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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6.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16 조회수2,27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8년 6월 16일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열왕 19,19-21

그 무렵 엘리야는

산에서 내려와

19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복음 마태 5,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형제님께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머리카락에

 깜짝 놀란 것입니다.

자신은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대머리인데 반해,

 친구는 여전히 까맣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지요.

이 형제님은 말했습니다.
“야, 너는 나이를 거꾸로 먹니?

어떻게 이런 머리를 아직도

 간직할 수 있지? 정말로 부럽다.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이제 머리카락도 없다.

너랑 똑같이 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천만 원이라도 내겠어.”
그러자 이 친구가 정말로

천만 원을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형제님께서는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당장 내놓겠다면서

하늘을 두고 맹세까지 합니다.

다음 날 두 사람의 머리카락은

 똑같아졌다고 합니다.

글쎄 머리숱 많은 친구가 밤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둘 다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가 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똑같이 되었으니

천만 원을 주어야 할까요?

이 글이 진짜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의 당사자가 있다면

아마 맹세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들은 맹세를

참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거짓된 맹세를 얼마나 많이 합니까?

지키기 힘든 맹세를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맹세를 지키지 못했음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갑곶성지에 처음 시작할 때에

한 자매님과 면담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랜 시간 면담을 마치고 자매님께서는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만약에 이 일만 해결되면 어려운

이 성지에 삼천만원 기부하겠습니다.”
자매님의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일이 해결되어도 굳이 기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매님께서는 “아닙니다.

하느님과 약속한 것과 같으니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매일 성지를 찾아오시던 이 자매님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일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맹세는 자기 자신에게도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주님께서는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실 믿음의 단순함 속에 살면

 굳이 맹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주님의 뜻에

맞게 살면 그만이니까요.

즉,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주님께 대한 단순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맹세는 이제 더 이상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삶을 살면 그만입니다.

이러한 단순한 믿음 안에서

우리의 삶 전체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쓸 수 있습니다.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그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길이다.

(T.플러)


기도합시다.

"이력서"

이력서는 한자로 신발 이(履),

다닐 력(歷), 기록 서(書)로 씁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석하면

 이력서란 신발을 신고 걸어온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신발을 신고

 걸은 자신의 역사일까요?
우리들이 신발을 신는

 가장 큰 이유는 땅바닥에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한

물체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역사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신발을 신고 걸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편하고 쉬운 길만을

걸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편하고 쉬운 길, 안전한 길은

굳이 신발이 필요 없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온 사람은

 제대로 된 자신의 역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신발을 신고 노력할 일이

 계속되어야 풍요로운

 이력서가 될 수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의 시간은

풍요로운 이력서를 만드는

또 하나의 축복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갑곶성지 성물방의 성물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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