가 모든 재산을 사회와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갔습니다 자식들이 똑같이 수백억에 재산을 또 사회에 다 환원하고 가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러한 실력이 있는 자들에게는 하느님이 주는 것입니다 청지기니까 잘 쓸거니까 부자되고 싶으세요 실력을 키우십시오 명예를 얻고 싶으십니까 실력을 키우십시오

그러나 정말 우리가 그 복음에 깊이 젖어 들게 되면 그도 저도 아니고 예수로 족하게 되는 거에요 그까짓거 필요없어요 다 새는 웅덩이래니깐요 여러분에게는 진짜 남편이 있지 않습니까 진짜 마르지 않은 우물이 있지 않습니까 어디가서 어떤 우물을 파고 있는 거에요 어떤 남편에게 매달려 있습니까 지금 진짜 남편 진짜 우물 의지하여 그것으로만 기뻐하십시오

 

  진정한 참 기쁨은 내가 그리스도를 깨닫고 알았을때 가장 기쁘게 됩니다.

저와함께 요한복음을 걷고 있는 교형 자매님들 힘드시고 지루하시더라도 참고 견디면서 가 보자구요

지급보다 더 긴 강의 말씀도 있어요.

줄여서 될 부분이라면 확 줄여 보겠는데 ~~

그럼 참 뜻을 살펴보시 어려울듯하여 그냥 올릴때가 많습니다.

늘 ~~주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세요. 살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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