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27 조회수4,052 추천수10 반대(0)

 

스마트 폰을 새롭게 바꾸었습니다. 보통은 새롭게 바꾸면서 지난번 스마트 폰의 정보를 옮기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정보를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전화번호 목록과 일정표였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유심칩이 있어서 전화번호 목록은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일정표도 구글과 연동이 되어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들을 복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하느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시겠구나! 하느님께서는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고백성사를 통해서 용서를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허물과 잘못을 깨끗하게 지워주십니다. 우리의 선행과 희생은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요즘 세 종교 이야기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같은 하느님을 모시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이야기입니다. 종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섰을 때는 인류와 역사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을 때는 다른 문명과 다른 종교를 박해하기도 했고, 심판하기도 했습니다. 종교는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표징과 같습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지만 잘 자랄 수 있다고 합니다. 가지치기하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햇빛을 잘 받지 못하기 때문에 나이테도 선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행동과 생각도 가지치기를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분심, 욕심, 질투, 시기, 교만을 가지치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 희망, 사랑의 줄기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지치기하는 것은 나무에는 큰 고통입니다. 생가지를 잘라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꼭 필요하기에 가지치기하는 것입니다. ‘분심, 욕심, 질투, 시기, 교만의 가지를 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 마음 안에 이미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서는 꼭 그런 가지들을 쳐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와 열매를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열린다고 하십니다. 좋았던 나무도 거름을 주지 않고, 관리를 소홀히 하면 나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빴던 나무도 정성을 다하고, 거름도 주고, 잡초를 뽑아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밀과 가라지는 밀은 계속 밀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는 늘 가라지가 아닙니다. 밀처럼 자란 사람이 가라지와 같이 변할 수도 있고, 가라지같이 자란 사람이 밀처럼 변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가라지와 같았습니다. 나쁜 나무와 같았습니다. 박해가 있었습니다. 순교가 있었습니다. 배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밀처럼 성장하였고, 좋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외형적으로 보면 분명 커다란 성장을 하였습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가톨릭 국가에서도 부러워할 정도로 뜨거운 열정과 발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784년도에 시작된 한국 가톨릭교회는 100여 년의 박해가 있었고, 시련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 이후에 서서히 발전한 한국교회는 1970년도에 100만 명 신자가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한국을 방문하신 1980년도에는 20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요란하지 않지만, 가톨릭 신자들은 충실하게 복음을 전하였고, 90년도에는 300만 명 신자가 되었습니다. 2000년도에는 400만 드디어 500만 명의 신자로 증가하였습니다. 성당의 숫자, 사제, 수도자의 수도 많이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나 내면을 바라보면 한국가톨릭 교회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냉담자의 증가입니다. 1970년도에만 해도 주일미사 참례는 전 신자의 70%가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가 되었습니다. 주일미사 참례는 전 신자의 19%가 하고 있습니다. 30%는 성당에 나오다가, 쉬다가 하고 있으며, 30%는 세례는 받았지만, 성당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냉담자의 증가는 물고기를 그물에 넣었지만, 그물이 터져서 도로 나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물을 고치지 않는 한 냉담자는 계속 증가할 것입니다.

 

둘째는 신자들이 왜 성당에 다니는지,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가톨릭 신자, 개신교 신자, 불교 신자에게 질문하였다고 합니다. ‘왜 신앙생활을 합니까?’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응답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고 응답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불교 신자들은 어떻게 응답을 했는지 모르지만, 불교와 가톨릭교회는 신앙의 체계가 매우 달라서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신자들은 신앙을 가지면서 구원에 대한 확신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신앙을 그저 지금 이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쉽게 신앙을 잊어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지속적인 교육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6개월 정도 간단하게 교리를 들으면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 후에는 구역이나 반에서 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새 영세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대부모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그나마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대부모님과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신앙생활을 멀리하는 일도 있습니다. 단체 활동이라도 하나 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곧 냉담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았으면 이제 예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물을 마시면 시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제 그분의 삶을 증거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물을 마시면 시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나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구원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분의 가르침과 삶을 증거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재복음화 되고, 주님을 제대로 알고, 믿고, 그분의 삶을 증거하고 실천한다면 한국 가톨릭교회는 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견실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복음화를 통해서 우리는 내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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