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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단순함 속에서만 단답형 대답이 /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16 조회수2,164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앞날이 불확실하면 헛소문이 많고 말이 난무하며 불안하리라. 온갖 유언비어로 사회는 방향 감각을 잃어갈 게다. 사실 정직하게 말한다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그 삶이란 말에 책임지는 것을 뜻하기에 그렇게 사는 게 어쩜 불가능할 수도. ‘.’, ‘아니요.’가 간단한 것 같지만, 정직이 바탕으로 까려야하기에 어쩜 만만하지만은 않으리라.

 

말은 생각과 느낌이기에 무게가 있다. 농담에는 농담의 무게가, 상담에도, 그리고 맹세에도 각각의 무게가 있다. 뿐만 아니라 침묵에도 그에 따른 무게가 있을 게다. 사탕 하나 얻으려 맹세하는 것도 그렇지만, 중요한 계약을 문서 없이 새끼손가락 걸고 하는 것도 너무 허술하기 짝이 없다. 살다보면 분명히 답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애매한 답만 자주 하는 게 삶이다. 체면 때문에, 마음이 약해서 이미 거짓말했기 때문이기도.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거짓 맹세는 안 된다.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하고 이르신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하느님의 옥좌이기에. 땅을 두고도. 그분 발판이기에. 예루살렘을 두고도. 위대하신 임금님 도성이기에. 네 머리를 두고도. 네가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다. 너희는 .’아니요.’만 말하여라. 그 이상은 악에서 나온다.”(마태 5,33-37 참조)’


단순하게 살자. 단순한 삶이 되어야 예수님 가르침 실천할 수 있다. 그분 역시 단순하게 사셨다. 사는 게 복잡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늘 쉽고도 간단하리라.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큰 감정으로 싸우지 않는다. 꼭 작은 감정으로 싸운다. 하찮은 감정이 싸움을 유발시키기에. 기분에 무심코 한 말이 상대방 아프게 만든다. 사랑 표현에 무슨 맹세가 필요한가? 따뜻한 미소, 다정한 눈길 자체만으로도 확실한 것이 아닐지?

 

결국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은 우리 스스로가 나약함을 깨달아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의탁할 줄 알라는 뜻일 게다.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께 대한 의탁이다. 그리고 이런 삶이란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에 .’하고, 그분께서 원하시지 않는 건, ‘아니요.’라고 확실히 대답하는 결단이다.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 속한 이는 진실한 이다. 진리를 따르는 이는 자유로워지고 빛의 삶을 산다. 그 이는 .’할 것은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 말할 게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건 겸손이지만, 교만은 자신을 높이고 가식을 담기에 그릇된 맹세만 하리라. 겸손한 이는 진실에 대해 변명도 방어도하지 않는다. 복잡한 현실에서 단순함을 지니지 못하면 , 아니요를 분명히 할 수 없을 게다. 평소의 뚜렷한 삶은 나를 둘러싼 어정쩡한 기운들을 없앤다나. 그러니 .’할 것만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는 단답형 삶을 살자. 단순하게 살라는 그분 뜻을 늘 새기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맹세,하느님 옥좌,임금님 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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