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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들어 올려 질 때만 줄 수 있는 것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19 조회수2,58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들어 올려 질 때만 줄 수 있는 것>


  

복음: 마태오 6,1-6. 16-18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20여 년 전 이태리 어느 시골에 마리오와 안셀모라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마리오는 위대한 설교가가 될 꿈을 안고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될 준비를 하였습니다. 안셀모도 같은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사제가 되기를 원치 않고 평수사로 남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마리오는 공부를 마치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마리오가 첫 강론을 하게 된 전날 밤, 설레는 가슴으로 복도를 거닐고 있을 때 안셀모가 와서 격려해 주었습니다.

마리오, 너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어.”

다음 날 마리오가 제단에 올라갔을 때 안셀모는 한 구석에 앉아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강론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마리오는 그의 꿈대로 차차 설교가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럴수록 마리오와 안셀모의 거리는 차차 멀어졌습니다. 드디어 마리오에게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도 강론을 할 기회가 왔습니다. 평생에 한 번일 지도 모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제단에 올라갈 때마다 조용히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해주던 안셀모가 떠올랐습니다.

마리오는 빨리 수도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안셀모는 바로 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마리오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방을 열어보고 가난한 살림을 보았을 때 그의 가슴이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마리오는 안셀모의 시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수도원 원장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 저도 안셀모 같은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강의를 많이 하다보면 마음이 공허해짐을 느낍니다. 채울 시간에 비해 내어주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고 그러면서 받는 인간적인 영광이 공허함의 옷을 입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나중엔 껍데기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조금 자제하기로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복음에 옷 입혀지는 성령의 뜨거움입니다. 좋은 말은 여기저기에서 수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뜨거움이 들어있지 않으면 영혼구원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이는 점점 더 뜨거워지는 사람이어야지 내어주고 식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에게 스승이 가진 성령의 두 몫을 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신이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면 주겠다고 합니다. 당장 주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로 갈 때 자신도 입어야하는 성령의 옷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마차가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엘리야는 바람에 들어 올려 그 마차를 타고 하늘로 승천합니다. 그때 엘리사가 자신의 겉옷을 엘리야에게 던집니다. 바람과 불은 성령의 상징입니다. 우리를 하늘로 들어 올리는 것은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을 받아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영을 내려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하늘로 가면서 주는 것은 자신의 겉옷입니다. 겉옷은 세상에 살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재산입니다. 입는 것뿐만 아니라 이불로도 사용되었던 것이 겉옷입니다. 그러니 하늘로 올라가며 이 지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전부를 주는 것입니다. 천상에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이 필요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은 이 지상 것에 어떠한 애착도 가지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성령으로 취한 사람만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데 그 안에 그 사람의 영이 들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조그마한 애정이라도 가진다면 그 사람이 주는 것 안에는 성령이 깃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듣는 사람이 자신의 겉옷을 찢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엘리야의 겉옷을 받은 엘리사는 자신의 겉옷을 둘로 찢어버립니다. 그도 또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영을 내어줄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안셀모는 이 세상에 어떠한 애착도 없었지만 마리오는 위대한 설교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오는 자신의 설교에 어떤 뜨거움도 넣어줄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셀모는 이미 십자가에 박혀 들리고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명예에 대한 애착도 세상에 대한 애착도 없는 가난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어 올리어져 당신의 핏방울 하나까지 내어주시는 모습이 곧 승천하시며 성령을 주시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 세상에 많으면 많을수록 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고, 성령의 힘으로 점점 들어 올리어져 세상 것과 무관해지면 질수록 그 사람은 세상 구원을 위해 줄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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