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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8년된 병자의 치유 (요한 5.1-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17 조회수5,356 추천수0 반대(0) 신고

 

 

 

 

38년된 병자의 치유를 통해서 본 행위와 은혜

(요한 5.1-18)

1 그 뒤에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 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4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5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6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8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9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1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아멘

 

    38년된 병자 고치시는 예수님

자 오늘은 38년된 병자에 치유 사건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세번째 표적이죠  21절에서 부터 1250절까지를 표적의 책이라고 부른다 그랬어요 북 어브 사인즈 그 표적의 책들은 오해 강해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 표적의 내용은 전부 어디에 걸리는 거에요 1장 마지막절에 인자위로 하늘이 열리고 하늘과 땅이 하나로 화해를 하게 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는 그 책, 그것이 바로 표적들에 책인 거에요

21절부터 1250절까지 그 방법이 뭐였어요 그 방법은 다름아닌 은혜죠 우리가 이미 공부한 요한복음 4장까지의 내용도 전부 그 은혜를 주제로 하고 있었잖아요 요한은 이렇게 은혜라는 주제 아래서 표적의 사건들과 예수 그리스도에 강해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거에요

 

잠깐 복습을 하자면 요한은 가나에 혼인잔치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그 표적에 사건을 통해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는 즉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 보혈에 의해서만 잔치답게 완성될 수 있다라는 은혜의 복음을 보여 주었구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그 혼인잔치의 표적에 대한 강해의 부분으로 뭐가 있었어요 두가지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의 사건. 유대관원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그 해설 오해에 관한 해설로 붙여 놓는 거에요 어떻게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聖血로만 완성이 되냐 어떻게 그 혼인잔치집에 잔치됨이 예수 그리스도에 성혈로만 완성이 되느냐 우리에 열심이나 노력이 조금 보태져야 되는게 아니야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진 강해가 바로 유대관원 니고데모의 이야기에요 부자였고 지식인이였으며 벼슬까지 하고 있었던 유대관원 니고데모에게 주님은 거듭나라라고 말씀하세요 그 말은 인간측에서 준비한 모든 수고와 노력을 다 갖다 버리라는 이야기인 거에요 구원은 인간측에서 마련한 어떠한 것도 근거로 작용할 수 없는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다라는 의미죠 다 갖다 버려라 그건 다 필요없는 거야 거듭나야 되는 거야 그런데 거듭나면 하느님의 선물로만 주어진다 가 유대관원 니고데모의 이야기죠

 

아울러 구원은 자격없는 자에게 무상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에 선물이라는 쇄기를 박는 강해가 바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죠 사마리야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여자였고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던 당시에도 여섯번째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던 여인이였어요 주님은 세상에 힘을 상징하는 남편이라는 도구로 자신에 목마름을 해갈하려 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참 생수이신 구세주 예수를 소개함으로 그 여인을 구원하시는 거에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도 못하고 그분께 구원에 요청도 해본적이 없는 사마리아 여인과 그 여인에 동네에 사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에 말씀에 의해 구원을 받았어요 은혜입니다 그죠 이렇게 구원에 주도권과 시행권은 오직 하느님편에만 있는 거에요 그게 요한복음 전체 이야기인 거에요 인간은 그 하나님에 사역에 아무것도 보탤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5장에서 부터 10장가지에서는 그러한 은혜의 스토리를 이스라엘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율법과 절기를 통해서 다시 확대해서 설명을 해주시는 거에요 하느님은 5장부터 10장까지의 내용에서 율법과 절기에 대한 유대인들에 그 오해를 박살내시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세요 5장에서는 38년된 병자를 고치시고 유대인들과에 안식일에 관한 논쟁을 통해서 안식일이 상징하는구원을 완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시고요

6장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逾越節을 완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를 보여주세요 다음에 자세히 설명해 드릴께요 그리고 7장에서 9장까지는 초막절을 완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세요 그리고 10장에서는 이렇게 유대교의 중요한 제도들 인스티튜션 유대교의 중요한 제도들을 완성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참 메시아됨 즉 하느님 백성에 참 목자됨을 드러내는 거에요 그게 10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 - 유월절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절기는 크게 3가지죠 첫번째가 逾越節 유대인들에 달력은 우리가 쓰는 그러고리안력하고는 많이 달라요 유대인들은 자신들에 달력으로 114일을 유월절로 지키죠 그때는 우리가 쓰는 달력으로 3월 중순에서 4월초 사이에요 유월절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이 에굽의 종이 되었을때에 열가지 재앙으로 에굽왕을 굴복시키시고 마지막으로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낸 것을 기념하는 절기죠 그 유월절이에요 지금까지 계속 지키고 있죠 그때부터 50일 후 50 五旬節이라고 그러죠 순이 10 이라는 뜻이니까 오순절이라고 그래요 그 오순절은 49일 다음날이니까 칠칠은 49 그래서 칠칠절이라고도 그러죠 그리고 그때는 맥추절이라고도 그래요 보리를 추수하는 그러한 계절이라 그 다음에는 收藏節 혹은 초막절이라는 절기가 있어요 그 절기는 오늘날에 추수감사절 같은 절기에요 그런데 이 세 절기를 지킬때는 항상 성회로 모이게 되어 있어요 성회로 모인다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이스라엘 법규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똑같은 규례가 적용이 되요 이 세 절기는요 계절별로 절기를 삼았을 뿐이지 이 절기를 지키는 근본 원리는 안식일을 공통 인수로 해서 절기화 한거에요

레위기 23장부터 26장 한번 잘 읽어 보세요 안식일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고 있으면 5장부터 10장까지에서 절기를 가지고 예수님이 어떤 것을 설명하시는데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거에요 유대인들의 절기라는 것은 전부 사실은 그 내용은 안식일을 공통분모로 갖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안식일이 담고 있는 내용을 절기속에 담아서 그냥 계절별로 나눠 놓은 거 뿐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충만한 삶이라는 그 설교에 다 들어가 있어요 이렇게 5장부터 10장까지의 내용은 전부 안식일이라는 공통 분모 속에서 그 안식일에 담겨 있는 참된 의미와 오해에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주는 내용이다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먼저 이 38년된 병자의 치유사건의 시간적 배경부터 한번 보자구요 본문 1절에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라는 구절로 이 38년된 병자의 이야기는 시작이 되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그냥 명절이 아니라 유대인의 명절이에요 요한은 이 어구를 통해서 이 38년된 병자에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을 미리 조금 힌트하고 있어요

요한복음에 유대인이라는 말이 무려 70번이나 나와유 요한은 다른 공관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리 이 유대인이라는 단어를 예루살렘에 근거를 둔 그리스도와 복음을 반대했던 종교 지도자들을 가르킬때 주로 써요

 

요한복음 9장에 가면 주님께서 날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시는 사건이 나와요 그 소경과 부모들은 분명 유대인이에요 보시면 그들이 출교를 두려워해서 나는 모릅니다라고 부인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유대인이란 말이에요 출교를 두려워 했다라는 것은 그런데 그들과 유대인은 구별해서 쓴다 말입니다 이들도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 922절 보세요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 함이러라 부모와 저희 유대인들을 이렇게 구별해서 쓴다 말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요한이 38년된 병자의 이야기를 유대인의 명절이라는 어구로 시작하는 이유를 쉽게 추론해 볼 수 있죠? 요한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명절에 개념 즉 안식일에 개념을 가지고 어떤 것을 설명할 것이다라는 힌트를 5장 첫절에서 던지고 있는 거에요

이 이야기에 공간적 배경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2절을 보세요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곁에 히브리말로 벳자타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지금 38년된 병자가 누워있는 곳은 양문 곁 벳자타라는 연못가에요 양문이라는 곳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여러 문중에 한 문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옛날 우리 한양에도 성으로 들어가는 문들이 여럿 있었어요 그죠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자하문 서소문 이런 4대문하고 4소문이 있었죠 그리고 시구문 시체들이 왔다갔다 하는 문이였어요 시구문 시구문패라는 건달들도 있었잖아요 그런 문들이 있단 말이에요

예루살렘 성에도 그러한 문들이 여러개가 있었어요 물고기를 들여오던 어문 말들이 다니던 마문 골짜기문 동문 새문 이런 문들이 예루살렘 성벽에 나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 2절에 양문이에요 양문은 말 그대로 양들이 들어오던 문이였어요 양도 그냥 양이 아니라 성전에서 희생제물로 드려질 희생 양들이 들여오던 문이였어요 그게 양문이에요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살아난 민족이잖아요 그들이 에굽에서 나올때 어린 양의 희생에 피가 아니였으면 에굽과 똑같이 장자의 재앙에서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양의 희생은 생명에 은혜로 부각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양문은요 은혜와 희생을 의미하는 아주 귀한 문이였어요

 

느혜미야 31절 보세요 대사제 엘야십이 형제 사제들과 함께 나서서 양 문을 세워 봉헌하였다. 또 문짝들을 달고, ‘백인 탑까지, 그리고 하난엘 탑까지 이르는 구간을 봉헌하였다.

이스라엘이 성벽을 재건하는데 가장 먼저 건축을 한 곳이 어디에요 양문이에요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게는 희생제사의 제물이 들어온 그 양문이 참으로 의미가 있고 소중한 문이였던 거에요 은혜의 문 그들에게는 이 양문이 은혜의 문이였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공간적 배경으로 벳자타라는 연못이 등장하죠 그 연못의 이름은 베이트 벳 헷세드의 합성어에요 그러니까 베이트 벳은 집이죠 그래서 베들레헴 그러면 레헴이 떡이니까 떡집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니까 예수님이 그 떡집에서 태어나는 거에요 베들레헴 벧 엘 베이트 엘 하느님의 집 이게 벧엘이란 말이죠 이처럼 베이트는 집이라는 의미에 단어인데 헷세드는 자비 긍휼 은혜라는 의미에 단어에요 그러니까 벳자타라는 이름의 의미는 은혜의 집 긍휼에 집 자비에 집 이라는 뜻이에요 이 무대 배경을 잘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에 십자가에 희생을 상징하는 제사용 앙들이 들어오는 양문곁에 다른 말로 은혜에 문 곁에 은혜에 집이라는 연못이 있어요 그러한 공간적 배경은 구원은 바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희생으로 그분에 은혜로만 주어진다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배경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병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거에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을 보세요 (3그 안에 많은 병자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 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4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5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6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성경에 이렇게 가끔 괄호안에 들어가는 부분은 아주 오래된 사본에는 없는 그런 구절들이에요 이 괄호안에 들어가있는 내용이 사실이였는지 전설이였는지 아무도 몰라요 전설이였겠죠 하느님이 그런 식으로 일 안하시니까 그 은혜의 집이라는 연못가에 많은 병자들이 있는데 굿이 요한이 병명을 세가지로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 비틀어진 이, 이 세가지 병명은 구약에서 부터 하느님에 은혜를 떠난 자들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던 죄인들을 가리키던 표현들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그 벳자타 못가에 모여있는가 하면 벳자타 연못에 물이 할때 제일 먼저 뛰어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났는다라는 전설을 믿고 그 물이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전부 시동을 걸고 제일 먼저 달려갈려고~~~

    요한복음 5:1-18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학자들은 그 벳자타 연못이 간혈천 온천이였기 때문에 가끔 밑바닥에서 온천물이 확 솟구쳐 올라올때 물이 했다 그래요 그때 피부병에나 각종 관절염에 걸린 사람들이 들어가서 가끔 실지로 나았다고 그래요 그래서 아마 그런 전설이 생겼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은혜의 집 베자타에서 자신들에 행위를 의지하여 구원을 얻겠다고 베자타를 바라보고 내 달릴 준비를 하는 이 무리들, 은혜와 행위에 대조 일단 그 은혜에 집에서 자기가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라는 것은 은혜가 아닌 행위를 의지하고 있다라는 명백한 증거인 것입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거에요

성경은 지금 우리에게 행위 즉 율법과 은혜를 극명하게 대조해서 구원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을 보태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에게 하느님께서 무상을 주시는 것이다라는 복음을 설명하고 있어요 죄인들은요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분노합니다 자신들에게도 능력이 있고 힘이 있는데 왜 거지처럼 거져주는 것을 받아야 하느냐는 반발심때문에 그래요 그게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들에 모습인 거에요 나도 하느님처럼 되고 싶다 라고 선악과를 따먹은 그 죄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능력있는 내가 하느님에 도움을 값없이 받아야 하냐는 거에요 자존심 상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죄인들은 이 세상의 방법인 베지타 연못만을 뚜러지게 바라보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베지타 연못은 인간이 스스로 세워놓은 인간의 방책인 거에요 그런데 거기에 은혜의 본체가 와 계신 거에요 그런데 이들이 이 은혜를 부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여전히 베지타 연못 세상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행복을 찾을려고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가 성경이 이야기하는 거에요

 

느혜미야 331절 보세요 아까 31절에서 성벽을 재건하는데 양문부터 지었어요 맨 마지막에 어디가 지어지는지 보세요 그다음은 세공장이 가운데 하나인 말키야가 성전 막일꾼들과 상인들의 숙소까지, 그리고 점호 문앞과 성 모퉁이 누각까지 손질하였다.

처음에 은혜의 문 그 희생의 문에서 재건이 시작됐어요 예루살렘 성벽은 그런데 예루살렘 성이 마지막에 어떻게 끝나는가 하면 양문에서 시작해서 한바퀴 쭉 돌아서 다시 양문까지 이렇게 오는데 이제 완성되는 거에요 그 양문 바로 옆에 문이 함미갓 문(‘점호 문’)이라 그래요 함미갓 문이라는 것은 심판이란 뜻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렇게 무시무시해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짓는 이 역사속에서의 성 예루살렘 성은 결국 심판으로 결론이 난다라는 의미가 그 속에 들어있는 거에요

그래서 요한묵시록에 거룩한 성 그 새 예루살렘인 하느님의 교회는 하느님 당신이 은혜로 홀로 지으시고 완성하셔야 되는 거에요 거기에 인간에 행위가 조금이라도 보태지면 함미갓 문으로 끝나는 거에요 심판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들은 그렇게 은혜를 거부해요 그러니까 죄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하느님에의 눈에는 그들이 전부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 비틀어진 이로 보이는 거에요, 그렇게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들은 구원에 관한한 실제로 그렇게 무능력하고 불가능한 존재들이에요 그래서 베지타 연못가에 모여있는 병자들은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 비틀어진 이들 이라고 대표적으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소경이 물이 하는걸 볼 수 있나요? 없죠. 안보이는데 어떻게 봐요 그러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뛰어갈 가능성이 확률이 요만큼이라도 있어요? 없죠. 그 사람들 중에는 뭐 무좀 걸려서 오는 사람, 치질걸려서 오는 사람, 이런 가벼운 증상이 있는 사람도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소경이 어떻게 그 사람들보다 먼저 들어가요 이 사람들이 냅다 달리면은 못들어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불가능한 사람인 거에요

 

절둑발이가 소화불량 걸려서 오는 사람을 이길 수 있어요? 못이겨요. 여기서 팔다리가 말라 비틀어진 이로 라고 번역이 된 크세로스라는 단어는 손발이 마비된 상태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래서 어떤 번역본에는 그냥 중풍병자라고 번역을 했어요 그 정도로만 알아두자구요. 중풍병자가 머리 부스럼 난 사람 이길 수 있어요. 없죠? 온갓 병자들이 다 있는 그곳에 하느님은 굿이 그 병자들을 요 셋으로 표현을 한다 말이에요 그들은 그곳에 모여있는 자들은 전부 불가능한 자들을 상징하는 자들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떠난 세상 사람들에 실존이 그러하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곳에 모여있는 병자들은 모두다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무좀도 다른 병과 비교해갖고 상대적으로 가벼운거지 앓고 있는 본인에게는 무지하게 괴로워요 그거 긁어 본 사람들은 알아요. 피부병 관절염 마찬가지에요 자기에게는 아주 절박한 병들이에요 병이라는 것은 그래서 물이 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던 말던 먼저 뛰어서 연못속으로 들어가야 되요 그렇게 먼저 연못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방법만 있다면 나보다 나은 자들을 살해해 버릴 수도 있어요 왜 내가 절박하거든요 내 무좀이 나야 돼 다른 사람이 위 암이 걸려있어도 내 무좀이 더 아픈게 이 세상 죄인들에 속성인 거에요 그래서 지 무좀을 낫게 하기위해서는 그 위암 걸린 사람을 때려 죽일 수 있는게 죄인들이라니깐요 너무 제가 극단적으로 표현을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시기 질투가 살인이라 그랬어요 미워하는게 살인이라 그랬어요 비교하는거 살인입니다. 그거 자기 무좀 낫기 위해 위암걸린사람 어떻게 되던 말던 뛰어 들어가는거 그게 세상이다라는 것을 여기서 보여주는 거에요

베지타 못가가 그게 바로 세상인 거에요 자기가 자신에 구원에 자신에 행복과 안녕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자라고 굳게 믿고 있고 남들이야 어떻게 되던 말던 나에 병만 나으면 된다는 그런 신념하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자신에 참된 안녕과 행복을 확보하는 데에는 전혀 불가능하고 무능력한 존재 이것이 바로 세상에 실제 모습인 거에요 그걸 베지타 못가에서 그림으로 이렇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 자리에 우리가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들은 모두다 하나같이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누군가가 자기보다 먼저 연못속으로 뛰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보내요

예수님이 그 38년된 환자에게 '너 낫기 원하냐' 그랬더니 뭐라고 대답해요 '아니 낫고 싶은데 나보다 더 빨리 들어가는 놈들 때문에 내가 못 낫고 이렇게 38년동안 누워 있대니깐요' 이렇게 대답한다니깐요 그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으로 행복을 획득할 수 있다 라고 믿고 그렇게 뛰어가는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남을 원망하며 산다구요 내가 불행한것은 남들이 먼저 저 베지타 못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내가 지금 이렇게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남들이 내 행복을 밟고 먼저 그 못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구요 자기 못난거 생각하지 않고 세상이 자기를 밟았다고 생각한다 말이죠 그게 바로 38년된 병자에 모습이요 우리에 모습인 거에요 하느님을 떠난 인간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문명을 만들고 열심히 일을 해요

 

자기들에 힘으로 반드시 지상낙원을 이룰 수 있을 줄 알아요 그래서 세상은 이렇게 바쁜 겁니다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명을 발전시키고 지상 낙원만들려고 하는 거에요 행복하게 살려고 줄기세포니 뭐니 이런거 돈을 벌어보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 앉으려 물불을 가리지 않아요 취미 생활을 열심히 하고 무언가에 자신을 중독 시키기도 해요. 그게 베지타 못가에 들어가는 거에요 들어가면 나을 줄 알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간들이 스스로를 구원했다라는 증거를 단 한건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요. 완벽한 이론인것 같았던 공산주의도 그렇지 않아요 모든 이들이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어 먹자 얼마나 이상적입니까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정말 온전한 행복을 완성하고 떠났다는 사람을 역사는 단 한건도 기록하고 있지 않아요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은 누구나 할 것없이 전부 후회와 회한속에 죽음으로 들어가요 그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벌벌 떨면서 가게 되어 있어요 후회와 회한 속에서 나는 참 한 세상 만족하게 살았어 이런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38년된 병자는 그렇게 자신들이 힘을, 다른 말로 율법과 행위를 의지하고 있지만 무능력하고 불가능한 세상 사람들을 대표하여 예수님 앞에 누워 있는 거에요. 38년된 병자 안에는 바리세인들도 들어있고 제사장들도 들어있고 바로 구원받기 전에 우리들도 들어있고 그 속에는 아담 이후에 모든 죄인들에 모습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구약에도 하느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에 힘을 의지하며 갈려다가 38년을 방황한 사람들이 있어요 신명기 214절에 우리가 카데스 바르네아를 떠나 제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걸린 기간은 삼십팔 년인데, 그동안에 주님께서 맹세하신 대로 군사들의 한 세대가 모두 진영에서 사라졌다. 이스라엘이 에굽을 나와서 시내산에서 하느님에 율법을 받고 가데스 바르네아 에서 열두 정탐군을 가나안으로 파송을 해요 왜 38년 이냐면 율법을 받은 이후의 삶을 계산한 거에요 그렇게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으로 파송하는데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정탐꾼 열명은 모두 가나안 땅에는 아낙 자손들이 있다 그 성읍은 너무 견고하고 커서 우리는 절대 그들을 함락 못시킨다 그러니까 애시당초 포기하자 그랬어요. 그랬더니 전 이스라엘이 통곡을 했다 그러죠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모세에게 니가 우리를 여기서 죽일라고 데리고 나왔냐 이놈아 원망한다구요 그건 하느님을 원망한 거에요 선택된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에 약속과 능력을 의지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되는데 하느님이 약속 하셨고 능력을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 가나 안 땅에 가보니까 무서운 거에요 그 말은 하느님을 못믿고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인 거에요 

맥추감사절의 유래

 마태복음 121절 보세요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0 마침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어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을 잡아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니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된다.” 13 그러고 나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다른 손처럼 성해져 건강하게 되었다. 14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이렇게 안식일에 고치는 바람에 죽임을 당하시는 거에요 주님이 그런데도 꼭 이날 고치세요

루가복음 13장에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15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병자의 치유

예수님은 고의적으로 안식일에 어떠한 일들을 하심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스스로 몰고 가세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행적은 안식일을 지키는 규정인 율법이라는 것이 은혜의 주님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라는 아주 중요한 행위와 은혜에 교리를 담고 있는 거에요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느님에 명령속에 들어있는 그 진의를 알지 못하고 613가지에 미쉬나를 만들었죠 그 중에 39가지가 안식일에 관한 규정입니다 그것만 지키면 안식일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유대인들이 율법을 얼마나 열심히 지켰냐면 예수님을 얼마나 죽이고 싶었겠어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에 밤에 범인을 체포 못하게 됐어요 그래서 새벽까지 기다렸어요 이렇게 유대인들은 안식일 규례를 포함한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 것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멋대로 곡해를 해서 나는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자기들에 의를 쌓고 있었던 거에요 바로 그러한 자기 의가 은혜에 예수를 때려죽이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을 포함한 요한복음 전체가 웅변하고 있는 내용인 거에요 그게 창세기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고 하여튼 창세기부터 계시록가지 다 그 얘기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너희는 은혜로 돌아와 은혜 아래로 돌아와라 이게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거 아닙니까 선악과를 따먹고 니들이 신이 되어서 아무리 살아봐 그게 불행한 거라니까 따먹지 말라면 따먹지 말고 순종하고 그냥 내 은혜 아래에서 잠잠하게 있어 그게 제일 행복한 거야 이게 성경인 거에요 그거 알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야기는 요한복음에서만 강조되고 있는 내용이 아닌거에요 창세기부터 시작이 되요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여섯째날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일곱째날에 안식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안식 이 사바스라는 단어는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상태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는거에요 안식은 더 이상 보텔것이 없는 완전한 창조 곧 생명에 충만한 창조를 기뻐하고 즐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거에요 더 이상의 창조가 필요없다 라는 것이죠 하느님의 창조는 완벽했다 이게 안식인 거에요 하느님은 최초의 천지창조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완성하실 참 안식에 보기를 샘플을 그림자로 힌트하신 거에요

그런데 인간들이 하느님의 은혜를 떠나서 선악과를 따먹는 반란으로 인해서 깨져버렸죠 깨졌다라는 것은 그게 목적이 아니였다라는 거에요 그게 목적이였는데 깨졌다면 그분은 하느님 아니죠 이제 이 피조세계는 참된 안식을 향해서 다시 재창조되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 거에요 이게 진짜 목적이였어요 이제 다시는 타락하지 않고 훼손될 수 없는 그 참된 안식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오늘도 일을 하고 계시는 거에요 그 참된 안식을 위해서 창세기에서 모델로 잠깐 보여줬던 그 안식은 더 이상 이제 창조가 필요없는 완벽한 곳이다라는 것을 잠깐 보여준거고 그걸 깨버리고 이제 지금 또 일을 하심으로 해서 지금 하느님이 새창조를 하고 계시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에요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가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7절 보세요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무슨일 하는 거에요 참된 안식을 위해 새창조하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정확하게 38년된 병자같은 그렇게 무기력하고 불가능한 당신의 백성들을 이 역사속에서 구원하고 계시는 거에요 마지막 하나님에 백성이 딱 구원될때 그 때 문 닫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이 완성되는 거에요 그때까지는 하나님에 백성들을 계속 구원하고 계시는 거죠 그게 하니님이 하시는 일인 거에요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에게 하느님에 일이 도대체 뭡니까라고 물어봤을때 하느님이 보내신자 예수를 믿는게 하나님 일이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하느님을 믿게 하는 일을 지금 하고 계시는 거에요 하느님은 지금도 참 안식의 완성을 위해서 당신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일을 하고 계세요 그 일을 위해 주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을 하신 거에요 그래서 하느님 내 아버지가 지금 까지 일하시는데 그 일을 나에게 시켜서 내가 여기에 내려왔어 그래서 나도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창세기부터 지금 요한복음 요한계시록까지 이렇게 잘 연결이 되고 계시는 거죠 그 이야기에요 너무 성경이 이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인간의 행위와 율법을 경계하고 있는지 잘 보세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안식이 깨졌어요 인간들은 창세기 35절에 너희가 하느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도 하느님처럼 될거야 라는 사탄에 미혹에 넘어가서 이제 자기가 자신에게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하느님 노릇을 하겠다라고 나선 거에요 따라서 그때부터 하느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생명력이 끊겨 버렸어요 왜 인간들이 이제 내가 하느님이 되어 하느님처럼 되어 내가 내 삶을 주장할 거야라고 나섰기 때문에 그분의 생명력을 더 이상 부어주실 수가 없어요 인간측에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한하신 하느님에 생명력 그 바라크 이라는 것이 떠나 버렸단 말이에요 이제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공급되는 그 무한한 자원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그 내재적 자원으로 자신에 안녕과 행복을 확보해야 되며 자신에 존재에 의미를 스스로 세워가야 하는 처지가 된거에요 이제 끊어져 버렸어요 인간은 이렇게 창조주 하느님과 분리가 됨으로 해서 더 이상 무한함으로부터 공급을 받는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내재적 자원으로 자신에 행복을 채워야 하는 자들이 된거에요 그게 하느님에 은헤를 떠난 자들에 실존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간에 내재적 자원의 특징은 한계에요 하느님에 무한함으로부터 공급이 차단된 인간은 마치 뿌리가 뽑힌 나무와 같아서 잠시동안은 하느님에 피조물로서 살아있을 수 있지만 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할때 까지는 이게 살려놔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한시적인 한계적인 자원을 준다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한 한계 이 꼭지점을 향해서 가는 자원일 뿐이에요 꼭지점은 죽음이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한계를 갖고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죽음밖에 없어요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음질 치고 있는 거에요

 

우리 인간은 타락한 이후에 어차피 일을 함으로서 생명을 확대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구조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베지타 못가에 모인 모든 병자들이 다 연못만을 바라보면서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거에요 이렇게 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자들에 일과 그 일이 만들어낸 문명은 정확하게 하느님의 은혜를 대적하고 있는 행위인 거에요 성경은 나의 백성들아 너희는 하느님에 은혜를 떠나서는 티끌어 불과하다 그러니 이제 그만 무장해제하고 나의 은혜속으로 들어오라 라고 말씀하고 계신 거에요 완전한 새창조를 하셔서 당신에 백성들에게 참된 안식을 선물하시겠다 라는 거에요 그러기 위해선 너희가 너희 신분이 어떤 건지 확실히 알고 하느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확실히 알고 너희들은 하느님의 은혜를 떠나선 절대 살수 없다라는 것을 이 세상에서 역사속에서 배우고 와라 라고 우주와 인간을 이 역사속에 이렇게 던져 넣은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인 거에요

안식일을 지킨다라는건 하느님이 이제 새창조를 완성하셔서 영원한 안식으로 나를 끌어 들이신다는 것을확고히 믿는 사람들이거든요 고게 안식일을 지키는 거에요 안식일을 안지킨다라는건 그 언약 밖에 있는 여전히 베지타 못가에 있는 자들이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안식일을 안지키면 때려 죽이는 거에요

이렇게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완성될 진짜 참 안식 영생의 표징이였던 것입니다

골로새서 216절 볼까요 16 그러므로 먹거나 마시는 일로, 또는 축제나 초하룻날이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17 그런 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몸이라는 말은 소마라는 단어인데 그게 실체라는 거에요 이것들은 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나 실체는 그리스도인 것이니라 실체는 뭐에요 안식일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 라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이 자신을 안식일에 주인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범하는 자를 죽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자들에 죽음을 상징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독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안식이 뭐라 그랬어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에 죄와 수고와 질병과 고통 갈등 투쟁 슬픔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물러간 영생의 상태를 안식 이라고 그랬잖아요 병자가 있으면 안식이 아니잖아요 안식이 완성된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병자가 나타나면 바로 바로 고쳐줘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거에요 그런데 이 우매한 인간들이 그 안식에 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그 안식일날 병자 고쳤다고 예수님을 때려 죽인 거에요 그렇게 행위나 은혜는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길로 가고 있다란 말입니다.

이사야서 351절 보세요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자 여기 인제 안식이 완성된 상태를 보여주는 거에요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이게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어요 이러한 현실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잖아요 이 현실이 우리에게 벌써 영적으로 주어졌다구요 그래서 우리에 눈이 뜨여서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에요 우리의 발이 이제 절뚝발이가 아니에요 열심히 달려 하느님에 나라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가 열렸어요 하느님에 말씀이 이제 들려요 그러한 상징이 안식일에 주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는 거에요 그런데 그 병자들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은 표현해 놓은것 뿐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한 사람을 죽여버리신 것도 같은 의미에요 인간이 왜 일을 한다 그랬어요 이제 명확해 졌잖아요

하느님에 무한하심에서 차단되어 버린 인간들이 스스로 자신에 행복과 안녕을 확보하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게 인간의 일이요 문명이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제 안식속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하느님에 무한한 생명이 다시 주어지고 있어요 우리에게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목숨걸고 일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럼 누구를 위해서 일해요 하느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는 거에요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거에요 공부도 더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거 다른 거에요 그러니까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 죽여라 그래서 뭐 주일날 일하는 사람은 나쁜놈이다 이렇게 욕하면 안되는 거에요 여러분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지 이제 안식속으로 들어와 계약속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내 삶의 신이 되어서 살지 않아도 된다라는 의미에서 일을 하지 말아라라는 것이지 주일날 일 안하면 굶어 죽으면 어떡게 해요 그럼 나가서 일을 하세요 정 다른 방법없으면 그렇게라도 해야 된다니깐요

 

이제 전체적으로 정리를 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은혜의 집 베지타에 진정한 참 안식을 은혜로 가져다 주실 예수님이 나타나셨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베지타 연못만을 바라봐요 자기가 자신에 행복과 안녕 즉 자신에 구원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뚫어지게 연못만을 째려보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들에 실존은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자들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죄인 원수 이러한 호칭으로 통용합니다 로마서 56절 볼까요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죄인 원수 연약한 자 이게 다 뭐에요 38년된 병자입니다 그때 찾아오셨다라는 거에요 그때에 여기서 연약하다 라는 단어는 헬프리스 파워리스라는 의미거든요 베지타 못가의 병자들이 바로 아스떠놋 도울이가 없는 힘이 없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거에요 그게 연약할때라는 의미인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병자들이 자기들도 무언가 할 수 있다라고 착각하고 있다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38년된 병자도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라고 물으셨더니 뭐라 그래요 네 낫고 싶습니다. 예 이렇게 대답해야지 되잖아요 그런데 낫고 싶습니다가 아니라 내가 저 물에 들어갈라 그러는데 딴 놈들이 먼저 들어가갔고 제가 이렇게 못낫고 있네요 그 말은 뭐에요 나좀 저기다 넣어주세요 그런 거에요 그런 은혜를 알았다면 아이고 주님 이제 오셨네요 저좀 낫게 해주세요 그래야 되는데 나좀 들어서 저기다가 빨리좀 넣어주실래요 이런 의미로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주님이 이 38년동안 앓았던 이 사람이 낫고싶다라는 생각을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물어본걸까요? 당연히 낫고싶죠 이 사람은요 그런데 왜 물어보세요 두말하면 잔소리지 입만 아프지요 38년된 병자 하느님 은혜를 떠난 인간들이 가장 밑바닥에 내려가서도 그들이 무얼 바라보고 있는지를 한번 봐라 라고 물어보시는 거에요 38년된 병자 전혀 가망성이 없는 고놈도 여전히 베지타 못만 바라보고 있더라 라는 거에요 정말 낫고 싶으세요 안식속으로 들어가고 싶으십니까 주님을 믿는 곳에서 행복과 안식을 찾으려 하지 않고 재물이나 명예나 인기 등으로 안식과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오늘날에 그 죄인들에 모습 이것이 바로 38년된 병자를 비롯하여 그곳에 보여있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 비틀어진 이들에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한심한 병자를 연못속에 안 넣어주고 말씀으로만 낫게 하시죠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도 말씀으로만, 왕의 신하를 고치는 장면에서도 말씀으로만, 여기서도 역시 말씀으로만, 본문 8절 보세요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말씀은 그게 바로 현실이고 실존인 거에요 그게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시는 사건 모두다 말씀으로 말미암았어요 만일 주님께서 그 38년된 병자를 연못에 집어 넣으셔서 낫게 하셨다면 그 38년된 병자는 계속해서 자기가 세워놓은 방책 그것을 추구하면서 주님으로부터는 도움만 구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 거에요

그런데 오늘날 성당 안에서도 그렇게 그렇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자기가 세워놓은 계획을 자기가 세워놓고 이렇게 하면 나는 행복해 질거야 내가 하바드 대학 들어가면 행복할거야 그러니까 지금 나는 반에서 꼴찌지만 하느님이 도와주시면 난 행복할 수 있어 하느님 내가 찍는 이 연필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굴리는 즉시 다 정답으로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38년된 병자를 연못에 넣어서 구해주면 이 38년된 병자가 고렇게 살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느님은 고렇게 안하신다 말입니다

여러분이  계획을 세워놓고 하느님 요 병만 나으면 나는 행복할것 같으니까 하느님 요거 고쳐줘 보세요 그러면 내가 행복한가 안행복한가 그러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 엉뚱한 기적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직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자를 만들고 싶은 것이 하느님에 뜻인 것입니다

우리들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나는 가짜인가봐 이런 생각 하시면 안되요 거기서 절망하셔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우리가 방책을 세워놓고 아무리 비나이다 비나이다 해도 진짜 성도들에 기도는 잘 안들어 주시는 거에요 신앙은 그렇게 믿음에 근거한 것을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에 삶에 방책들을 도와주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 아니에요 주 님은 오히려 너희들이 세워놓은 방책 다 포기하고 나만 봐. 오빠 나만 바라봐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응 나만 봐라고 이 땅에 오신 거라니깐요

그러니까 꺼꾸로 생각하고 있는 거에요 주님은 너 베지타 바라보지 말고 나만 보래니까 라고 오셨는데 사람들은 전부 베지타를 바라보면서 주님은 나중에 볼테니까 날 여기다 일단 넣어 달라니까요 일단 병고쳐 달래니까 일단 부자 만들어 달래니까 그거 얼마나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왜곡되어지고 변질되어졌습니까 꺼꾸로 가고 있잖아요 나쁜것 같지 않게 들려도 그건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대적하는 거라는 말입니다

38년된 병자를 비롯해서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 비틀어진 이 들은 모두 이 세상에 율법과 행위를 의지하는 아담에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연못에 물이 동하기만을 기다리다가 할일 없이 죽음 심판으로 던져질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하느님은 그런자들중에서 어떤 무리들을 택하시고 그들이 주님이 누구이신지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때 그들에게 달려가셔서 그냥 살려내시는 거에요 어느날 갑자기 일어났더니 어 내가 어떻게 그걸 믿고 있지 이렇게 되는 거에요

 

오늘 본문에도 유대인들이 누가 널 고쳐줬냐? 그랬더니 그놈이 모르겠는데요 그게 구원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무슨 구원에 우리에 행위가 보태져요? 어딜 구원에 우리가 뭘 보태요 나는 모르겠는데요 그런다니깐요 그런데 그 많은 사람중에 나한테 왔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나도 베지타 연못만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나한테 왔어요 그리고 말로 그냥 일어나서 걸어라 해서 내가 이렇게 일어나 졌어요 그게 신앙인 거에요 그게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하느님 나라 새하늘과 새땅에 집어 넣으시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게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사람을 믿음이 있는자 신앙인 인것입니다 하느님에 말씀은 현실이니까 우리는그 은혜로 사는 자들이에요 행위와 율법은 카인들에 삶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단한 존재인지 착각하고 살고 있어요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들이 진짜 하느님처럼 되었는줄 착각하고 있는 거에요 그게 세상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 비틀어진 이들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멀쩡한것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일도 하고 문명도 만들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시체들입니다 에제케엘 골짜기에 시체, 그들에게는 덜그럭 덜그럭 뼈들이 맞춰지는 그런 은혜도 허락이 되어 있지 않아요 우리가 그렇게 해서 살아난 우리가 그들과 방불한 삶을 살면 어떡합니까 이 놀라운 은혜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여전히 아직도 그러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죄속에서 뒹굴고 있어요. 이시대가 이렇게 암울한건 복음을 안가르쳐서 그래요 복음을 안가르쳐서 이 명확한, 명쾌한 이 아름다운 복음을 듣고 어떻게 내 삶을 그대로 똥구더기에 굴립니까? 그러한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이제 우리에 손발을 좀 움직여 우리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좀 해보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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