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30 조회수2,418 추천수9 반대(0)

 

한국 순교 성직 수도회와 교회사 연구소가 주최한 교우촌의 믿음살이심포지엄을 다녀왔습니다. 저도 교우촌에서 태어났고, 교우촌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교우촌은 박해시대에 신앙인들이 박해를 피하고, 신앙을 지켰던 터전이었습니다. 교우촌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신앙을 전수하는 학교였습니다. 많은 교우촌에서 한결같이 전해지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학교는 가지 않아도 성당은 꼭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재물과 권력은 주지 못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신앙을 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기도문을 외워야 했고, 매일 기도를 해야 했고, 기도에 소홀하면 밥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했기 때문에 박해를 견디어낼 수 있었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교우들은 전국의 교우촌과 긴밀한 교류가 있었습니다. 교우촌은 다른 교우촌과 혼인이 있었고, 박해가 일어나서 교우촌이 없어지면 다른 교우촌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교우들 간의 혼인은 신앙을 지키는 힘이 되었고, 교우들 간의 혼인은 가정을 화목하게 하였습니다. 혼인은 하느님께 드리는 약속이기에 힘든 일이 있어도 가정을 지키는 것이 신앙인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릴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매일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성당은 꼭 가야만 했습니다. 기도로 다져진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힘든 일은 함께 이겨낼 수 있었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박해도 끝났고, 도시에서 살면서 우리는 예전처럼 교우촌을 이루면서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1980년대 이후에 세례를 받는 신자들은 교우촌에 대한 이해가 적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교우촌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은 교우촌이 주는 강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교우촌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현실의 삶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기도와 교육을 통해서 지켜지는 것입니다. 교우촌은 박해의 시기에 신앙을 지켰던 선조들의 지혜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신앙인들은 박해의 시기에는 순교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나눔을 통해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우촌은 나눔의 실천을 보여 주는 장소입니다.

 

교우촌이 커지면서 공소가 생겼습니다. 공소에 신부님이 오시면 성당이 되었습니다. 신부님의 수도 늘었고, 성당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사제들의 못자리인 교우촌은 예전처럼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성당의 못자리인 교우촌은 예전처럼 신앙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가정이 교우촌이 된다면, 우리들의 반과 구역이 교우촌이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박해와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어르신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청년이 혼인하기 위해서 본당 신부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본당 신부님은 배우자 집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예전에 그 부모님이 신부님과 말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본당 신부님과 말다툼을 할 정도의 신앙인과 혼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답니다. 청년은 본당 신부님의 말을 듣고 신앙이 깊은 집안의 딸과 혼인을 하였고, 지금까지 신앙을 지키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의 뜻이 먼저인 집이 바로 교우촌입니다. 이런 교우촌에서 신앙이 태어나고, 신앙이 성장하며, 하느님께로 가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1997년 제기동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성당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습니다. 파란 감들이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려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감나무에서 감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감나무는 왜 감을 떨구어 냈을까요? 본당 신부님께서는 제게 감나무는 더 크고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서 스스로 작고 볼품없는 감들을 떨구어 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01년 적성 본당에는 대추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도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대추나무들도 더 크고 알찬 대추를 맺기 위해서 스스로 작고 볼품없는 대추들을 떨구어 내고 있었습니다. 욕심 때문에, 미련 때문에 참 많은 것들을 채우고 있는 저에게는 좋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 백인 대장을 봅니다. ‘그저 한 마디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의 종은 깨끗하게 치유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백인 대장과 같은 믿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스스로 작고 볼품없는 것들을 떨구어 내는 나무들에서 백인 대장의 모습을 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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