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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불 소용돌이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20 조회수2,978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불 소용돌이>



복음: 마태오 6, 7-15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다


루벤스(RUBENS) 작, (1612)


 

      

강길웅 신부님의 말씀 중에 멍 수녀님과 똑 수녀님의 이야기가 나와 소개합니다.

멍 수녀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성은 멍 씨가 아닌데 다만 그분의 재주가 신통치 못하여 이에 답답함을 느끼신 본당 신부님께서 멍청이라 부르신 데서 나온 이름이었습니다.

원래 그 수녀님은 드러내 놓을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성가도 잘하지 못했으며 교리지도도 더듬거렸고 나중에는 제의방으로 밀려났는데 그것마저도 본당 신부님의 신경을 자주 건드리곤 했습니다. 그저 재주가 있다면 멍 수녀!”하고 불러도 늘 생글생글 웃는 그 미소가 고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멍 수녀님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신자들이야 으레 약자편이긴 하지만, 늘 겸손하시고 신자들의 어떤 말도 다 받아 줄 뿐만 아니라 남몰래 많은 기도와 희생을 하고 있는 줄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 원장 수녀님은 나이는 멍 수녀님보다는 훨씬 적으나 대단히 똑똑하고 재주가 반짝반짝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독선적이고 직설적인 언행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신자들이 상처를 받게 되었고 그래서 신자들은 똑 수녀님을 싫어하고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그 수녀원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원장 수녀님이 신부님들의 사생활에 대해 얼마나 따따부따하시든지 듣기가 아주 민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원장 수녀님의 생활도 대단히 고급화되어 있는데도 아마 자기 자신의 모습은 잘 안 보이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때에도 멍 수녀님은 그 특유의 재주인 미소만을 가지고 우리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다 받아 주고 계셨습니다.

결국 멍 수녀님은 본당 신부님과 원장 수녀님의 합동작전으로 먼 곳으로 쫓겨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가실 때는 눈치를 보느라 많은 이들이 전송을 해주진 못했지만 가시고 난 뒤에는 수녀님을 잃은 아쉬움과 불만으로 많은 이들이 분개를 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재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재주는 자신의 눈을 감기게 할 뿐 아니라 스스로 위선의 탈을 뒤집어쓰게 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신앙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내려가는 겸손을 닮을 때 축복이 되는 것이며 잘 사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왜 멍 신부가 되지 못할까

세상을 바보처럼 사시지만 그 속에 사랑이 있고 평화가 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최고의 덕인 겸손으로 사시는 멍 수녀님을 생각하면서 닮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도 해봅니다. 멍 수녀님, 사랑해요!

 

엘리야 예언자는 불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 올리어져 엘리사에게 자신의 겉옷을 떨어뜨려주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겉옷을 받고 성령으로 가득차서 그 또한 스승 엘리야 못지않게 큰일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건널 때에도 불기둥이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불기둥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엘리야가 예수님이라고 하면 불기둥은 십자가입니다. 자신을 죽이는 제단이고 그 불은 하늘에서 내려온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의 불로 자신을 봉헌하면 이 세상에 또한 성령을 전해주는 이가 됩니다.

가끔 화장터에 가서 관 속에 들어있는 작은 육체가 거센 불로 순식간에 태워져 재만 남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 남는 것은 한 줌의 재입니다. 이 세상 것은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 타고 재만 남았을 때, 그래도 무언가 남아있다면 그것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 참 나입니다.

이렇게 불로 내 자신을 붙잡고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들을 태워버리는 과정이 광야의 과정입니다. 가나안 땅에 다가갈수록 자신은 불로 옷을 태워 벌거벗겨지고 살을 태워 정결해지며 뼈를 태워 재만 남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제인 나도 아니요, 돈 많은 나도 아니요, 성공한 나도 아니요, 봉사자인 나도 아니며, 아버지나 어머니가 된 나도 아닙니다. 그냥 자신입니다. 불로 탈 수 있는 세상 것이 다 타버리고 남는 나가 참 나입니다. 하느님은 태어날 때 숨만 쉬고 있을 때의 나를 원하십니다. 그때가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이 세상 것들로 자신을 꾸며가며 거들먹거리기 시작할 때 그분을 만들어주신 입장에서는 다시 그 옷들을 벗기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른이 되어도 그런 어린이의 순수함을 지킬 수 있는지를 시험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살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 나를 바보라 하여도, 무시하여도, 침을 뱉어도,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여도 그냥 웃어줄 수 있는 멍청이가 될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가벼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칫 영성생활을 하면서도 옷을 벗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두껍게 자기를 세상 것으로 채워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불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게 아닙니다. 광야로 나온 게 아닙니다. 저도 가끔은 무례한 모습을 보이는 신자가 있으면, “사제에게 그러면 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사제의 옷을 입은 교만한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합니다. 아직은 벌거벗은 나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제로 옷 입혀진 나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는 나중에입혀진 옷입니다. 그런 것들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더군다나 이 세상에 어떤 유익한 것도 남길 수 없게 됩니다. 내가 타서 남길 수 있는 것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나는 불 소용돌이 속에서 광야를 걷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이집트 땅에 머물며 세상 것들로 참 나를 더 두껍게 가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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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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