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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6.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13 조회수2,186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8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1열왕 18,20-39

그 무렵 아합 임금은

20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바알의 예언자들을

카르멜산에 모이게 하였다.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다시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됩니다.

23 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십시오.

 그들에게 황소 한 마리를 골라

토막을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은 붙이지

말게 하십시오.

나도 다른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24 여러분은 여러분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겠습니다.

그때에 불로 대답하는

신이 있으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자 백성이 모두

“그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제안하였다.
“당신들이 수가 많으니

 황소 한 마리를 골라

 먼저 준비하시오.

당신들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나 불은 붙이지 마시오.”
26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

27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28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29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30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이리 다가오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백성이 모두 다가오자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31 엘리야는, 일찍이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

32 엘리야는 그 돌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는

곡식 두 스아가 들어갈 만한

도랑을 팠다.

33 그는 장작을 쌓은 다음,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34 그러고 나서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시오.”

 하고 일렀다. 그런 다음에 그는

 “두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두 번째도 그렇게 하자,

엘리야는 다시

“세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세 번째도 그렇게 하였을 때,

35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

36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자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37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38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

39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복음 마태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

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은 무엇일까요?

국어도 영어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수학이었습니다.

한 온라인 프로그램 운영 업체에서

2만여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자그마치 60%

이상이 수학을 가장 어려운

과목으로 뽑았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수포자’가 꽤 많습니다.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너무 어려운 수학에 시간을 쓰느니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리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그들은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 잘 하면 되지. 방정식,

부등식, 함수, 미적분 따위의 복잡한

 수학이 우리 생활에서 뭐가 필요해?

수학과에 갈 것도 아닌데

이 어려운 것을 꼭 해야 하는 거야?”
수학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의 과학의 발전 안에

수학적 이론이 가득합니다.

또한 수학을 공부하면서

사고능력이 향상되고

창의력이 커진다고 합니다.
무슨 과목이든지 다 중요한 것처럼,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지 않으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과연 필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 싶습니다.

결국 내 자신을 좀 더 향상시키고

더욱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긍정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더욱이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은 더욱 더 하느님의

큰 사랑이 담긴 창조물이기 때문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으로

생각했었거든요.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주는 등,

 파격적인 행동을 거침없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주셨던 이유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었고

래서 율법에서 금하는

 안식일이라 해도 사람을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기준 아래에서 어떤 사람도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인이라면 구원으로부터

제외된다고 생각했고,

그밖에도 많은 차별을 잘못된

율법의 규정을 내세워서

행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떤 사람도 사랑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가장 작은 것이라도 사랑의

실천을 하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자신은 과연

작은 사람일까요?

큰 사람일까요?

나의 사랑 실천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돈을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다.

돈으로는 사랑을 살 수 없다.

존 레넌).

      주님의 사랑에 집중하세요.

사랑에 집중하세요.

어느 소설책에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이 사랑을 놓쳐버렸고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했으며

체념으로 하루살이처럼

살아온 데 대해 고소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사랑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이러한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을까요?

그보다는 늘 뼈아픈 후회를

남기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우리들은 ‘언젠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항상 뒤로 미룹니다.

언젠가 간직할 수 있는

사랑과 행복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을 그렇게 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인

 ‘사랑’에 더욱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미 늦은 것이 아니라,

아직 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오늘은 파도바의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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