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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24 조회수3,006 추천수11 반대(0)

 

지난 주일에는 생명 대행진행사가 있었습니다. 낙태를 반대하면서 생명의 존엄성을 세상에 알리는 행사입니다. 생명 대행진을 대표하는 분은 예전에 산부인과 의사였습니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드렸는데 아내가 반만 받았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으니 생활비 중에는 낙태를 시켜주고 받은 돈도 있을 터인데 그런 돈으로 생활할 수는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내의 설명을 들었던 남편은 그 뒤로는 낙태 시술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낙태반대 운동을 시작하였고, 생명 대행진도 주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아내의 뜻을 받아들인 남편의 사랑이 생명 운동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행진하기에 앞서서 추기경님을 비롯한 내빈들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인사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노년과 젊은이, 정상인과 장애인, 힘을 가진 자와 약한 자, 지역과 지역의 갈등이 있습니다. 이런 혐오와 갈등은 권력과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해결이 되곤 합니다. 이런 혐오와 갈등에서 가장 커다란 피해를 보는 생명은 낙태되는 아이들입니다. 따듯한 엄마의 품속에서 펀하게 지내던 아이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아이들이 태어나는 아이들보다 더 많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교회가 말을 해도 세상의 뜻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키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만이라도, 신앙인들만이라도 낙태를 반대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들만이라도 낙태를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그만큼 변할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의 뜻대로 흘러가겠지만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그 말이 제게는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신앙인이 지켜야 할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큰 계명은 같은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이웃인가를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금 강도를 당한 사람이 이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헐벗고, 가장 굶주리고, 가장 아픈 사람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히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낙태되는 아이들도 우리의 이웃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축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성인들의 축일은 죽은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천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축일은 태어난 날을 축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미리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앞서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알아보았고,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나 중심의 생각을 상대방 중심의 생각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세례자 요한은 철저하게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축일도 그런 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축일은 여름이 긴 하지에 가깝습니다. 하지가 지나면 여름은 점차 짧아집니다. 예수님의 축일은 겨울이 가장 긴 동지에 가깝습니다. 동지가 지나면 낮은 점점 길어집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삶의 태도입니다. ‘성소 후원회임원 연수 때입니다. 강사 신부님은 제가 예전에 본당 신부님으로 모시던 분입니다. 저는 신부님을 소개해 드리면서 제가 신부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제가 그런 말을 할 줄 알고 끈 없는 신발을 신고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말을 유쾌한 유머로 받아 주시는 신부님은 역시 저보다는 한 차원 높으신 분이셨습니다.

 

슬픈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한없이 슬플 수 있습니다. 구약을 마치고, 신약을 시작하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이들 중에는 가장 위대하다는 말을 들었던 세례자 요한은 살로메의 춤 값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이들 중에 가장 위대한 세례자 요한을 기억하고 있으며, 사랑과 공경을 드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휴대폰 광고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때면 잠시 꺼 놓으셔도 좋습니다.’ 늘 켜져 있어야 하는 휴대폰도 소중한 사람과 있을 때면 꺼도 좋다는 광고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하느님의 더욱 큰 영광을 위해서라면 지금 좀 서운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 지금 좀 속이 상해도 웃을 수 있습니다. 자존심이 무너질 때라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성인 성녀들은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하셨고, 재물보다는 가난함을 택하셨고, 모욕과 멸시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예언자 되어, 주님에 앞서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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