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20 조회수2,692 추천수12 반대(0)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를 읽었습니다. 글이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흥남부두에서 피난민들을 태웠던 선장님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선장님은 만사천 명의 피난민을 태웠습니다. 영하 20도의 혹한이었다고 합니다. 배에는 화장실도, 방도 없었다고 합니다. 화물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장님은 배에 오르려는 피난민의 눈을 보았고, 사다리를 내려서 피난민을 태우기로 하였습니다. 거제도까지 가는 길은 3일 걸렸다고 합니다. 거제도로 가는 길에 한 아이가 태어났고, 4명의 아이가 더 태어날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전쟁과 죽음의 상황에서 사랑과 생명은 어둠 속에서 빛을 드러냈습니다. 선장님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평생 수도원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던 사람은,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사람은 굳이 다른 곳을 향해서 여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멀고 깊은 우주의 신비를 본 사람이 복잡한 유흥지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듯이, 명화의 깊이를 알아버린 사람이 이발소의 그림을 더 보지 않듯이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고, 홍해바다를 건넜으며, 구름기둥을 따라 다녔지만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은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온 몸으로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득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사제생활 27년을 했는데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면서도 늘 무엇인가를 찾으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동창 신부님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잘은 모릅니다. 함께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기도하리라 생각합니다.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어 버리는 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사제생활이 메마르기 때문입니다. 메마르지 않고 27년을 사제로 지내는 것을 보면 다들 나름대로 영적인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님들께서 하시는 동안거, 하안거를 하지는 못하지만 매일 새벽 주님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부족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갈망이 있어야 하고, 기도는 여유가 있어야 하고, 기도는 시간을 정해놓고 해야 하고, 기도는 규칙적으로 해야 하고, 기도는 삶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먼저여야 한다고 강의를 했지만 제가 늘 그것을 실천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식, 허영, 위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 것들은 교만함에서 나온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선을 베풀 때, 기도를 할 때, 단식을 할 때에도 드러나지 않게 겸손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알리고 싶어 하고, 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이 성공을 위한 경력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이 알아주는 명예와 업적 때문에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하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 성급하게 열매를 맺으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도, 희생, 사랑, 나눔이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 깊은 신앙은 유혹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수들은 형식과 규칙들을 넘어서곤 합니다. 고수들은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굳이 의식하지 않기도 합니다. 저 자신은 아직은 고수가 아니기 때문에 제도라는 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강물이 깨끗하면 갓을 씻고, 강물이 더러우면 신발을 씻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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