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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인간의 대화법과 하느님의 대화법의 차이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14 조회수2,97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인간의 대화법과 하느님의 대화법의 차이>

  

 



복음: 마태오 5,27-32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림


LORENZETTI, Pietro 작, (1325)

 

 

 

 

저는 남자만 3형제인 집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워낙 시골이었기에 동네에서도 여자와 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학에 들어가니 여자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대화법을 익혔습니다. 점점 대화법을 익혀가다 보니 대화가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때 배운 대화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대의 관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이기적이기 때문에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 자기생각만 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즐겨 들어줄 때도 자신이 좋으니 들어주는 것이지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관심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상대의 이야기에 수긍해주고, 그 관심사를 질문을 통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자연스레 유도하며 그런 관심사에 관한 나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말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고 간혹 위트 있는 말로 분위기를 밝게 이끌어 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건 좀 아니다싶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면 상대는 나를 좋아해주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세상적인 대화법의 목적은 상대의 애정을 얻기 위함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애정을 가지게 된다면? 그 다음엔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이 다입니다. 발전이 없습니다. 내가 상대의 애정을 얻기 위해 상대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애정이란 것이 냄비와 같아서 금방 뜨거웠다가 금방 식었다가 하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감정입니다. 그 허무한 바람과 같은 것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내가 대화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하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만나주시는 방식을 접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방식입니다.

먼저 하느님은 엘리야를 호렙에 있는 동굴에서 밤을 지새우게 하십니다. 산 위의 동굴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광야나 산은 하느님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의지를 먼저 보십니다. 원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애원하지 않으십니다. 원하는 사람을 만나주시고 얼마만큼 원하는지 시험하십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광야나 산을 오를 준비가 되어있다면 이제 당신도 만나러 오십니다.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나섰을 때 주님이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 속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는데 그 곳에도 계시지 않고, 불이 일어났는데 그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다가오십니다.

이는 사람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마음가짐이십니다. 하느님은 강한 바람, 즉 비난하러 오시지 않으십니다. 혹은 불안하게 지진처럼 나를 흔들지도 않으시고 불처럼 화가 나서 다가오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오십니다. 평화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항상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말에 그 마음이 담겨 상대를 비난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담기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물으십니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느님의 관심은 엘리야에게 있습니다. 이는 세속적인 대화법과 일치합니다. 하느님은 엘리야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아십니다. 그럼에도 그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십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예언자이기에 죽임을 당할 지경에 와 있다고 길게 한탄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다 들어주시고 나서 위로를 해주시기는커녕 또 다른 소명을 맡기십니다. 들어주시는 것만도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엘리야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십니다. 왕들에게 기름을 부어주고 자신의 후계자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계속 그 길을 가라는 뜻입니다. 왕직-사제직-예언자직을 수행하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속 대화법과 다른 면입니다. 하느님은 애정에 집착하지 않으십니다. 발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싫어서 간다고 하면 잡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시며 그것이 싫어서 떠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잡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진리를 말씀하심에 주저함이 없으십니다. 하느님 대화법의 목적은 상대의 애정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하느님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엔 저도 고해성사를 들을 때 위로해주고 받아주고 가슴 아플 것 같은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람이 조금 아프더라도 고쳐야 할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말해줍니다. 물론 위로를 받기 위해 들어왔다가 기분 나빠 나가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말해주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애정을 구걸하는 인간적인 대화법에 얽매여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올바른 길을 알면서도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여 말해주지 않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더 큰 사랑입니다. 이런 식으로 대화하면 나의 애정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떠나가고 하느님께 가까이 가려는 사람만 주위에 남게 됩니다. 변하려는 사람들만이 그런 말들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는 사람들이 저의 참 친구들이 됩니다. 이런 우정의 풍요로움은 애정만 구걸하는 세속적인 대화법으로 사는 사람들은 얻을 수 없습니다. 타인에게 매여 자유를 잃기 때문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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